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sul
설동란
(피커링 거주)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9 전체: 126,606 )
아버지의 날(Father’s Day)에
drsul

 

아버지의 날(Father’s Day)에

 

 나의 아버지, 벌써 세상에 안 계신지 오래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콧등이 시큰하다. 살아계실 때 잘 모시지도, 또 효도하지 못한 점이 가슴이 아련하다. 막내딸을 엄청히도 사랑하셨던, 근엄하시면서도 자상하셨던 아버지. 내가 간호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던 날 큰 오빠, 작은 오빠 집이 지척에 있었어도 어린 조카들이 있어 수면이라도 방해된다면서 여관방을 예약해주신 아버지. 밤새 부녀간의 애틋한 대화를 나누며 입담이 좋으셨던 친정아버지는 나에게 많이 가르쳐 주셨다.


 시험장에서도 몽당연필을 몇 자루 깎아주시며 “침착해라. 아는 문제부터 풀어나가라” 노심초사하시던 나의 아버지. 그때는 당신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가 없었고, 너무 어렸습니다.


 서독에 해외근로 간호사로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던 날 “얘, 막둥아. 내가 까만색 우산을 계속해서 폈다가 오므렸다 할테니 그 지점을 눈여겨 보면서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라”하시던 마지막 이별의 말씀.


 남편과 혼인말이 오고 갈 때도 새벽길을 떠나 충청도 시골마을 면사무소에 들러서 꼼꼼히 알아보시고 “그래 됐다. 그 정도면 OK다.” 승낙하시고 장ANS의 편지로 다독거리시던 아버지. 캐나다에 이민을 오고서야 첫아들을 보여드렸다. 고국 방문길에 아버지는 공항의 혼잡을 고려해 급한 대로 베개 홑청(무명천)을 준비하시고 ‘설동란’이라고 먹을 갈아서 멋진 플래카드를 준비하셨다.


 10여 년 만의 아버지와 가족들의 상봉길. 아버지의 친필이 이젠 유품이 되었다. 지금도 아버지의 유품으로 잘 보관하고 가끔 꺼내어 보면서 눈물이 나네요.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고맙고 감사를 드립니다.”


 간호학교 입학 당시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이시던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너무나 당당하시던 친정아버지. 너도 성인이 되었으니 교복을 벗어놓고 멋지게 숙녀복을 차려 입으라고 읍내 양장점에 데리고 나오신 아버지. 최고로 좋은 옷감에 가장 멋지게 옷을 지으라 당부하시고 후히 팁까지 얹어 선지급하시던, 어쩜 그리도 멋이 있던 나의 아버지. 생각납니다. 


 마당 끝에 심어 놓은 가지와 오이, 토마토를 푸짐히 준비하시고 “막둥아! 자, 먹자. 건강 영양이 듬뿍 하다”고 자꾸 권하시던 당신의 모습도 이제 뵐 수도 없이 수십 년이 지나가요.


 아버지! 저에게 주신 교훈 같은 가르침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남에게는 덕을 끼치고 이익을 주라. 남편을 잘 받들고 자녀들은 사랑으로 양육하라시던 부탁의 말씀도 순종으로 지키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운명하실 즈음에도 저의 졸업 앨범들을 잘 보관해 주시고 저에게 이렇게 남기신 글귀도 있어요. “막내딸아! 좋은 이름 석 자를 남겨라. 넌 설 동란이다.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나의 막내딸이니까 부디 열심히 살아라.” 마지막 글을 지금도 나의 보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육성을 녹음해서 저에게 보내주신 은혜. 아버지, 사랑합니다. 무엇으로도 은혜를 갚겠사오리까.


 아버지 날에 아버지의 경로대학에서 찍어 보내셨던 노인 학사모 사진을 앞에 놓고 아버지를 크게 불러 보겠습니다.


 말이 없는 남편도 오늘 따라 시부님의 별세 당시를 회상하는 것을 보니 6월 24일 모내기 한창일 때로 기억하며 아버지를 떠올리는 모습도 아련하다. 


 우린 이렇게 노인의 대열에서 지나간 뉘우침으로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아버지! 시아버님! 모두 영면을 빕니다. 저희의 마음도 함께 울리는 아침나절 아버지 날에 고인이 되신 친정아버지를 그리워합니다. -피커링에서 설동란 드림-

 

2015-06-18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