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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움막과 Root Ce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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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머니는 실향민이다. 평북 박천군의 꽤 부유한 지주 집안의 막내딸이었던 어머니는 해방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열강에 의해 38선이 그어지고 1, 2차 숙청에 의해 집안의 전답과 가옥을 공산정권에 빼앗긴 후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1948년 6월 월남을 결심했다고 한다. 


 낮에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 지내고 야밤에만 산길을 통해 남쪽을 향해 쉴 새 없이 걸어야 했던 월남길. 장마철이 시작되어 진흙투성이가 된 산길과 잔뜩 불어난 강을 넘고 또 넘으며 홀어머니와 오빠 내외, 네 명의 어린 조카들을 합한 총 여덟 가족이 남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어머니 일가의 월남과정과 피난살이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조이게 하고 온가족이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현재의 삶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는 생생한 힘이 있다. 특히 소리를 내면 발각될 수 있다는 어른들의 주의를 귀담아 들은 7살 어린 조카가 물웅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도 끝내 아무 소리도 내질 않아 가족들이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던 대목에서는 듣고 또 들어도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아찔한 긴장감이 있곤 했다. 


 지금도 부모님께서 토론토에서 멀지않은 곳에 사시는 덕에 세배 드리러 찾아뵐 때면 어머니의 옛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어머니께서 고향 식으로 빚으신 커다란 만두를 넣은 떡국에 동치미를 곁들인 새해 아침상을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실 때면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머나먼 옛날의 고향을 돌아보시는 듯하다.


 그리고 이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한겨울 김치 움막 속에서 꺼내 드시던 동치미의 맛이다. 많은 일꾼들을 거느렸던 큰살림 규모에 맞게 어머니 댁 김치 움막은 규모가 꽤 컸다고 한다. 항아리 여러 개가 들어갈 만큼 넉넉한 웅덩이를 항아리 주둥이가 흙보다 조금 높게 올라올 정도의 깊이로 파고 그 위로 사람 앉은 키 만한 높이의 지붕덮개를 덮은 구조였다고 한다.


 이북에서 한겨울에 드시던 살얼음 섞인 시원한 동치미의 맛을 기억하시는 어머니는 냉장고나 아파트 베란다, 김치냉장고 등에 보관한 동치미에서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 못하신다. 고향의 맛이라는 것이 그렇게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기가 쉬운 것이 아닌가 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북미에도 김치 움막과 비슷한 개념의 구조물이 있어왔다는 점이다. Root Cellar라 불리는 이 구조물도 역시 땅을 파고 지붕구조를 덮어 만들어졌는데, 보통 해치도어(Hatch door)를 통해 드나들게 되어있다. 한국의 김치 움막에 비해 비교적 큰 규모로 지어졌고, 겨울철에 식량이 얼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여름철에도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보관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곳에는 주로 감자, 당근, 양파 등의 야채와 염장육류, 잼을 비롯하여 집에서 빚은 와인까지 보관되었다.


 예전에는 석재나 목재, 흙 또는 시멘트 등으로 지어졌는데, 근래에 와서는 콘크리트로 지은 후 그 위에 잔디를 입히는 식으로 많이 지어진다. 이러한 기능의 구조물이 가옥의 지하실에 지어질 경우 Basement Root Cellar 또는 Cold Room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물이 그 옛날 어머니 고향집의 김치 움막이 만들어냈던 동치미의 쌉사름 하면서도 시원했던 그 맛을 만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번 겨울에는 땅이 얼기전 부모님댁 마당 한구석에 웅덩이를 파서 김치 움막을 한번 지어봐야겠다. 

 

20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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