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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의 칼럼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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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생베 조각은 낡은 옷에 붙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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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존되느니라.”(마 9: 14-17)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 요셉의 목공소에서 일하시며 인류구원의 사역을 준비한 분이시다. 그가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교육학을 공부했다는 기록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육자였다. 때와 장소와 대상에 따라 가장 적절한 방법과 내용으로 하늘나라의 진리를 선포하시며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설교를 하시거나 가르치시면서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다. 비유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사용하셔서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익숙한 구체적 사실이나 사물에 비교하며 이해시키신 것이다. 동시에 예수님은 복음을 배척하며 복음증거를 방해하는 무리들에게는 비유를 사용하심으로 천국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기도 하셨다.


제자들이 “어찌하여 그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 묻자 예수께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들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다.”(마 13:11)고 들려주신 것으로부터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생베 조각은 새 옷에 붙이지 아니하며, 새 포도주는 낡은 부대에 넣지 않는다는 비유의 말씀은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께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우리는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어째서 금식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답변하시면서 들려주신 것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기도와 금식과 구제를 그들이 행하여야 할 세 가지 의로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회당이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큰 길 가에서 기도했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금식했으며, 구제도 회장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에 하곤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 아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듣기 위한 의도적이고 위선적인 행위들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은밀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구제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의 가식적인 금식을 의로운 것으로 믿었기에 “우리들은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예수님에게 따지고 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어째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책임을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합류했냐는 점이다. 


예수님의 전령인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그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 하나님의 종이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간다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도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기쁨으로 충만하다며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니라.”며 조용히 사라져간 세례 요한이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은 스승을 따르던 무리가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광야에서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으며 지낸 요한처럼 그들도 금식에 익숙할뿐더러 당시 바리새인들이 하던 것 같이 일주에 두 번씩 금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 같이 정기적으로 금식하지 않으니 그 까닭을 알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유를 알고 싶어서 보다는 책임을 묻는 것 같은 그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대답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신랑은 그 자신을 가리키며, 혼인집 손님들은 그의 제자들을 의미한다.


그때 유대사회에서는 혼인잔치처럼 즐거운 행사는 없었다. 신랑 신부의 가족들과 친척들은 물론 친지들이 모두 모여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며, 며칠을 먹고 마시며 즐거워한 것이 당시 유대의 풍습이었다. 


신랑과 신부도 식이 끝나면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머물며 축하객들을 접대하며 함께 즐겼다. 이처럼 당사자들은 물론 온 동네가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한 행사가 혼인이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신랑인 그와 함께 있는 기쁨에 취해 있는데 슬퍼하며 금식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떠난 후에는 그의 제자들도 슬픔 속에 금식하며 고난 받을 것 임도 암시해 주신다. 


그의 제자들이 그네들처럼 금식하지 않는 것은 “지금은 금식할 때가 아니라.”고 일러주신 후 예수님은 “생베 조각은 낡은 옷에 붙이지 아니하며, 새 포도주는 낡은 부대에 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이 두 비유는 낡은 율법주의와 유대교에 젖어 예수님의 복음을 외면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책망이며 경고였다. 


새 천 조각으로 낡은 옷을 기우면 그 옷이 젖게 될 때 새로 댄 천이 수축되면서 낡은 천을 잡아당겨 옷 자체가 찢어지게 된다. 이 비유에 명시 된 “생베 조각”은 예수님의 새로운 교훈과 가르침을 의미하고, “낡은 옷”은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율법을 가리킨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삶의 지침이기 때문에 율법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신념이요 믿음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 엄격한 율법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입고 있는 그 낡고 잘못 지어진 율법의 옷을 벗기고 복음의 진리로 만들어진 새 옷을 입히기 위해 오신 분이다. 탕자가 제 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 입혔다. 죄로 얼룩진 낡은 옷을 입고서는 아버지의 집에 들어올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이 가장 의롭고 옳다고 자신만만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했다. 그들이 입은 낡은 율법의 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이 주시는 천국의 제복 입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처럼 무지하고 오만한 그들에게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면 옷이 못 입게 되어버린다.”고 일러주신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심으로 율법으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옛날에는 병이 없었기에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포도주를 담아 보관했다. 그런데 포도주가 발효되고 숙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팽창되는 가죽부대는 원상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늘어 날대로 늘어난 가죽부대는 새 포도주에서 생기는 가스로 터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생겨나는 새로운 사상과 수많은 변화를 받아드리려면 우리 생각의 틀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역사를 이끌어 가는 창조적 소수가 자신의 성공철학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 나머지 새로운 도전에 과거의 방식으로만 대응하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하여 역사진보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간다.”라 말한 바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보는 이 역사학자의 말은 믿는 자들이 예수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라 하신 깊은 뜻을 이해하고 깨달아 삶 속에서 올바로 적용하는데 큰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교회에서 오르간이나 피아노 이외의 악기가 연주되기 힘들었고,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하나님을 찬양하면 바람직한 성도의 자세가 아니라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이 “새 부대”로 변화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을 구원하고, 상한 심령들을 치유하며,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열심히 모여 복음성가를 부르며 주안의 기쁨을 누리며 믿음이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교회의 분위기를 어지럽힌다며 교회 출입을 금지하다 문을 닫고만 교회도 있었다. 낡은 부대가 터져버린 서글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역사적이며 시대적인 사명으로 받아드려 수행해야 할 줄 믿는다. 온갖 종류의 새 술이 쏟아져 나와 믿는 자들의 믿음을 흔들며,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저해하며 그 운명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때가 지금이니까 말이다. 예수님 안에서 기쁨과 소망을 지니고 굳건한 믿음 위에 서서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우리들 되어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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