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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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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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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이가 어때서” 가수 오승근씨가 부른 노래로 근래 유행하는 한국의 가요인데 박자가 빠르고 신나는 노래다. 너무 놀랐다. 양로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 노래를 이렇게 신나게 부르실 줄이야, 이 노래가 끝나자마자 한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이런 노래 부르면 안 되나?” 하신다. 


 “되지요, 무슨 말씀이세요? 노래도 부르시고 사랑도 하셔야죠,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인데요” 이 말을 들은 함께 색소폰을 부는 분과 위문 공연차 도우미로 **에서 온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깔깔깔 웃는다. 


 토론토에 거의 한인전용이라 할 수 있는 ***양로원에 노인들을 위한 위문 봉사를 하러 다닌 지 3년이 넘었다. 한 달에 한 번, 두 번째 주 목요일이면 으레 색소폰 악기 통을 챙긴다. 마음은 양로원에 미리 가있다. 낯익은 할머니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니 어머님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우리들의 어머님, 아버님, 오늘도 변함없이 부모님들의 정든 얼굴들을 뵐 수 있을까 해서다. 아버님들은 몇 분 안 된다. 


 어머님들이 단연 오래 사시는데, 노래 할 때 나오시는 분들은 그래도 건강이 양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휠체어에 태워 부모님들을 오락실로 밀고 들어온다. 움직이지 못하고 방에 누워만 계신 분들도 여럿인데 들여다보면 울적한 마음이다. 


 이곳 양로원에 계신 부모님들을 보면 보통 80세 정도부터 100세 정도까지로 볼 수 있는데, 100세가 넘으신 분도 몇 분 된다고 한다. 장수 시대에 살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께 “늘 나오시던 ***호실 어머님이 안 보이는데요?” 하고 물으니 멀리 멀리 가셨다고 한다. “아니 지난달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는데요...” “노인들은 알 수 없어요.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두커니 서있게 되고 가슴이 먹먹해 옴을 금할 수 없는 일이 가끔 있다. 그야말로 생의 마감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모르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발이 동동 굴러진다. 인간의 일생이 이래야만 되는가? 


 이곳 부모님들의 삶을 상상해 보면, 한국의 1920-1930년대 전후로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어려운 때 태어나 20대 전에 결혼들 하여, 보통 칠 팔남매 이상을 낳고 고생들을 많이 하셨을 것이다. 


 36년 일본의 식민지 정책 아래서 나라 잃은 슬픔 속의 고통을 견뎌냈을 터이고, 또 피나는 6.25 전쟁을 겪고, 시부모님들과 시누이들 시동생들과 자급자족해야 하는 농사일이며, 재래식 부엌에서 고된 일, 시대적으로 힘든 시기들을 다 격지 않았겠나. 어머님들의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한 세기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역만리 캐나다라는 나라에까지 어떻게 흘러들 오셨는가? 토론토 땅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셨는지 감사가 넘치는 음성으로 “캐나다 정부가 효자여, ***양로원이 내 보금자리여” 라며 한국의 어느 노래에 맞추어 ***양로원에 대한 가사를 만들어 부르시기도 한다. 


 우리 어머님들은 눈물이 나도록 마음만은 씩씩하시다. “자 어머님들 좋아 하시는 노래 합창 한번 해 볼까요?”하면 이구동성으로 “동숙의 노래”를 부르자고 한다. 어쩌면 음정 박자 감정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순진한 어린애들 같이 박수 치며 잘들 부르실까,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하여 사무친 미움...” 60년대 후반 문주란이 불러서 히트 했던 노래가 아닌가, 또 그 옛날에 유행했던 노래들, 여자의 일생, 봄날은 간다, 타향살이, 황성옛터에서부터 요즈음 노래로 너는 내 남자, 나도 한땐 날린 여자, 사랑은 아무나 하나 까지 다 나온다.


 몸은 시들어가도 어머님들의 마음만은 아직도 불타는 청춘이다. 참으로 고맙다. 잊을 수 없이 잊어야만 하는 좋고 나쁜 세월들을 뒤로 한 채, 웃으면서 울고 울면서도 웃어야만 하는 어머님들의 희뿌연 눈동자들은 막을 수 없는 세월에 순응한다는 듯, 인생은 일장춘몽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써있는 것 같다. 


 지금은 흘러간 가요들을 색소폰으로 신나게 빵빵 불어 대는데, 나도 15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세월 앞에 먼저 가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나이 60이 넘어 색소폰을 배워서 이렇게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노래 부르고 춤춰 드리고 색소폰 얼마든지 불어 드릴게요. 우리 어머님들 아버님들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만 사세요” 


 부모님들은 힘없는 팔을 저으며 “서울의 찬가”를 합창으로 항상 즐거운 시간을 마친다. 돌아오는 내 등 뒤에는 “언제 또 와?” 하는 어머님들의 음성이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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