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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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은 안 되네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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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그 즈음 내 마음 속에선 지금의 남편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남편 역시 내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는데 다른 여자들과의 만남이 있는 것도 같았고, 남자들과의 교제도 많아서 늘 바쁜 남자처럼 보였다. 


 학기 초에 남편이 내게만 관심을 보이고 다른 만남이 없었다면, 난 처음부터 남편에게로만 마음이 쏠렸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내게만 열중하는 것 같지 않았었는데 H 씨는 내게 더 적극적이었기에 그와의 만남이 조금 더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 얼마 지나서 알게 된 얘기지만 H 씨는 나를 처음 본 순간 자기의 이상형이었다고 한다. 또한 H 씨는 그때 군대까지 갔다 왔으며 남편보다는 한 살이 더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H 씨 아버님이 그 해 환갑을 맞으시기에 외아들인 그로서는 가능하다면 그 해에 약혼식이라도 했으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처음 몇 달은 H 씨와 좀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여름방학 때도 여름 피서여행을 친구들과 같이 계룡산으로 갔다가 대전에 살고 있던 H 씨네 집에 가서 친구들과 같이 밥까지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H 씨 어머님이 해주셨던 호박전은 얼마나 맛있던지 호박전하면 그때의 추억 또한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그때 분위기로는 외아들의 여자 친구가 그들 중 누구일까 동네 아주머니인지 친척이었는지 H 씨 어머니와 같이 우리들을 관심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의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편지도 한두 통 오가지 않았나 싶다. 그것은 내게도 H 씨에 대한 호감이 어느 만큼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개학을 하고 우리의 관계는 확연해졌다. H 씨가 아닌 지금의 남편에게로. 문리대 내에서도 우리 말고 같이 잘 다녔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졸업 후에 결혼을 했기에 이를테면 그들과 우리가 캠퍼스 커플이 된 것이었다. 


 우리가 둘이 가까워지는 것 같았기에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H 씨는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기에 더 이상 볼 수는 없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우리 딸이 중학교를 다닐 때니 세월이 한참 흘렀을 때인데 우연히 친구네 아파트 앞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난 내심 반가웠는데 그는 눈인사만 하고는 안부조차도 묻지 않고 휑하니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 표정은 마치 자기에게 호감을 보이던 여자가 마음이 변해 다른 남자에게 갔기에 그 서운하고 맺힌 마음 지울 수가 없고 두 번도 보고 싶지 않다는 찬바람까지 도는 듯했다. 


 세월을 되돌려 지금도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결정을 하겠는가 물어본다면, 역시 똑같은 결정을 할 것 같다. 그것은 ‘꿩 대신 닭’은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꿩이냐 닭이냐 하는 얘기가 아니라 마음은 역시 한 곳으로 기울며 가슴 속을 차지하는 설렘이나 느낌은 본인만이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굳이 그때의 내 심정을 소상하게 들여다본다면, H 씨는 성격이 좋아서 내가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남자로 보이긴 했으나 키가 조금 작고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반면, 남편은 도시 남자의 세련됨이 엿보이는 그런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황혼을 바라보고 보니 새삼 귓가를 맴도는 얘기가 있다. 첫사랑에 관한 얘기, 결혼적령기에 있었을 때 교제를 했었거나 맞선을 봤던 사람 중에 지금의 남편이 아닌 그때 그 사람과 결혼을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든지, 왜 그때 그런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었느냐며 중매쟁이를 원망한다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나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인 것을 한 평생 같이 살아온 사람을 선택한데 대한 후회나 아쉬움으로 남아서야, 게다가 맺어준 인연에 대해 원망까지 한다면 그동안의 삶이 어떠했을까 하는 것 또한 본인만이 아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결정에 대해 두고두고 만족해하기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아쉬움이나 회한에 찬 얘기를 듣기도 한다. 옳은 결정이었고, 내 마음 가는대로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해서 한평생 살았다고 해도 그런 삶, 인생에도 아쉬움이나 후회는 남는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마음 가는대로 결정을 해서 살았던 삶은 다른 쪽을 선택하지 않았던 데에 대해서는 사는 동안 아쉬운 순간을 많이 갖지는 않는다. 후회하는 마음이 덜하다는 것이다. 둘, 부부의 마음이 같다면 한평생 미련 없는 삶을 살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언젠가 남편이 딸들과 술을 한잔 하는 자리에서 예전에 사귀던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고 했을 때 남편의 심경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이미 흘러간 세월인 것을. 그래도 그 시절이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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