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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기

부동산캐나다 칼럼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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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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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을 가득 채운 두 눈동자를 보았다. 형용할 수 없는 인간의 고뇌를 모두 이야기해주는 그런 눈동자였다. 영화 <World Trade Center>는 이렇게 막을 연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관의 참사 현장이 실감있게 재현되고 있다. 처음 장면에서 끝맺음까지 손에 땀을 쥐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 장면에 이르자 목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감동과 분노를 억제치 못하고 눈물이 볼을 적시고 말았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 했다. 더욱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때 그 감동은 더하다.

 

 아침 일찍 출근한 뉴욕 시민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경찰관들은 상관으로부터 당일의 업무지시를 받고 출동하던 중 엄청난 사건에 접하게 된다. 경찰도 소방대원도 사건현장으로 달려간다. 현장은 글자 그대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원자폭탄에 맞은 것처럼 무너져 내려가고 있다. 빌딩이 붕괴되면서 아침에 출근한 수천 명 사람들의 생명이 희생되는 순간이다. 이 때 4명의 구조대원 중 경찰관 두 명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리고 두 명은 죽는다. 살아 숨쉬는 그들의 이름은 윌리엄 히메노와 죤 메너풀이다. 


 어느 교회 안에서 목사와 젊은이의 대화 장면이 나온다. 그 젊은이는 자기가 해야 할 미션(Mission)이 무엇인지 안다. 이미 모든 구조대원은 철수하고 있는데 그는 순교자적인 자세로 혼자 뚜벅뚜벅 처참하게 깨진 콘크리트 조각을 헤치며 아직도 구출해야 할 사람이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 목숨 건 탐색전에 들어간다. 밝은 손전등을 켜들고 단 한사람이라도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거란 그 믿음은 결국 두 경찰관의 위치를 파악한다. 


 한편 콘크리트 무덤에 깔려 꼼짝 못하는 죤과 윌 두 경찰관은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명을 지켜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쇠파이프를 흔들며 목을 축이려는 안타까운 시도. 누군가가 이 소리를 들었으면 하는 소망, 갈증이 극에 달하여 죽음 직전에 물병을 든 예수와의 만남으로 다시 소생하는 윌. 의식은 점점 멀어지나 가족과의 환상적인 대화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죤.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이런 장면들이 어우러져 생명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다. 


 목숨을 내건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행동으로 표출되는가. 이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은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 절대 절망의 상황에 놓여있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여기에 초점을 두고 나는 영화의 흐름을 따라갔다. 윌이 죽음의 12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죤이 그 긴 22시간을 견디며 생명이 꺼지지 않은 것도 가족에 대한 끈질긴 사랑과 하나님께 향한 신앙이었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구조된 두 경찰관의 구조사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 드라마다. 인종간의 차별도 없다. 구조작업엔 계산된 어떤 영웅심도 없다. 마지막 죤이 들것에 실려 구조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는 살아난 마지막 사람에게 쏠려있다. 형용할 수 없는 침묵! 생명의 대화만 오갔다. 


 아! 이것이 바로 인간 사랑의 극치였구나. 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본질을 보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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