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4 전체: 87,979 )
거리의 남자
hansoonja

 

 

거리의 남자

 

 이 글은 나와 남편이 서울에 나가서 있었을 때 있었던 일들이다. 딸들은 아빠의 치부까지도 드러내는 것 같아 엄마의 글쓰기를 반기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내가 겪고 살아온 얘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이기도, 누군가 현재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면 모쪼록 좌절하지 않고, 용기 잃지 않고 식구가 합심해서 잘 견디며 극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역이민을 계획하다

 

 2000년도에 남편과 같이 서울을 나갔다가 그곳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어 역이민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나 혼자 캐나다로 들어왔다.

 

 그 후 몇달 동안 전화로 들려줬던 남편의 얘기는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느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신문을 펼치면 우선 주식 시세부터 보게 되었다.

 

 그즈음 몇 번은 주가가 오르는가 싶더니 남편이 주식을 샀던 시세에서도 반 이상이 떨어지고 있었다. 전화 통화를 하며 주가가 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 걱정하지 말라며 4월 초에 나오라고 하더니 다시 4월 말에 나오라고 하기에 기다렸다.

 

 그러나 5월달에 접어들고 있건만 말이 이랬다 저랬다 종잡을 수가 없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비행기 표를 급하게 사서 그 밤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남편 말로는 아무 것도 갖고 나오지 말고 옷만 갖고 오라고 하였지만 당장 나가서 써야 할 그릇이라도 챙겨야할 것 같아 밤늦게까지 짐을 쌌다. 아이들도 불편 없이 쓸 수 있도록 해놓고 시집보내는 딸의 살림을 챙기듯 숟가락, 티스푼, 밥공기, 국그릇, 냉면그릇, 채칼, 조그만 정수기, 나무 주걱, 행주 등속까지.

 

 그동안 짬짬이 사두었던 커피 몇 병, 꿀, 참깨, 참기름, 비누, 샴푸, 치약 등 내 옷가지 좀 대충 챙겨도 이민가방으로 60Kg이 넘었다.

 

 그 밤은 자는 둥 마는 둥하고 마침 다음날이 내 생일이고 5월 중순이 작은 딸 생일이어서 같이 한다며 미역국을 끓여 아이들과 같이 아침을 먹었다. 큰딸한테는 생일선물이라며 티셔츠와 카디건을, 작은 딸에게서는 화장품까지 받고는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가방을 두 개로 하든지, 짐 무게가 넘는다며 난처해하는 것을 부칠 짐은 그것이 하나라며 떼를 쓰듯 부치게 되었다.

 

 두 딸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엄마가 나가는 대로 연락을 할 것이니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홀히 하지 말고 알아보라며 당부하듯 하고 나갔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오며 많은 인파 속에 남편을 찾을 수 없어 공중전화를 하려고 서있는데 남편이 알아보고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난 가슴이 쿵하며 내려앉는 듯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상으로 8, 9Kg이나 빠졌다고 얘기는 듣고 있었지만, 몇달 사이 그렇게 살이 빠져 초로의 할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어쩌다 벌써 저렇게 늙어 흉한 몰골이 되다니 싶어 연민의 정보다는 전혀 남남이 만난 것처럼 생경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남편은 내 짐보따리를 보자마자 언성을 높이며 너는 언제나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제 멋대로 한다며 정나미 떨어져 말하는 것조차 귀찮고 짜증이 난다는 투로 정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난 이 짐도 줄이느라 줄여온 것이니 남편이 화를 내도 할 수 없다며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남편과 같이 있었던 오피스텔엔 이번엔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몇 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주유소를 하고 있는 친구한테 전화를 해놨었다.

 

 남편 친구 오피스텔은 샤워시설도 없을뿐더러 그동안 남편과 일 관계, 돈 문제로 해서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상태여서 이 큰 가방을 들고 친정으로는 갈 수 없어 당분간 친구네로 가서 있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남편은 내 얘기를 듣자마자 자기 체면도 있지 친정을 놓아두고 웬 친구네 집이냐고 더더욱 못마땅해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친정보다는 그쪽이 더 나을 것이니 우선 친구네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남편이 세워 둔 차 있는 곳까지 힘들게 가방을 끌고 가서보니 그랜저 중고 차였다. 그나마 새차보다 중고차로 구입한 것까지는 좋은데 대체 이만한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고 묻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남편이 생각하기엔 그만한 차는 타야 한다고 결정을 했겠지만 예전과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건만 어찌 저리도 허세가 심할까 싶어 가슴속까지 묵직묵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차를 타자마자 옷가방만 달랑 들고 나오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왜? 무엇 때문에? 남편 얘기는 무시하고 멋대로 이렇게 큰 가방을 들고 나왔느냐 에서부터 너희 친정식구들이 그동안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아느냐며 친정 엄마에서부터 동생들까지 싸잡아 그동안 있었던 일이며 과거 얘기까지 들춰내는 것이었다.

 

 더 이상 분통이 터져 어찌할 수도 없다는 듯 소리소리 지르며 악을 써 대어 난 귀를 막고 마음 느긋하게 먹고 웬만한 얘기는 흘려들으리라 이를 악물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