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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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딱해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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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그런데 언젠가 박완서 씨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중에서 저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신 것을 읽고 또 읽으며 난 너무 재미있어 남편과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다. 


어쩌면 이렇게 표현을 잘 했느냐며 “엄마 심정이 꼭 이랬거든” 하며 역시 대가라 다르긴 다르시구나 하며 읽고 또 읽어보며 웃음과 감탄을 연실 해대긴 했어도 워낙 암기력이 없는 나로서는 감히 흉내도 낼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제삿날이 되면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는다. 그런데 그때 표현으로는 “닭 목을 비틀어서 죽여야 하는데” 집에 남자들이 없을 때는 닭을 잡지 못해 남자들의 손을 기다리느라 부엌을 들락거렸다. 남자들을 기다리다 시간이 늦어지면 집안에 있던 여자들이 누구인가 닭을 잡아야 했다. 


그때마다 서로가 미루다가 뜨거운 물을 들고 나가서 눈을 돌리고, 한 사람은 두 발을 꼭 잡고, 한 사람은 칼을 들었는지는 기억에 없고 살아 있는 닭을 잡느라 난리를 쳤다. 난 무서워서 이미 대문 밖으로 달아나서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런 기억 때문이었는지 게장은 주로 살아 있는 것으로 담가야 제 맛이 난다고 하는데 난 살아 있는 것은 만지지를 못하니, 지금 이 나이까지 그런 연유로 해서 게장을 한 번도 담가 보지를 못했다. 게장을 담그지 못하는 내게 아파트에 살 때 언젠가 훈이 엄마가 담가다 준 게장 맛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고 그때의 그 마음은 아직도 고맙게 간직하고 있다. 


 게장은 담그지 못해도 닭 정도쯤은 내가 손질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언젠가 닭을 한 마리 사다 놓고 보니 닭이 털만 뽑힌 채 통째로 그냥 들어 있었다. 처음엔 으레 닭 목은 제거가 된 채 닭다리만 있겠지 하고 닭이 든 봉지를 꺼내어 놓고 보니, 닭 발은 물론이요, 닭 목까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그래서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어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남편에게 그런 저런 상황 설명을 해 주고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싶었다.


 남편이 들어 왔기에 닭죽을 쑤려고 했는데 닭이 그대로 있어 준비하지 못했다고 그랬더니, 남편이 “참 딱하다.” 그래 그 나이 먹도록 그런 것도 만지지 못하느냐며 닭 발과 목을 제거해서 내가 보지 않도록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는 쓰레기 통속에 넣고서야 닭죽을 쑬 수가 있었다. 


 시장이라고 시간을 여유 있게 보는 것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필요한 것을 머릿속에서 하나 하나 끄집어내듯 손에 한두 가지 들고 다니다가 안 되겠네 싶어 그제야 바구니를 찾아서 손에 있는 것들을 담는 식이니, 집에 와서 보면 아니 이것도 빠졌네 저것도 없네 하기가 일쑤였다.


 그런 식으로 시장을 보다 보니 닭을 사면서도 닭 발은 본 것 같은데 닭 목은 안으로 밀어 넣었으니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차피 닭 목까지 보았다 해도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겠지 하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사고 말았겠지만.


 캐나다에 와서 도넛 가게를 할 때였다. 그 때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일을 하는 브라질 여자가 있었다. 어떻게 밤일을 하게 되었느냐는 내 얘기에 “노 초이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을 하는 거였다. 


그녀는 아이가 셋인가 그랬는데 아이들이 어려서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기에 밤일을 해야 하며, 아이들이 어리다 해도 집에서만 있을 형편이 아니고 밤일도 마다 않고 해야 한다는 아니, 선택의 여지없이 그 일을 해야만 한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밤일 하는 것을 가지고 뭐 선택의 여지란 표현까지 해야 하는 거야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살려니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그런데 그 생계 수단으로 해야 하는 일들 중에서 비록 동물일지언정 살생을 해야 한다든지, 그야말로 여자들 같은 경우는 몸을 팔아야 하는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해도 누가 그들에게 직업의 천하고 귀함을 논할 수 있으려나 싶다. 그것은 한낱 배부른 자의, 선택의 여지가 있는 사람들의 투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많은 직업이 있다. 생계를 위한, 직업이 적성에 맞아서 한다면 하는 일에서 보람이나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성에도 맞지 않고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 일인데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 때로는 내가 꼭 먹고 살기 위해 이 일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냐고 푸념에 한탄을 하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미칠 때면 난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아무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여자보다도 남자가 직업 전선, 생계를 위해서는 험한 일을 더 많이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굳이 ‘딱하다’는 표현을 써본다면 남이 나를 볼 때 딱해 보이는 것과 나 자신이 나를 돌아 볼 때 딱한 것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타인이 어느 한 사람을 놓고 볼 때 살아가는 모습과 종사하고 있는 일을 볼 때 더 없이 딱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은 타인 앞에 나보란 듯이 살고 있는 듯해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더 없이 딱한 사람도 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쓸 것인지, 정승처럼 살고는 있으나 개만도 못한 삶을 살 것인지는 삶의 의미,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많이 작용할 것 같다. 


이를테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은 말고라도 무슨 짓,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이면 된다는 사람들이나, 비록 보수는 많지 않아도 스스로 ‘자존심’을 가꾸어 가는 사람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세월이 흐른 다음 회한의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감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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