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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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남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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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남자(2)

 

(지난 호에 이어)

 그 동안 고초가 얼마나 컸으면 저럴까 싶어 친정 식구들의 태도와 남편의 성격까지를 감안해서 듣자 해도 김포공항에서 잠실까지 가는 30분 이상을 더는 들을 수 없었다. 한 두 마디 거들면 너도 똑 같은 인간이라며 운전을 하다말고 액셀러레이터를 콱콱 밟는 바람에 기겁을 하며 놀래곤 하였다.

 

 도대체 그간의 상황이 어찌 되었기에 이렇게 불구대천지 원수 대하듯, 피를 토하듯, 나까지 포함해서 친정식구들을 난도질하듯 하는지 머릿속은 멍멍 귓속은 먹먹 가슴이 콱콱 막혔다.

 

 친구네 집으로 가 달라는 얘기는 들리지도 않는지 갖은 독설을 다 퍼부어 대더니 약속이 있다며 친정으로 택시 타고 가라면서 중간에 내려놓고 휑하니 가버리는 것이었다.

 

 난 그 무거운 이민 가방 하나, 끄는 가방 하나, 핸드백까지 들고 친정으로 가게 되었다. 친정으로는 도저히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의 문제도 그렇고 아무래도 엄마가 계시는 큰 동생 집에 머무르며 상의도 할 겸 올케 눈치가 보인다 해도 그 정도쯤은 감수해야 했다.

 

 친정 올케는 그동안 7남매의 맏며느리로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식구들 있는 대로 치다꺼리하느라 어느 만큼은 그 고초를 알기에 웬만하면 나라도 그런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친정에 가서 대충 얘기를 듣고 보니 남편이 나 없는 동안 주식에서 손해를 보게 되자 알게 모르게 내 형제들에게 돌아가며 부딪치다보니 도움도 받지 못하고 완전히 따돌림을 당한 상태였다.

 

 나 역시 아무리 피붙이라고 한들 이제 참을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서서 제발 눈에만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할까. 난 남편의 성격이나 친정 식구들 형편을 알고 있어 그간의 상황은 얼마만큼 짐작이 가고도 남는 터였다.

 

 남편은 만나자마자 핸드폰을 하나 주며 충전을 시켜 손에 꼭 들고 다니다가 받으라며 신신 당부를 하는 거였다. 그러면서 나중에 전화 할 테니 그런 줄 알라며 아침에 헤어진 남편한테서는 밤 11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다. 급하게 전화를 받으니 반은 울음이 섞이고 반은 겁에 질려 지금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가고 있다며 병원에 가서 전화하겠다며 끊는 것이었다.

 

 난 잠자리에 들려다 말고 이게 웬 아닌 밤중에 날벼락인가 싶어 초조하게 기다리니 전화가 다시 왔다. 강남 성모병원이라기에 급히 택시를 타고 가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목에 붕대를 친친 감고 있었다.

 

 그간의 경위는 이러했다. 남편은 친구와 같이 주식회사를 하나 설립해서 친구를 대표 이사로 하고 나와 큰딸아이가 이사로 들며 사업을 추진하던 중에 이권을 놓고 감정대립이 일기 시작하면서 끝 간 데 없이 상황이 극에 달해 있었다.

 

 남편 얘기로는 그 친구가 배신하는 기미가 보였던 1월 중순부터 전화 요금도 내지 않아 200만원 가까이 연체돼 있었으며, 관리비도 내지 않고 4월을 넘기고 있었단다. 그러니 친구인들, 전화 요금에 관리비까지 내지 않았으니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사무실에 있었던 짐을 내가 서울에 도착하기 전날 내몰다시피 밖으로 다 내어놓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짐을 우리 동생과 친구인 유 사장이 작은 고모네 집으로 대충 옮겨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도 남편은 그 오피스텔 내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을 통해 다른 사무실을 계약하려고 계약금까지 지불해 놓고 있는 상태에서 내가 서울에 도착하는 날 부동산 사무실 사람과 싸움이 붙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먼저 때려서 자기가 맞았다며 그 와중에 남편이 112에 신고를 하면서 경찰이 오고 남편은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몇 달 만에 만난 남편, 그것도 너무 말라서 몰라볼 정도의 남편이 이젠 그것도 모자라서 싸움까지 하다가 허리를 다쳐 붕대까지 감고 환자들이 입는 파란 가운을 입고 병실에 누워 있는 것을 보니 기가 막히기도 하거니와 앞이 캄캄했다.

 

 대체 남편이란 사람은 그 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하였기에 지금 저런 몰골로 있어야하는지 동정하는 마음은 잠깐이요 너무 한심스러워, 할 수 있다면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몇 달 만에 만난 남편과는 아침부터 핏대를 세워가며 할퀴고 괴롭힐 수 있는 만큼 치고 받고, 회포는커녕 얘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는데 저렇게 다시 또 병원신세를 져야하는 남편을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가져다 준 이불을 덮고 그 밤을 병원에서 잤다. 아침 일찍 가해자와 파출소에서 사람이 올 것이라며 떠밀다시피 해서 난 병원을 나서고 말았다. 남편이 병원에서 2주 가까이 있는 동안 가해자와 합의도 못하고, 치료비도 지불하지 않고, 환자복을 입은 채로 병원을 나오고 말아 병원 원무과장이 친정으로 전화를 했다. 치료비를 계산하지 않으면 수배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전화를 받고는 기가 차서 나가자빠질 지경이었다.

 

 한두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일 처리도 제대로 못하고, 게다가 사무실은커녕 둘이 머리 들이밀고 들어갈 방 한 칸 마련 못하고, 난 친정으로 남편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곤 하다가 이따금 밤늦게 집 앞에 와있다고 전화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남편이 가엽고 측은해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가도 어찌해서 일 처리를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는지 얼굴은커녕 목소리조차도 듣고 싶지 않고 소름이 끼쳤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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