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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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추(老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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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세 마리를 키울 때 얘기다. 한 마리는 다섯 살 되는 말티푸 종류의 암놈인 삼순이, 한 마리는 2살 반 되는 사냥개 종류인 수놈을 중성 수술 시킨 벼락이, 다른 한 마리는 한 살 된 말티즈 순종의 수놈 럭키다. 


 한 마리만 키우기 시작했는데 벼락이는 큰딸이 서울에 나가 있는 동안 키우다가 두고 올 수가 없어 데려와 한 식구가 되었다. 또 럭키는 작은 딸의 친구들이 키웠는데 그들이 키울 수가 없어 데려와 그야말로 덤으로 한 마리 더 키우게 되었다. 원래 세 마리씩은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아졌다. 


 난 개들을 보면서 어쩌면 사람과 그렇게도 똑같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이나 동식물까지도 나이 들고 늙어감이 눈에 보이는 듯 제일 나이가 많은 삼순 이를 볼 때면 처연한 생각이 든다. 


 삼순이는 요즈음 털이 많이 길어 더 나이 들어 보이기도 하겠지만, 한 살배기 럭키에 비하면 다섯 살이나 되었으니 어느새 몸도 무거운가 보다. 


 럭키는 수놈이고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 말 그대로 ‘팔딱팔딱’한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이 방 저 방 침대 위로 팔짝 뛰어올라 왔다가 또 팔짝 뛰어 내려간다. 삼순이 같으면 사뿐 올라오고 사뿐 내려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런데, 럭키는 오르고 내리는데 몸에서부터 생동감이 실린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노라면 어느 사이 또르르 따라서 내려온다. 그렇게 또르르 소리가 나도록 마치도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잘도 따라 다닌다. 따라서 내려오다가는 나보다 조금 빨리 내려간다 싶으면 그 자리에 멈칫 섰다가 올라가려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게다가 아침에 대소변을 보이기 위해 나갈 때면 쉬가 급하기 때문인지 바깥에 나가는 줄 알고 좋아서 그리 하는지 팔짝팔짝 내 허리까지 뛰어 오른다. 그런 럭키에 비하면 벼락이나 삼순이는 점잖다고 해야 할 만큼 조용하다. 


 벼락이보다 삼순이를 보는 마음은 마치도 남편이 새파랗게 젊은 씨앗을 들였을 때 여자의 시선, 모습, 마음이 그러할까. 젊은 여자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런 모습이 보여 삼순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것은 그 동안은 삼순이만 예뻐하다가 럭키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내가 럭키를 더 예뻐해 하는 것 같으니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거나, 나와 럭키가 삼순이 시선에서 벗어나면 둘이 어디 있나 찾는 모습에서도 그런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런 경우 내가 남자라 해도 이미 젊은 여자한테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데, 아내한테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마음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젊은 여자, 애인, 씨앗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말이나 행동이 보이면 마음은 더더욱 멀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럭키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엔 삼순이가 나이 들었다, 둔하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저 예쁘기만 했는데, 지금은 럭키와 삼순이를 보면서 ‘젊음과 나이 듦’의 차이가 확연하게 눈에 보인다. 그 예쁘기만 하던 삼순이보다 럭키는 어찌 그렇게 우습게 생겼나 싶은데도 삼순이보다 더 예쁘니 어쩌랴. 


 삼순이가 옆에 있으니 럭키를 마냥 예뻐만 할 수도 없어 삼순이가 없을 때 한 번 더 안아주곤 한다. 삼순이 한테는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억지로 가는 손길이기에 살갑지가 않다. 그러나 럭키는 그냥 보기만 해도 예쁘고 좋아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와 쓰다듬는 손길이다. 


 그것은 마치도 젊은 씨앗을 들인 남자가 본 부인 모르게 씨앗이 예뻐 못 견디는 심정이 그러 했을까 싶기도 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그리 흘러가니 아내한테 미안해서도 내키지는 않지만 다정한 척 말도 건네고 선물도 준비해 보지만, 마음은 이미 젊은 여자한테 가버린 것을 돌이킬 수 없어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그런 정경이 느껴진다. 


 럭키가 예뻐 한 번 더 안아 주려면 삼순이는 옆에서 시샘하는 서글픈 눈빛, 게다가 때로는 엄마가 럭키를 더 예뻐해 주나 감시하는 듯한 눈초리도 보이니 그런 눈빛도 싫은 마음이 든다. 


 럭키는 잠을 잘 때면 큰딸과 같이 자는데 삼순이는 식구들이 다 거실에 있어도 내가 방으로 들어오면 으레 따라 들어온다. 요즈음은 침대에도 빨리 올라오지를 못하고 낑낑거릴 때가 있어 그것 또한 보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려버리고 만다. 


 럭키가 오기 전엔 삼순이를 꼭 안고 자다시피 했는데, 이젠 옆으로 파고드는 삼순이가 다시 또 달갑지도 않은 마음이 들어 애써 한 번 더 쓰다듬어 주며 남자의 마음이 이럴까 싶은 생각이 스친다. 


 그런대로 금슬이 좋았던 부부가 마음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성과는 상관없이 몸과 마음이 다른 여자, 젊은 여자를 찾으며 부인에게 미안해서 억지로라도 본 부인을 한 번 더 안아주고 사랑해주려는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 


 ‘노추’ 아무리 예쁜 꽃도 시들고 나면 이미 그것은 꽃으로서의 본분, 생명은 끝이다. 그렇듯 여자 역시도 나이 들며 시들해지고 볼품없이 늙어감을 뉘라서 피하고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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