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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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회 광복절 기념식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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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오전 11시,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제73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있었다. 이 뜻 깊은 기념식에 애국지사기념사업회(캐나다)가 세 가지 순서를 담당했다. 


첫째, 조국의 광복과 관련된 동영상 상연. 둘째, 애국지사들을 소재로 한 문예작품 공모 입상자들에 대한 시상. 셋째, 최근 출판기념회를 가진 ‘애국지사들의 이야기.2’를 동포사회에 소개하는 것 등이었다.


이 같은 순서들을 기념식순에 포함하여 기념식을 진행하니 광복절 기념식 전체가 퍽 짜임새 있게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표정에서 광복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아 흐뭇한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애국지사기념사업과 광복절 기념식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업회는 1910년 경술국치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제와 맞서 싸운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우리 후손들이 그 분들을 닮은 삶을 살아갈 자세를 확립하자는 취지로 발족된 단체다. 


한편 광복절 기념식은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흘린 고귀한 순국의 피가 거름이 된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되새기는 행사다. 이와 같은 현실적 배경은 사업회가 기념식을 보다 엄숙하고 성대하게 거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광복절 기념행사가 의례적인 연중행사로만 끝나지 않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여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믿는다. 


삼일절이나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할 때마다 기독교에서 가장 큰 명절인 성탄절과 부활절을 기념하여 드리는 예배를 생각하곤 한다. 많은 교인들이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마음 속 깊이 모셔드리고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아름답고 귀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오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려하던 성탄장식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일상생활이 시작되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아기 예수가 누울 곳이 없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활절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히 믿는 성도들의 삶은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할 수밖에 없다. 현재 당하는 고난과 고통과 환난과 시련이 아무리 클지라도 장차 나타날 찬란한 영광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원히 사는 특권이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는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네.”를 소리 높여 부르며 죽음을 정복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절 예배 단상에 노였던 백합화가 치워지면서 현실적인 삶의 문제들로 인해 진통하며, 부활신앙까지 잃어버리는 성도들까지 생기게 된다.


  광복절 기념식에서 옷깃을 바로잡고 순국순열들을 위한 묵념을 드리고, 나라와 겨레를 살리기 위하여 가족과 자신의 인생을 버린 독립투사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슴에 새기며 그들처럼 살겠다는 결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결심이 작심삼일 되어 사라져버리고 광복의 의미와는 거리가 먼 자신만을 위한 삶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광복절이나 삼일절 기념식에서 느끼게 되는 역사의식이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명감 또는 책임감은 일상생활에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지금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서 독립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생업을 접고 위기에 봉착한 조국의 안보와 침체된 경제를 부흥시키며 혼란된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일에 나설 처지에 있지는 않다. 꼭 그렇게 해야만 애국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을 한탄하며 일제와 투쟁한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지니고 살려면 적어도 두 가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지금 잘못된 역사관과 국가관을 지닌 무리들에게 현혹 당하는 조국의 선량한 국민들의 귀와 눈을 열어주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언제 무슨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국가의 안보는 날로 위태로워지고, 세계정상을 향해 발돋움 하던 경제성장은 멈추었고, 민심은 날마다 불안해지는 가운데 국론마저 양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며, 진실과 정의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부끄럽고 한심하고 안타까운 현상이 당당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슬픈 현실을 보면서도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며 침묵하거나. 뒷전에서 불만만 토로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일 뿐 아니라 민족적 죄악을 범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상황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진실이란 포장지로 교묘하게 싸여진 상자 속에 들어있는 거짓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말해 줄 의무와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애국하는 길이요,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 조국을 살리는 길인 것이다.


광복의 의미를 살리며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민족애를 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생활 속에서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업회에서 매년 실시하는 애국지사들에 관한 문예작품 공모에 응모한 작품 중 한 구절을 소개한다. 


“저는 지금 캐나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단골손님들이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친절히 대하고,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물건을 장만하고, 부지런하고 깔끔한 한국인의 특성을 심어주는 것 역시 애국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크고 거창한 일을 해야만 애국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열정적인 연설이나 시국강연을 통해 나라사랑을 외치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뿐이다. ‘애국’이란 단어조차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그 뜻을 설명해 주고, 애국지사들이 흘린 피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들려주며, 이곳에서 태어난 2세들에게 태극기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가르쳐주며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생활을 통한 애국행위인 것이다.


  이역 땅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동포들이 선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로 뭉치는 일 역시 훌륭한 애국심의 발로라 믿는다. 지난 선거에서 조성준, 조성훈 한인이 온타리오 주의원으로 당선된 것은 한민족의 캐나다 이민사에 새로운 장을 연 획기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조성훈 의원이 당선된 윌로우데일 선거구에서 한인 유권자의 30%만이 투표했다는 통계를 보고 쓸쓸해지는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30%나 투표에 참여했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드릴 수도 있었지만 “동포투표율이 100%에 육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란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로서 살 수 있는 길은 많기만 한다. 이번 광복절 기념식을 통하여 동포들의 마음에 73년 전 해방을 맞이했을 때 3천만 동포들의 가슴마다 넘쳐 흘렸던 감격과 기쁨이 찾아 들고, 그 환희와 희망을 간직하고 모두가 작은 애국지사들이 되어 이 땅 위에 한민족의 얼을 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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