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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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이 더 좋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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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이곳에서는 그녀가 운전을 하지 않으니 쇼핑을 가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 밖을 나갈 때에도 그가 기사 노릇을 해야 한다고 한다. 피붙이라고는 딸과 아들이 하나 있긴 하지만 왕래는커녕 거의 전화도 없이 사는 그로서는 동생의 전화가 기다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겠다는 것은 물론이요, 전화조차도 반갑지 않다고 한다. 


 그 밥이라는 남자 역시도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고 물으면 이따금 골프나 치고 정원 손질을 하고 커피숍에 나와서 차 마시고 목요일이면 노래방을 가거나 TV를 보다가 잠이 들곤 한단다. 파트타임이라도 일을 해보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일을 하기에 체력이 달리기도 하며 그 동안 일해 왔던 소방서 일은 싫증이 나서 싫다고 한다. 


 난 그들 남매를 보며 나이 들수록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것이야 더 할 수 없는 축복이겠으나, 사람이 사는 데는 그렇게 많은 물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돈도 적당히 궁하기도 해봐야 중한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 부족한 줄을 모르는데 돈의 소중함을 어찌 알 것이며, 아무 하는 일 없이 물건 사들이는 것으로 소일을 한데서야 그 또한 사는 의미가 무엇이겠나 싶다. 


물질을 가지고 네가 얼마나 가졌느냐 우월 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면 하긴 그것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내가 자족하며 살 수 있는 물질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가 않다는 얘기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듯,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교육을 시켜 줌이 첫째요, 둘째는 그 언덕 정도만 된다고 해도 행운인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울게 되어 있다. 꽃이 지면 필 때가 있듯이 피어 있는 꽃은 지게 되어 있음은 진리와도 같다. 그러기에 흥할 때가 있으면 망할 때가 있고 다시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듯 그런 순환의 진리를 뉘라서 거스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런 저런 것들을 방심하지 않고 꾸준하게 지켜나갈 수 있을 때에 한 세상을 유감없이 살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잘못된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만큼은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살게 됨은 당연한 것이다. 강남으로 이사를 해서 몇 년 살면서 나는 투기가 아니라 투자 가치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최대의 투자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슬슬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을 즈음 아이들과 캐나다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젠 몇 평 늘려가는 것 가지고는 가슴 속이 채워지지 않는 거였다. 그래서 결국엔 이민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처음 캐나다에 와서 첫째는 비즈니스를 잡는 것이 우선이다 싶었고, 일 년이 채 되기 전에 도넛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또 집을 사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남편은 한국에 적을 두고 왔다 갔다 해야 한다고 집 장만하는 것을 뒤로 미루자고 하였지만, 이 넓은 땅에서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것을 왜 미루느냐고 고집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저래 가게 시작하고 1년이 조금 넘어 콘도를 하나 장만했으나 가게 사정이 어려워져 집을 팔고 렌트 아파트를 살게 되었다. 


 이런 저런 아픔과 고통을 겪으며 그럭저럭 5년이 넘어서고 있을 즈음엔 다시 또 이사를 가고 싶다는, 분위기를 바꿔 보고 싶다는 정도가 아니라 좀 더 넓고 큰 도시로의 꿈이 나를 부추겼다. 


 그 큰 꿈은 처음엔 어차피 내 나라가 아닌 외국에 나와서 살 바엔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더니, 10년이 넘어갈 즈음엔 새로운 것, 또 다른 분위기보다는 캐나다에 살며 내 조국이나 가고 싶을 때 한 번씩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울어졌다. 


 나는 내가 살고자 하는 대로 살고 있음이니 후회는 없지만, 두 딸들 또한 이곳에서 살게 될지 앞으로 한국으로 나갈 여건이 마련될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3세들은 한국말도 확실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영어도 해야 할 것인데 아이들이 직장생활을 하며 자녀 교육은 어찌 시키려나 그것이 좀 염려스럽긴 했다. 그런데 딸들이 하는 것을 보니 엄마인 나보다 훨씬 낫네 싶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참 편해진다. 


 그런데 얼핏 외국으로 나와 살다 보면 먼 훗날 한국이란 땅은 말 그대로 조국일 뿐이고 한국엘 가더라도 방문자, 관광객에 지나지 않게 된다. 뿌리가 한국이고 보니 부모가 되어 자손들에게 가슴 속 깊이 내 나라, 내 조국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살 수 있으려나 하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인생은 늘 새로운 것


 새로운 것, 미지의 세계를 찾고 싶은 욕구가 강렬할 때는 자칫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미지의 세계에 도취 되어 얼마만큼 나가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피곤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앞으로 가려던 마음을 잠시 쉬고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 식의 마음의 흐름이 ‘복고풍’을 몰고 오는 것이라 본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것은 묵은 것과 통한다는 얘기도 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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