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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람들도 영.호남(嶺.湖南)으로 반목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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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사람들 가운데도 경상도와 전라도가 뿌리를 내려 반목을 했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일본에서까지도 이럴 수가 있는가. 


 그뿐 아니라 조선사람도 아닌 일본사람들 사이에 왜 이런 한국의 지역감정이 존재하는가에 의문을 가지게 되어 나름대로 살펴보기로 하였다.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일본의 국가 형성에 대하여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일본은 신화이지만 태양의 여신인 아마 테라스 오카미[天照大神]로부터 니니 기노미 코토[邇邇靈神]를 거쳐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니니 기노미 고토는 할머니가  아마 테라스 오카미이고 니니 기노미 고토의 증손자가 초대 천황인 와카 미 캐 누 놈이 고토 진무천황이라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본 츠구시(筑紫) 후쿠오카(福岡) 구시후루다게(久旨布流多氣)에서 니니 기노미 고토의 제사를 매년 지내고 있는데, 이들이 한국의 김해 구지봉龜旨峰)을 향하여 제례를 지내고 또 그곳을 방문하여 유사한 참배를 한다고 하니 왜 그런가 한 즉, 김해 구지봉이 자기들 조상의 발원지라는데 구지봉의 일본식 발음 역시 구시후루다게로 일본 것과 동일하게 발음되고 있는 것이 우연한 일치는 아닌 것 같다. 


 김해 구지봉 역시 가야국 김수로왕[AD 199]이 알에서 태어난 곳으로 이는 일본 야마도 정권 이전의 스진왕조가 가야계였다는 사실을 보면 일본은 가야계가 세웠으며 당시 영남지방 사람들이 일본으로 많이 이주하였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김용운 단국대 교수].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역사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일본은 아래와 같이 시대가 구분되고 있다.

 

 

 *참고: 김수로왕 사망 AD 199, 금관가야 멸망 AD 562
                
           

                    

 즉, 고조선이 망하고 난 뒤 일본으로 건너간 유민들이 농경시대인 야요이 시대를 열었으며[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신라에 의해 가야가 망한 뒤 역시 일본으로 건너간 유민들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니니기노미고토[邇邇靈神]에 의하여 진무천황이 등극함으로써 개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일본은 가야가 세우고 백제가 통치하는 시대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데[김용운 교수], 백제는 고구려 시조 주몽이 전처 자식인 유리에게 고구려를 맡기자 부인 소소 노는 자기소생 비류와 온조를 대리고 남하를 하였으며 비류는 미추홀[인천]에서, 온조는 서울에서 나라를 각각 세웠는데 이를 비류백제, 그리고 온조 백제라 한다. 


 비류백제는 이후 해양국가로 강성하여 한반도 서남부 즉 지금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남도 일부를 영토로 넓혔으나[일본서기 참조]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의거 망하고 온조 백제는 항복함으로써 명맥을 이어오다가 비류백제의 땅까지 통합하게 된다[윤명철 동국대 교수].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15대 오진(甕津) 천황인데, 왜냐 하면 그는 일본 가야계 스잔왕조를 뒤엎고 야마도 정권을  세웠기 때문이다. 환단고기 대진국 본기에 의하면, 오진 천황은 부여국의 의라 왕자라는 설도 있고, 비류백제의 마지막 왕인 옹진왕이라고 하는가 하면, 백제 개로왕의 동생 곤지[AD 461}라고도 한다.


 당시 곤지는 일본에 있었는데 그에게는 5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그중 하나는 백제 동성왕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무령왕이 되었다 하며, 스다하치 신사에서 발굴된 거울에서도 사마(斯麻)가 남자 동생 왕에게 거울을 보낸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데, 사마는 백제 무령왕이며  미루어 보아 그 동생은 일본 개체천황으로 추정된다 한다[윤명철 동국대 교수].


 따라서 일본 천황가는 백제 계통으로서 나당연합군에 의거 온조 백제가 망하게 되자 백제의 부흥을 위하여 27,000명의 지원군을 보내었으나 백강 전투에서 패하므로 인해 더는 백제를 구할 수 없게 되는데, 이때부터 신라를 미워하게 되었으며 영남지방으로 부터 도래한 모든 유민을 동국 지방 즉 애도 쪽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한다[김용운 교수].


 그 후 500년이 지나서 시모노세끼 해협에서 대 해전이 벌어졌는데, 이는 겐지가(源家)와 해이가(平家) 사이의 싸움이었다 하는데, 겐지가는 신라계이고 헤이가는 백제계라고 하니 오늘날 한국의 영.호남과 다름이 없다.


 백제계 헤이가는  AD 1185년, 단노우전투에서 그들의 안덕 천황이 수장됨으로써 패전하게 되어 산속 깊숙히 잠적하게 되는데 현재 구마토 현 시라토리아에는 해발 1000 m나 되는 곳에 헤이가  마을이 있으며 여기에  제50대 간무 천황의49대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간무 천황은 2001년 아키히토 천황이 한국방문 시 무령왕과의 혈연관계를 언급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헤이가 가문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川家康)을 겐지가(源家)로 분류하고 있다. 현재도 헤이가는 겐지가와 서로 반목하고 있으며 혼사도 하지 않고 있다 하니 오늘날 한국의 영.호남 갈등이 새삼스럽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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