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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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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베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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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엘은 내가 즐겨 타는 애마의 이름이다. 암말이며 여덟 살이다. 말은 보통 수명을 30년이라 하는데, 베엘은 사람으로 치면 한창 물오른 처녀다. 목덜미에 흰 반점이 크게 있고 네 개의 발등이 희며 몸은 밝은 밤색이다. 


 베엘은 암내가 나더니 보이 후렌드도 생겼다. 보이 후렌드인 캣스불은 베엘을 끔찍이 사랑한다. 다른 수말들이 베엘을 곁눈질만 해도 보통 난리가 아니다. 근처에서 얼씬거리다간 발로 채이고 묵사발이 된다. 베엘 옆에 얼쩡거리는 놈을 캣스불은 기를 쓰고 쫓아가서 내동댕이 쳐버린다. 

 

 


 자기 여자를 지키겠다는 단호함을 보면 그게 어디 웃을 일인가. 짐승들 세계에서도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은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어쩌면 사람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타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말의 온 몸을 마사지 하듯 털을 살살 다 긁어주고 털어낸다. 발바닥의 굳은 흙까지 긁어내는 동안 말과 교감을 갖는다. 처음에는 말 냄새, 말똥냄새가 싫었지만 그 냄새에 익숙해지니 싫다는 생각이 옅어졌다.


 승마 장화를 신고, 헬멧을 쓰고, 말안장에 올라타면 생각보다 훨씬 높이 올라와 있다. 때로는 카우보이 부츠에 카우보이모자를 쓴다. 권총만 안 찼지 서부활극의 사나이가 된 기분이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힘을 주어 사타구니로 말을 껴안고, 엉덩이는 뒤로 빼고, 뒤 허리는 S 자로 하며 어깨는 펴서 상체를 위로 올려 유연하게 하고 눈은 가야 할 곳을 본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고삐를 느슨하게 붙잡고 몸을 반듯하게 세우고 전진한다. 잉글리쉬 스타일이다. 달리기도 하고 장애물 돌기도 연습한다. 언젠가 앞으로 점프를 잘하고 싶은 게 희망 사항이지만, 사실은 들로 산으로 달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베엘은 말귀를 잘 알아듣고, 함께 움직이고 달리는데 나와 호흡이 척척 맞는다. 내가 어디를 바라보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베엘의 눈은 항상 내 눈을 주시한다. 말의 눈은 옆과 뒤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말은 뒷발질하는 동물이어서 말 뒤에 서 있지 말아야 한다. 


 말을 사랑하는 방법은 사람과 같다. 갈기와 목을 쓰다듬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해야 한다. 대개는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도 주인이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안하는지를 안다지만 말도 안다. 말과 친해지고 싶다면 진심으로 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래야만 말과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어야만 한 몸이 되어 달릴 수 있다. 


 말 타러 가면 벌써 말은 나를 안다. 나를 보는 것 같지 않지만 끔벅끔벅하는 초점 없어 보이는 커다란 눈으로 이미 내 표정을 읽었는지 속까지 다 안다. 내가 말 저쪽에 가있어도 말은 다 본다.


 말똥냄새가 고약하다느니 너 뭐 먹어서 이렇게 많이 내놨냐느니, 푸념하며 오늘은 말똥치는 날이냐? 한다든가, 얼굴 찌푸리며 베엘! 하고 부르면서도 다른 데를 본다든지, 다른 말에게 말을 건네면 베엘은 다 알고 있다. 전심으로 자기만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베엘을 사랑한다고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쉽게 풀리지가 않는다. 베엘 목덜미에 내 얼굴을 대보기도 하고 살살 만지며, 갈기도 쓸어 내려주고 “너는 꼬리털도 이렇게 길고 예쁘니? 이 털 좀 조금만 잘라가도 되겠니? 내 딸 바이올린 선 좀 갈아주게” 소곤대는 말로 달래기도하고 비위를 맞추어도 좀처럼 기분이 안 나는가 보다. 그런 날은 말도 맥이 빠졌다는 듯이 말도 잘 안 듣는다. 서로의 반동이 잘 안 맞는다는 말로 풀이된다. 그러니까 말타러가면서 미리미리 정신을 말에게 집중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승마한다고 승마장비 파는 곳도 토론토 시내뿐만 아니라 시골 쪽으로도 알아내어 시간만 나면 가서 새로운 것들을 사댄다. 승마 대회 하는 곳도 어지간히 쫒아다녀 보았다. 얼굴이 검어지고 하루 종일 흙먼지에 머리가 버석버석하도록. 


 베엘은 안다. 내가 자기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감사해 하는지를. 소곤대는 말로 베엘! 자기 보이후렌드 잘 있어? 요즈음 자주 만나? 하면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입을 벌려 위 잇몸이 위로 벗겨져 이빨을 다 내놓고 좋아라 흐으흥 거린다. 역시 베엘도 자기의 관심사는 보이 후렌드인가 보다. 


 서로의 기분이 맞아야 말갈기 휘날리며 카우보이가 되어 신나게 달려보는 것이다. 신나게 달릴 때는 경마하듯이 말에게 내 몸을 붙인다. 이것은 웨스턴 스타일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과 돈과 열정의 투자가 있었음은 말해 무엇하리. 


 30대의 젊은 나이로 충남 * * 에서 사업을 할 때다. 전국체전이 끝나고 늙은 말들을 폐말 처분하게 되어 민간인들에게 불하한 일이 있었다. 그 때문에 주위에 말 타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게도 생각지 못했던 말을 타보는 기회가 왔다. 세 아이들의 엄마가 말 타러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백 호랑이띠가 헛말이 아니었다. 


 헬멧을 사고, 승마 장화와 승마 바지를 사서입고 * * 공설운동장에서 말 타는 걸 배웠다. * * 가에 신록으로 늘어진 실버들 속을 마사회 멤버들과 달리던 기분. 그리고 * * 에서부터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와 말 타고 지나던 일. * * 에서 * * 가는 국도변에 코스모스 꽃이 끝없이 이어지고, 멋과 낭만이 넘치는 단풍 길을 멤버들과 말을 타고 걷거나 달리던 추억들이 리플레이 된다. 


 삼십여 년 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와서도 승마하는 곳을 찾았다. 뉴 마켓 북쪽으로 가서 말을 몇 번 타보기는 했지만 그때 내 형편이 승마하러 자주 갈수가 없었다. 


 올해 3월로 나는 환갑이 지났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승마를 더 해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라왔다. 평생을 잠이 많은 난데, 새벽에 눈이 떠지고 잠이 안 왔다. 이대로 세월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죽더라도 마음껏 말을 타보고 죽으리라는 생각을 누를 수가 없었다. 


 토론토의 뉴마켓 쪽을 중심으로 마장들이 많다. 지난 4월부터 마음에 드는 마장을 찾느라고 며칠을 뒤지고 다녔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말과 마장뿐이었다. 무슨 프로가 되겠다는 게 아니다. 다시 한 번 말을 타보겠다는 의지만이 불타올랐다. 


 마장을 결정하고 승마하러 일주일에 한번, 혹은 두 번 가는데, 지난 주중에는 말 주인이 베엘과 다른 세 마리의 말을 자기 차 뒤에 연결하는 말차에 싣고 약속장소로 왔다. 뉴 마켓 쪽의 어느 공원.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나무들로 우거진 숲이었다. 토론토 근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영화 아바타에서 본 그런 풍경이었다. 그 속에 길들이 있었다. 한 시간 정도를 오르고 내리다 보니 말을 타고 처음 떠났던 곳, 공원의 주차장으로 다시 왔다. 베엘도 나도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추억의 덫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백 호랑이 띠 값을 하느라고 그러는 걸까? 베엘을 만나게 되고,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내 생애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말은 아무나 타나, 미쳐야 탄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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