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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기

부동산캐나다 칼럼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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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피아니스트(The Pia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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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 제목에 끌려 친구 Y와 함께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열리는 장면마다 전쟁물이다. 아 잘못 왔구나! 처참한 것이나 살상을 일삼는 전쟁영화나 조폭(組暴)물은 끔찍한 생각이 들어 언제부터인가 외면하고 싶은 심리적 반응이다. 더욱이 나치 정권하의 학살 장면은 이젠 피하고 싶었다. 연륜 탓인가, 영화 감상 취향도 변해가고 있다. 


 나는 4.19세대다. 어릴 때 6.25 전쟁을 경험했다. 한국전쟁이 세상에서 제일 참혹한 전쟁인줄 착각하며 살아왔던 세대다. 그러나 영화 장면 진행에 따라 나로 하여금 삼매경에 들어가게 하였다.

 

 토론토 시내 북쪽 한 공원에 Holocaust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내가 사는 집에서 그리 머지 않은 곳이기에 가끔 그곳을 방문한다. <피아니스트>의 장면들이 클로스업 되어 유태인들의 마음을 읽어본다.

 

 1939년 9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독일군의 첫 번째 공격 타겟이다. 폴란드의 삼백 오십만 중 삼십육만이 폴란드계 유태인이다. 폴란드가 독일 경찰과 게쉬타포에 점령당한 후 그들의 고난은 시작된다. 1939년 12월 그들은 Arm Band를 착용하도록 명령받는다. 독일군의 잔인하고도 무차별한 살생은 실로 처절하다. 단지 유태인이라는 것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기아에 허덕여야 하고 거리를 마음대로 걷는 자유도, 심지어는 공원의 벤치에 앉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36만 명의 폴란드계 유태인은 1945년 전쟁 말기 겨우 20여 명밖에 살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1979년 영화 Tess로 최우수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고 <The Pianist>를 제작 감독한 Roman Polanski는 그 자신이 어릴 때 Holocaust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언젠가는 이 끔찍한 폴란드 역사의 한 Chapter를 자서전적이 아닌, 그러면서도 사실적인 배경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폴란드의 자랑스런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Wladyslaw Szpilman)의 메모아(Memoirs) 중 첫번 Chapter를 읽은 후 다음의 영화 제목은 <The Pianist>로 정할 것을 결심한다. 스필만 배역을 유럽 영국 등 샅샅이 찾아보았으나 실패, 마침내 미국에서 에드리언 브로디를 발견한다. 폴란스키는 스필만의 외모적 흡사함보다는 이미지를 부상시키는데 더 관심을 두었으며 에드리언 브로디는 스필만 역을 기막히게 소화시킨다.폴란스키는 비록 기억하기에도 끔찍한 일이나 Szpilman의 생애를 통하여 희망에 찬 긍정적인 면을 본 것이다. 감독 자신이 Krakow Ghetto 바르샤의 폭격에서 살아 남았기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영화 속에서 재현해 보기를 원했다.


 스필만은 그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많은 순간을 지나 이때의 체험을 수기로 썼으며 전쟁 직후에 쓰여졌기에 진솔(Genuine)하고도 생생한 스토리로 가득 찼다. 저자가 현실을 냉정하리만치 사실적이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에서 기술한 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었기에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시간 30분동안 상영되는 이 영화는 주인공 피아니스트의 처절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의 연속이었다. 가슴을 조리며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장면들, 몸서리 치면서도 그와 나는 일체가 되어 한걸음 한걸음 그의 뒤를 쫓아갔다. 


 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거의 기아 상태에 있는 주인공은 전쟁 말기에 독일 장교에 노출되고 만다. 영락없이 총살감이었다. 독일 장교는 주인공과 대화 중 그가 피아니스트란 말을 듣고 피아노 한곡 연주를 부탁한다. 그리곤 폐허가 다 된 부서진 건물 안에 댕그머니 놓여 있는 피아노 방으로 그를 안내한다.

비록 피골에 상접된 그의 모습이나 신들린 사람처럼 두 손은 건반 위에서 춤을 춘다. 지상에서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그 순간 스필만은 온 영혼을 손끝에 실려 몰아지경에까지 들어간 듯 싶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독일 장교는 그를 살려줄 것을 결심한다. 이 극한 상황에서의 연주는 승화된 인간 모습 그대로였다.


 피아니스트는 장교에게 고맙다고 한다. 그 때 이 장교는 “Thank to God. Not me"이 한마디를 던지고 그는 자리를 떠난다. 이래서 폴란드의 자랑스런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살아 남은 20여명 중의 하나로 명감독 로만 폴란스키에 의하여 우리 앞에 재현되었다.


 나는 이 영화가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하였다는 폴란스키의 말을 믿는다. 그리고 이 역사 의식이 강한 유태민족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 속에서 숭고한 휴메니즘을 다시 발견할 수 있어서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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