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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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가라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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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24_30)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36-43)

 

마태만이 들려주는 “가라지 비유”는 그의 복음서 13장에 기록된 일곱 개의 천국비유 중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다음에 등장한다. 이 비유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서두인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에서 천국이 곧 자기 밭에 씨를 뿌린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소유 밭에 뿌리는 행위와 같다는 의미임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좋은 품질의 씨를 그의 밭에 뿌렸다. 그런데 밤중에 누군가 그 밭에 가라지를 덧뿌린다.


가라지는 잡초, 독초 또는 독보리라고 불리는 쓸모 없고 해로운 풀이다. 뿐만 아니라 가라지는 그 형태가 밀과 너무도 흡사해서 그 둘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이삭이 패기 시작할 때쯤이면 그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지만 그때 가라지만을 뽑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밀과 가라지는 뿌리가 서로 단단히 엉켜서 자라기 때문에 밀은 그대로 두고 가라지만을 제거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종들이 좋은 씨를 뿌린 밭에 생긴 가라지를 뽑아내겠다고 하자 주인이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한 것이다. 가라지를 없애려면 뿌리가 한데 엉킨 밀도 같이 뽑혀지는데, 그것은 한 밤중에 몰래 가라지를 덧뿌린 원수가 바라는 것임을 주인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인이 원수가 악랄한 의도로 아무도 모르게 뿌리고 간 가라지가 풍성한 밀 수확을 방해하며 자라도록 내버려 둘 의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추수할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다가 밀을 거두어 드릴 때 추수꾼들에게 일러 가라지는 따로 묶어 불태워 버리고, 밀만 그의 곳간에 보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주인의 계획이었던 까닭이다. 


주인은 원수의 사악한 마음을 훤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둔 것은 원수가 바라는 바를 무산시키면서 자기의 목포를 달성할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라지 비유를 상세히 설명해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님은 좋은 씨를 뿌리는 주인은 예수님 자신이시며, 밭은 이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나쁜 씨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 들려주신다. 계속하여 예수님은 자라지를 뿌린 원수는 사탄이요, 추수 때는 세상의 종말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라는 것도 밝혀주신다. 예수께서 설명해 주신 이 같은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다시 음미해 보면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이 높고 영화로운 하늘 보좌를 떠나 낮고 천한 인간의 형상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죄악으로 만연한 세상에 복음의 씨를 뿌려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사탄은 예수께서 이 중대한 사명을 성취하시기를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천국복음이 심어지는 곳마다 죄악의 씨를 뿌린다. 이 같은 악한 일을 함에 있어서 사탄은 위장과 거짓의 수법을 사용한다. 영원한 평화의 동산 에덴에 침투하여 아담과 하와가 그곳에서 축출당하도록 한 것도 그 방법을 사용해서였다.


예수께서는 그가 좋은 씨를 뿌린 밭에 사탄이 가라지를 심은 악한 의도와 비열한 방법을 다 알고 계셨다. 그러나 가라지를 골라내겠다고 자원하는 이들에게 그대로 두라고 명하신다. 세상에 하나님 모르시게 일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는 물론 하나님의 묵인과 승인이 없이는 아무리 큰일도 또 작은 일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숱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좋은 예 중의 하나가 동방의 의인 욥에게 찾아온 고난이다. 그가 당한 모든 고통과 아픔과 슬픔 모두 하나님이 지켜보시며 승인하였기에 일어난 것들이다. 


이 사실을 M. Llyod-Jones는 “From Fear to Faith"(두려움에서 믿음으로)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해 말해준다. “역사는 하나님의 주관아래,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백성들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사탄이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법이 그의 속성인 거짓을 동원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금단의 열매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창 3:1-6)란 거짓말로 하와를 유혹한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울부짖는 사자처럼 난폭하고 위협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벧전 5:8) 사탄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탄의 행위를 원천 봉쇄하지 않고 내버려 두신다. 하나님은 사탄이 사용하는 악한 수법까지도 그의 뜻을 이루시는데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사탄이 예수께서 씨 뿌린 밭에 밀과 함께 자라게 한 가라지는 이삭이 패기 전까지는 밀과 구별하기조차 힘들게 그 모습을 위장하는 잡풀이다. 그러나 이삭이 패면서부터는 가라지는 그 모습을 나타내지만 이 단계까지 자라난 가라지는 밀이 정상적으로 성장하는데 방해가 될 뿐 아니라, 그 이삭은 독성이 강해서 인체에 들어가면 구토와 설사의 원인이 되고, 심하면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독초인 것이다. 


이런 가라지의 특성은 하나님이 완전한 질서와 조화 속에 창조하신 세상을 무질서와 혼란 속으로 몰아넣으며 파괴하는 악한 세력의 역할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졌던 에덴동산은 영원한 낙원이었지만 그들이 사탄의 거짓에 현혹되어 범죄 한 후 추방된 세상은 온갖 고통과 근심과 슬픔이 떠날 날 없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무성한 험난한 곳이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낙원과 악의 세력이 득세하는 세상과의 차이는 이처럼 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얼룩지고 어두워진 세상을 정화시키고 밝히기 위해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이 땅 위에 세우셨다. 그러자 사탄은 교회에까지 가라지를 심었다. 그들은 알곡 신자들과 어울려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기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그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가라지의 탁월한 위장성과 잠복성이 몸에 배어있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많은 경우 교묘한 방법으로 물밑에서 교회의 문제를 야기시키는 작업을 주도하는 것이 그들의 특기지만) 본연의 자태를 드러내어 교회를 더욱 위태한 지경으로 몰고 간다. 가라지가 지닌 독성이 곡식의 성장을 방해하다 끝내는 그 곡식을 먹는 사람의 건강을 해치며 목숨까지도 빼앗아 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탄의 친위부대인 가라지 교인들에 의해 와해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가라지 성도 때문에 알곡 성도들의 믿음이 성숙해지고, 교회의 결속이 더욱 강화되어 성장하고 부흥하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믿음의 성도들은 교회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이들과 대립하거나 그들을 적대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교회의 파탄을 꾀하며 범죄를 일삼는 자들에 대해 교회가 침묵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교회의 징계가 필요한 것임은 예수께서 그 필요성과 징계의 절차까지 상세하게 일러주시기 때문이다.(마 18:15-17)


이 비유에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귀중한 진리는 하나님은 선한 인간들만 창조하셨고, 악한 사람들은 사탄의 창조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면 착한 사람들의 대열에 서게 되고, 사탄의 속삭임을 듣고 행하면 가라지 같은 인간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런 두 종류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고 있지만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천국 문에 들어서려면 선한 자의 대열에 서야 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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