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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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스스로 자라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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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막 4:26-29)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 비유는 그 내용이 씨를 뿌리고 잘 가꾸면 싹이 트고 자라나 좋은 열매를 수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옥토에 뿌려진 씨만이 풍성한 결실을 거둔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동일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는 별개의 것이며, 자세히 살펴보면 내용도 완전히 다른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전자는 씨가 어떤 땅에 떨어지는 가에 따라 거두어드릴 결실이 결정된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지만 후자의 초점은 떨어진 씨를 자라나고 열매 맺게 하는 놀라운 힘이 무엇이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로 시작된다. 서두만을 놓고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씨를 땅에 뿌리는 사람”과 같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를 묶어서 살펴보면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뿌려진 씨가 싹트고, 자라서, 열매 맺는 과정과 같은 것임을 말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은 풍성한 곡식을 거두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뿌려진 씨가 싹 터 올라 자라서 결실을 맺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 동안 농부가 해야 할 일은 많기만 하다. 씨를 뿌린 다음 날부터 농부는 땅을 고르고, 거름을 주며, 잡초를 뽑는 등의 온갖 힘든 일들을 되풀이해야 한다.


이처럼 농부는 쉬지 않고 땀 흘리며 일하지만 그의 수고와 노력만으로 원하는 것을 수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지 않으시고, 햇빛을 비춰주지 않으시면 어떤 결실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실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동식물의 성장과 그것들이 죽고 사는 것까지도 그의 권한에 두고 계시다. 따라서 농부는 때가 되면 밭에 나가 씨 뿌리고, 거름 주며, 추수 때가 되면 익은 곡식을 거둬 드리지만 그가 뿌린 씨가 어떻게 싹트고, 성장하여 열매 맺는 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씨앗을 밭에 뿌리고 그것이 싹 터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하나님의 일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부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좋은 땅에 씨를 뿌리고 쉬지 않고 보살피는 것뿐이다. 이것을 마가는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농부도 모르는 사이에 뿌려진 씨는 움이 돋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땅에 뿌려진 씨에서 싹이 나고, 다음에는 이삭이 나와 마침내 여문 알곡이 달리면 농부는 낫으로 익은 곡식을 거두어 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신학자 제레마이나(Jeremias)는 “뿌려진 씨가 없이는 추수할 알곡도 없다. 그러나 뿌려지는 연약한 씨앗으로부터 무르익은 곡식을 거둘 수 있는 것은 그 작은 씨앗 속에 엄청난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라 말하고 있다. 


미약한 씨앗 자체가 놀랍고 신기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생명의 힘으로부터 풍성한 열매가 달릴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이 비유를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요점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이 비유를 다시 읽으며 음미하면 서두에 언급된 “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의 장막을 벗은 후 믿는 자들이 가게 될 “사망과 애통과 고통과 슬픔이 없는”(계 21:4) 하늘나라 자체를 의미하기보다는 그런 하늘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과정을 작고 연약한 씨앗이 먹음직스럽게 익은 곡식이 되는 것에 비교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풍성한 수확을 걷을 수 있는 옥토를 찾아 씨를 뿌리는 것은 마땅하지만 복음은 그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사람들만을 선택하여 전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만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들려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씨를 세상 끝까지 뿌리는 행위인 것이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옥토에 떨어진 씨로부터 탐스러운 결실을 거둘 수 있듯이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마음에 복음의 씨가 심어지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들려주셨다. 


문제는 복음을 듣는 사람 모두가 옥토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듣고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람의 대열에 서지 못하고, 진리의 말씀을 받아드린 후에도 세상의 염려와 명예와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 굴복함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걸어야 할 길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진 복음의 씨가 싹트고 자라나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역사하고 계시다. 


지구촌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는 전도자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좌절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충실한 일꾼으로서 그가 주신 씨를 정성껏 뿌리고, 물주고 가꾸면 하나님께서 그의 시간표에 명시된 대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이 “Harmony of Evangelists"(전도자의 조화”에서 “전도자들은 그들의 노력에 대한 성과가 없을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더욱 용기를 내어 복음증거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 첫 서신에서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 바울이 그가 2년 간 머물며 전도하던 고린도를 떠난 후 고린도 교회에는 심각한 분쟁이 일어난다. 교회 내에 바울을 추종하는 “바울 파”,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설교를 하는 아볼로를 존경하는 “아볼로 파”, 기독교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베드로 파”, 하나님의 아들만을 섬기겠다는 “그리스도 파”가 극심하게 대립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분쟁이 있는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펼쳐드릴 수 없음을 지적하며 교회분규를 즉시 종식할 것을 간절하면서도 강력하게 지시한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나는 바울 파’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나는 아볼로 파‘라 한다니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나 바울이나 아볼로는 예수께서 주신 사명을 받들어 여러분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역자에 불과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을 뿐이고, 자라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와 아볼로는 복음의 씨를 뿌린 동역자들이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신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가 말해주는 또 다른 귀중한 진리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시는 분도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란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 위에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단 하나의 기관이 교회다. 따라서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동시에 교회가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확장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목회자는 “내 양을 먹이라.”는 예수님의 분부를 받들어 모여든 양떼들을 지키고 보호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의무를 수행할 뿐이다(요 21:15-22). 이 교회는 내가 세우고, 내가 부흥시켰으니 내 것이라 여기며 예수님의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운영하다(?) 아들은 물론 손자에게까지 물려주려는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예수님을 슬프게 하는 착각은 없다.


복음의 씨가 마음속에 심겨진 사람들은 그 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겸손하게 예수님께 매달리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숙한 믿음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비유를 통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교만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대로 말씀을 풀이하며,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만 행하며 주님 가신 발자취를 따르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익은 곡식들을 거두어 드릴 때 들판에 버려져 말라 버리는 비참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우리 구원의 대장 예수께서 그의 일꾼 된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신 복음의 씨앗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뿌리고 수고의 땀을 흘리며 가꾸고 돌보아야 할 줄 안다. 그래야만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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