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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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물고기 입에서 은화를 꺼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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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 17:22-27)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중 제일 많은 것이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치신 것이다. 나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고쳐주셨으며, 귀신에 사로잡힌 많은 사람들을 악령에게서 해방시켜 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인간의 육체적 질병이나 정신적 질환만을 치유해주신 것이 아니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심으로 그는 자연을 지배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며, 오병이어와 칠병이삼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심으로 그가 곧 창조주시며 생명의 주인 이시라는 사실도 나타내 주셨다.


이런 기적들과 비교해 보면 물고기 입에서 은전을 꺼내는 것은 기적이라기보다는 동화 속의 이야기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바다에서 잡은 고기 입에서 돈을 끄집어 낸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일 뿐 아니라, 깊은 신학적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


이 사실을 이해하려면 성전세에 관한 것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은 정착하는 곳마다 회당을 세우고 거기 모여 예배를 드림과 동시에 서로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곤 했다. 그러나 각종 민족적 의식을 행하며 제사를 드린 곳은 하나뿐인 예루살렘 성전에서였다. 이 성전을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다.

 
조석으로 제사를 드릴 때마다 일 년 된 양을 제물로 바쳐야 했고, 포도주와 밀가루와 기름도 있어야 했다. 거기다 매일 태워야 하는 향과 최고급 천으로 만들어야 하는 성전휘장과 제사장들의 예복을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경비 또한 엄청났다. 이십 세 이상 유대인들은 이 막대한 예산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성전세를 매년 반 세겔(장년 남자의 이틀 분 임금)씩 납부해야 했다. 성전관리자에게 성전세 미납자의 재산을 억류하는 권한까지 주어질 정도로 엄격하게 징수된 성전세는 출애굽시대부터 제도화 된 것이다.(출 30:11-16)


예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의 선생은 성전세를 안 바치느냐?”고 묻는다. 부정형으로 물은 것으로 보아 예수님이 성전세를 안 바치는 것을 확인하여 문제 삼으려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던 것 같다. 베드로는 망설이지 않고 “물론 바치십니다.”라 대답한다. 조금이라도 예수님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하려는 베드로의 진심이 배어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베드로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한 것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신 듯이 예수께서 물으신다. “시몬아, 세상 임금들이 세금을 자기 아들들에게서 받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서냐?”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입니다.”라 대답한다.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와 제자들은 성전세를 면제받을 수 있지만 합동하여 선을 이루기 위하여 납부하시겠다고 밝히신 것이다.


고대시대에서는 세금은 점령당한 나라 백성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임금의 가족들은 세금징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위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다. 성전에서 일하는 랍비나 제사장들도 성전세를 내지 않았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성전세를 바치실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성전세를 바치라고 베드로에게 분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당시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하고 있던 로마정부에도 세금을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성전세 문제 이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묻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마 22:11)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그들의 의도를 무산시킨 지혜로운 답변이셨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네들의 간교한 계교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기에 국민은 정부에 복종해야 하며, 국가의 정책에 순응하고 협력해야 함은 물론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롬 13:1-7)


예수께서 그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입적되었기에 성전세를 면죄 받아 마땅하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로마정부에게도 납세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하신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첫째로 믿는 자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며 살아야 하지만(마 5:13-16),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과 화평해야 하는 의무도 지니고 있다(롬 12:18; 히 12:14). 이 둘을 다 감당하려면 하나님의 뜻에 본질적으로 위반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주어진 권리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믿는 자들이 철두철미 교리와 원칙으로 무장하고 천국복음을 외쳐대며 그들의 입장과 권리를 내세우는 것보다는 불신자들과 어울려 그들을 사랑과 인내로 대하며 그네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를 심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우고 확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랑과 열성으로 전달하면서도 전략적으로 행동해야만 풍성한 전도의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제일 잘 이해하고 복음을 증거 하는데 활용한 전도자가 사도 바울인 것은 그의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의 과정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성전세를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 낚시를 던져 제일 먼저 물리는 고기의 입에서 은화를 꺼내라고 일러주신다. 간단하고 쉬운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기적처럼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도 드물다.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기들 중 한 마리가 입에 은화를 물고 있다가 베드로의 낚시에 걸릴 확률은 수백 억 분의 일도 안 된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 낚시를 무는 고기 입에서 성전세 낼 돈을 꺼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바다에 사는 고기 한 마리 한 마리의 움직임을 알고 계신다. 물고기뿐만 아니라 공중에 나는 새들과 산과 들의 짐승들의 소재까지도 알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 예수께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세상이 주는 근심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며, 예수님의 눈을 피해 죄악의 길을 걸을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 입에서 돈을 꺼내 성전세를 바치게 하는 이 기적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같으면서도 깊은 진리와 교훈을 들려준다. 그런데 이 기적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기록은 복음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기록에 없다고 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행하신 대부분의 기적들은 그가 하신 말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가 물고기 입에서 세금 낼 돈을 꺼낸 이 기적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대로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마태는 어째서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이 기적의 목적은 예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것 아닌 기적을 통해 믿는 자들이 세상에 살면서 지켜야 할 중대한 원칙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기적 자체를 조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지 않아도 좋을 성전세를 납부하라 하심으로 믿는 자들도 그들이 통치자들의 통치에 순응하며, 사회제도와 체제를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는 성전세를 납부할 돈을 고기를 잡아 그 속에서 찾으라고 알려주셨다. 


이 대목을 해석하면서 그의 권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신 적이 없는 예수께서 그와 베드로의 성전세를 고기 입에서 꺼내는 기적을 행하신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견해를 표명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그 자신을 위해 물고기를 잡아 돈을 꺼내는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 세상나라의 시민으로 살면서 필요한 물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을. 


어부출신인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아 그 속에서 은전을 꺼내게 하신 것은 믿는 자들은 각자의 업에 충실해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또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지침이요 가르침이신 것이다. 


수고의 땀을 흘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사회의 기본원칙은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우리는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힘써 일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시며, 세상나라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행하며 살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능력을 부여해 주실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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