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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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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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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젊었을 때나 환갑이 넘었을 때나 사시사철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청바지이기 때문이다. 청바지를 입으면 젊음과 자유와 발랄함이 있어서 좋다. 또한 청바지를 입으면 엉덩이와 허리부분을 올려주는 탄력감 때문에 젊음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주 정장이 필요한 결혼 예식장이나 장례식장, 교회, 또는 예의로 만나야 할 분이 있을 때 등이 아니면 60이 넘었어도 늘 청바지를 입는다. 그 만큼 나는 청바지를 좋아 한다. 

 

 


 일단 청바지를 입고 거울 앞에 서면 허리가 위로 쭉 펴지면서, 나이 들면 앞으로 굽어지려 하던 어깨가 쫙 펴지기도 하면서 뒤쪽 위로 바짝 세워진다. 거울에 옆모습을 보면서 S자 라인으로 한번쯤 폼도 잡아 보게 된다. 키가 커지는 느낌이다. 움츠려 들었던 마음도 활짝 펴지면서 자신감이 드는 것은 청바지만의 위력일까? 


 말이 청바지지 청바지도 가지가지다. 색깔을 보면 진한 청색, 옅은 청색, 남빛에 가까운 것, 검은 빛에 가까운 것, 회색 등 사람 얼굴이 다 다르듯이 청바지 하나하나가 모양이나 색이 다 다르다. 스타일도 유행 따라 A라인, 일자, 찢어진 청바지, 혹은 쫄바지 등 다양하다. 천 자체도 순면이 있는가 하면, 나일론이 섞여있는 것도 있고, 두껍다든지 얇다든지 무늬 결도 여러 가지다. 


 예전에는 천이 두껍고 투박했는데, 요즈음에는 천이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는 스판텍스로 나와서 입으면 보기보다는 상당히 편하다. 근래에 와서는 예쁜 수를 놓거나 스팽글이 많이 박혀서 화려하게도 나온다. 그런대로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즐겨 입기에 좋은 것이 청바지다. 


 누구라도 청바지 입은 것을 보면 자유스러워 보이고 건강함을 느끼게 된다. 겨울용으로는 청바지 안쪽이 기모라고 하여 털이 붙어 있어서 내복을 안 입어도 따뜻하다. 


 초여름 반팔의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으면 깨끗함을 넘어 청순해 보인다. 백인이나 어느 유색 인종을 망라하고 곤색 티셔츠, 혹은 빨간색 티셔츠, 연두색, 보라색, 노랑색 등... 어느 색의 티셔츠를 입어도 청바지와는 잘 어울린다. 티셔츠뿐만 아니라 어느 색 어느 모양의 블라우스를 입어도 잘 소화해 낸다. 또한 목 티에 어느 재킷이나 밍크를 입어도 청바지와 잘 어울린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노동자의 옷에서부터 정장까지 어느 옷과도 잘 매치가 되는 것은 청바지가 주는 포용력과 너그러움이 깃들어 있는 바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캘리포니아의 광산 천막 천으로 만든 노동자들의 바지인데, 질기고 튼튼한 작업복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태어난 청바지가 이제는 남녀노소는 물론 특히 여자들의 패션으로 각광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바지를 즐겨 입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부터의 구속에 대한 반항이라고 할까? 그렇다. 속에서 부글거리는 엄마라는 이름 때문에, 아내라는, 며느리라는, 크리스챤이라는, 어떤 사회적인 구속 때문에, 내 젊음과 자유를 구속당하고 웅크리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청바지처럼 자유롭고 당당하고 젊게 살고 싶다. 더 늙기 전에. 


 20대부터 청바지를 입었지만, 오히려 지금 이 나이에 유난히 더 즐겨 입는 것 같다. 청바지도 유행을 타기 때문에 한참 입다 보면 색다른 청바지가 없을까 가게에 가서 기웃거리게 된다. 둘러보다가 마땅한 것이 눈에 걸리면 안사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어쩌면 청바지 사는 일은 스트레스 푸는 일인지 도 모른다. 저항의 상징이기도 한 청바지, 그래서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분명 반란인데. 


 청바지에 흰 와이셔츠 윗 단추 두 개쯤 풀고, 카우보이 구두에 검은색 카우보이모자를 눌러쓰고, 어느 가을날 토론토의 북쪽으로 올라가면 뉴마켓의 마장 언덕길, 말 타고 달려보는 기분을 그 누가 알랴, 그야말로 청바지의 클라이맥스다. 


 사람이란 혼자서는 살 수 없지만, 이제는 남을 너무 많이 의식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청바지를 입는 일도 남이 뭐라 하든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남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나를 잊기가 쉽다. 남보다 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육체적 정신적 노화 현상은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겠지만, 아직도 청춘으로 살고 싶은 것은 본능일까? 욕망일까? 


 그래서 청바지처럼 젊고, 자유롭고, 멋지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에 청바지는 아무나 입나? 용감해야 입는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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