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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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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쌈박질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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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쌈박질만 해”

 

 

 토론토의 노스욕에서 살때 만났던 M 엄마가, 피어슨공항에다 다시는 캐나다땅 안 오겠다고 영주권을 내던지고, 한국으로 역이민 간 것이 아마도 20년 전 쯤으로 추측이 된다. 캐나다에서 하던 비즈니스가 잘 안되고, 뜻한 바가 안 이루어지니 고민하다가, 남편과 의가 좋은 시숙이 한국에서 부동산 사업도 크게 하고, 경제적으로 좋아지는 한국이 그리워서 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M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름아름 수소문하여 내 전화번호를 찾아냈다고 한다. 반가워서 어떻게 된거냐고 물으니, 캐나다로 다시 왔다는 것이다. 아뿔싸! 

 

 M엄마의 말 “한국에 가서 건물도 짓고, 시댁식구들과 재미있게 지내고는 있었지만 아들 둘이 결혼하여 토론토에서 살고, 손자들이 있으니 어떻게 해, 결국은 자식 곁으로 오게 되었어”

 

 얼마 후 내가 전화를 했다. 요즈음 어찌 지내시느냐고, 온지가 여러달 되었고, 안정되어 가는데 그냥 심심하다고, 남편은 70세가 되었고 M 엄마는 67세란다.

 

 그러더니 하는 말, “요즈음 쌈박질만 해, 하루세끼 같은 밥, 같은 반찬에 자기두 질리지... 트집만 잡어, 다 싫대, 생각하면 저이도 불쌍 허지, 조실부모한데다가, 평생 고생만 하고 살았는데, 이제 살만 허니 몸뎅이 안 아픈 데가 없구, 병원만 다녀, 오늘도 저이 땜에 치과에 다녀왔어... 나두 안 아픈 데가 없수...“

 

 어디가 그렇게 아프냐고 하니, “허리두 아프구 귀가 또 아프구, 한국에서 다니던 치과를 여기 와서도 계속 다니구, 산부인과도 가구, 여기 저기 고장 안 난데 없수”

 

 병원가기 힘들어도 자꾸 가서 고치고 살아야지 어쩌겠느냐고 하니, 또 “나 보고 맨날 한국 티비 연속극만 본다구 짜증을 내, 티비 보지말구 글이라두 써 보래나? 내가 평생 글 한줄이라두 써본 사람이우? 나보고 취미가 없다구 신경질만 내. 이혼하게 생겼쑤...”

 

 나는 수화기를 들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이나 그렇게 있었다. 사람은 참 진국이고 얌전하고 착한 분인데... 나이 들어가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늙어가는 얼굴을 마주보는 것도, 매일 먹는 밥도 감사해야 하는데, 질리고 지겨워지고 싫어지기까지 하다니...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요즈음 일본에서 뜨는 말로 졸혼 이라는 것도 있던데...

 

 서로가 할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 즉 돈을 쓰는 일이든, 돈을 버는 일이든,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특히 부부간에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나 봉사 활동 등, 이제는 그런 일들이 은퇴한 후의 삶에 얼마나 절실하고 절박한 현실이 되었는가?

 

 M 엄마는 나보고 항상 뭐하는데 그렇게 바쁘냐고 한다. 나로 말할것 같으면, 취미가 많아서 탈이다. 이메일도 주고받는 사람이 여럿이다 보니 컴퓨터도 아주 끄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가 전기가 나가든가 어떤 일로 인하여 인터넷이 안 되면 수돗물 안 나오는 것보다도, 전화 안 되는 것보다도 더 속이 탄다. 그야말로 내 인생 불꺼진 창이다.

 

 앉으면 글 써야지, 승마도 하러 가야지, 색소폰도 불어야지, 노래도 불러 봐야지, 각종 모임에도 나가야지, 양로원 봉사 등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가야 할 곳이 많고, 시도 때도 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유학생들한테도 가봐야지, 요즈음은 댄스에 미쳐서 연습에 몰두하다 보니 여간 동동거리는 게 아니다.

 

 하루 24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책을 볼 시간도 빠듯하고 걸을 시간도 없이, 당최 먹을 것 챙겨먹기도 바쁘고, 김치는 아예 사먹은지 오래다.

 

 시간을 쪼개어 커피샵에서 M엄마를 만났다. 무엇인가 취미 좀 가져보라고 권했더니, “나는 무취미가 취미야. 여자가 그렇지 뭐. 평생 살림만 하고, 남편 가게 일 뒷바라지 좀 하고, 집이는 참 재주꾼이야, 심심 허진 않겠수” 말은 일사천리다.

 

 “무엇인가 보람 있는 일이랄지, 즐거운 일이랄지, 능력을 발휘하고 살아봅시다. 예를 들면 골프를 해 보던지, 컴퓨터를 배워보든지, 문예교실에 나가서 글 쓰는걸 배워보든지, 그림 교실에 나가보든지, 노래교실에 나가보든지, 에어로빅이라도 수영이라도 볼링장이라도 가보던지 해요”

 

 “나 아무것도 하기 싫어, 이 나이에 뭘 하겠어, 또 내가 정말로 뭐라도 하러 나다니면 저 양반 그 꼴도 안 볼 양반이라우, 나는 운전도 못하고”

 

 “두 분이 컴퓨터 좀 해보세요,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엔 무궁무진한 상식과 지식들이 들어 있어서 시간이 얼마나 빨리가고 재미있는지 알아요? 컴퓨터는 시간 잡아먹는 도둑놈이랍니다. 이메일은 할 줄 아세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일러줘서 가끔 하기도 했다기에, 여러 번의 전화 끝에 이메일 주소를 알아냈다. 이메일로 재미있는 글, 뉴스, 여행정보, 노래, 시사, 각종 건강 정보 등을 여러 번 보냈는데도 답 메일이 없다.

 

 얼마 후 다시 만났다.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간에 함께할 수 있는 취미로 스포츠 댄스를 권했다. 자세한 설명 끝에 “이건 춤이라기보다 땀이 흠뻑 나는 운동이니, 그렇게 운동을 하고 오면, 잠도 달고, 밥도 달고, 짜증도 안 낼것 같으니 좋지 않겠느냐고, 우선 내가 나가는 댄스 연습장에 한번 와 보라”고 했다.

 

 한국인이 올림픽에서 보더라도 금메달을 많이 따고, 경제면이나 모든 면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아직도 댄스문화는 대중적으로 볼 때 뒤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씨도 안 먹히는 말이었다.

 

 고정관념이 깨어지지를 않고,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제일 쉬운 일인데, 또한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렇지, 생각을 바꾸면 그 사람이 아니지...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수긍을 하는 것 같은데도 “이 나이에 춤은 미쳤나?” 한다. 하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랬었으니까.

 

 생각의 빗장을 그렇게 단단히 찔러 놓았으니, 어느 장사가 열꼬? M엄마 부부의 여생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쌈박질만 한다는 그 말이 요즈음 나의 두 귀에 무거운 귀걸이처럼 걸려 있다.

 

 시 한편이 생각난다.

 

 

우리들의 삶의 무대가 (용해원)

 

 

우리들의 삶의 무대가 막을 내리기 전에

마음껏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죽음이 언젠가 우리를 갈라놓을 걸 생각하면

사소한 일에 가슴 아파하고

미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 갈수록 가면 갈수록

점점 줄어드는 삶의 시간들 속에

마음껏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열렬히 사랑해도 언젠가 둘 중에 하나는

홀로 남을 것을 생각 하면

작은 일로 화를 내고 투정할 필요 없이

삶을 온통 사랑의 시간들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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