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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란
(피커링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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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계신 올케언니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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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준비를 하라고 일찍 깨워준 전화 소리가 고맙다. “아이고, 작은 아씨! 여기 논산 막내 올케예요.” 나는 늘 새언니라 부른 터라 “새언니 전화 주셔서 고마워요.”하며 쌓인 얘기를 나눴다. 동네 사람들의 안부도 듣고, 흡사 고향에 온 듯 한 기분이다.


올케언니는 친구처럼 다정하고 격의 없다. 오빠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고, 5남매를 장성하게 키워 출가시키고 손주며느리까지 보셨다. 혼자서 고향의 본가를 지키며 부모님 생전에 효성이 지극하셨기에 열부상도 타신 장한 언니다.


‘올케언니 네 분과 친언니들 세 분 모두 혼자 되시었어도 열심히 사는 당신들을 먼 곳의 막내 시누이 동란은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한 많은 여자의 일생 이제 70세가 넘어보니 올케언니들의 처지를 이해합니다.’


“작은 언니도 아니고 작은 아씨 얼마만이래요? 다들 무고하고 고모부랑 아들, 딸, 손주들은? 큰올케 언니가 지척에 있어서 친구처럼 의지하며 복지회관(노인정)에서 주로 소일하신다는데 찾아 뵙지도 못하고 마음만 안타깝네요. 큰언니는요? 허리가 ‘ㄱ’자 모양으로 많이 굽으셨다면서요? 마음이 착잡합니다.”


밖에 내리는 비가 내 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어릴 적 고향에 있을 때는 명절 때나 큰 행사 준비로 오빠, 언니들이 본가에 모여 얼마나 반갑고 재미있었는데… 


큰올케는 사범학교 졸업 후 줄곧 교편생활을 하면서 오빠랑 연애하시던 시절에 내가 알아듣지 못하게 일본말로 대화 했었다. 그리고 나이 차이가 많은 큰올케는 우리 동네에서 나에게 제일 먼저 양장으로 스커트와 블라우스, 스웨터를 예쁘게 입혀주셨다. 조카랑 나랑은 6살 차이밖에 안 난다.


시집올 때 해오신 색동비단 이불을 막내 시누이에게 선물하셨던 분이다. 간호학교 시절에 큰오빠 댁에서 지낼 때 엄격한 오빠(선생님이셨기에)의 귀가 시간이 저녁 8시였다. 아버지보다 더욱 엄하셨던 분이다.


소풍날 맘보바지가 너무 꽉 맞는다고 벌도 세우고, 어느 미팅 날 파트너가 집까지 데려다 줬다고 추위에 대문밖에 세워두었던 호랑이 오빠이다. ‘아! 당신들이 계셨기에 잘 보낸 청춘 시절. 그 때가 아련합니다.’


마지막 고향 방문 때 색동 이불을 구해서 예쁘게 포장까지 해주신 오빠. 당신들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신 뒤 올케언니들 모두 강한 어머니로 이제까지 가족을 지키고 선조들을 모신 선산까지도 지키시네요.


언니들! 더욱 기운차고 즐거운 여생을 보내세요. 막내 시누이 동란은 항상 은혜를 감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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