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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의 칼럼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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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중풍병자를 고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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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음으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여,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하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하더라.“(막 2:1-12)

 

 

갈릴리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며, 모든 병과 악한 것들을 고치시던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몰려왔다. 그곳은 베드로의 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집안은 물론 입구까지 막혀버리게 사람들이 모여든 까닭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혜택을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다른 목적으로 그곳에 온 사람들도 있었느니 예수님의 동태를 살피러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들이었다. 모인 사람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때 중풍병자 네 사람이 누운 침상을 들고 왔다. 발 부칠 틈도 없이 모여든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에게 가까이 갈 수 없음을 알고 그들은 침상을 들고 지붕위로 올라간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집 지붕은 평편했고, 집 벽에 붙은 층계를 타고 지붕위로 올라가게 되어있었다. 그 층계로 지붕에 오른 그들은 진흙과 건초를 섞어 만든 지붕을 뚫고 병자가 누운 침상을 예수님이 앉아계신 밑으로 내려 보냈다. 그들의 행동은 거기 있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그들을 지켜보신 예수님도 그네들이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 구멍을 내고 병자가 누운 침상을 내려 보낸데 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그들의 믿음만을 칭찬하셨다. 어째서 일까?


우선 그들은 중풍병자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오기만 하면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실히 믿었다. 예수님은 어떤 병마도 물리칠 수 있는 권능의 소유자이시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에게 접근할 수 없게 되자 남의 지붕을 헐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들이 그 같은 모험까지 하면서 예수님께 데리고 온 병자는 예수께서 “작은 자”라고 부르신 것으로 보아 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젊은이를 침상에 눕혀 예수님 앞으로 나온 네 사람의 정성과 사랑과 용기는 믿는 자 모두가 본받아야 할 귀중한 자질과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 정상인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고, 예수님은 반듯이 그를 고쳐주신다는 믿음으로 충만했기에 남의 집 지붕을 뜯어내기까지 한 것은 진정한 사랑과 용기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일이야 말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한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 같은 그들의 진정한 믿음을 보셨기에 그들의 무례한 행동을 꾸짖기는커녕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여,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은 병 고침을 받고자 예수님 앞에 나온 병자를 실망시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은 “네 믿음이 너를 온전케 하였다.”란 말씀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여기서 병마와 죄의 연관성에 관하여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고대인들은 심한 병에 걸리거나 뜻밖의 재앙을 만나면 지은 죄로 인해서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 물었을 때 예수님은 “본인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함”이라 답변하심으로 모든 병이 다 죄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중풍병자의 경우도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말씀하신 후에 그가 걷게 된 사실로 보아 그가 중풍병자가 된 까닭은 그의 죄로 인함이었음은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고 여겨진다. 그렇지 않을 지라도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그의 죄가 사함 받았다.”고 밝히신 것은 인간에게 찾아오는 슬픔과 고난의 근본원인은 죄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체념상태로 누워있는 중풍병자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신 후 그의 “죄가 사해 졌음”을 선언하시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하나님 한 분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현장을 포착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신 예수께서 물으신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과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란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말이다. 


둘 다 말하기는 힘들지 않다. 그러나 어느 것을 말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누구에게든 “죄 사함을 받았다.”라 말하면 그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누구나 그렇게 말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그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런 말을 한다는 건 그들 스스로 “신성모독죄”를 범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형벌은 죽음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풍병자에게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겐 중풍을 치유할 권능이 없었던 까닭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막 11:30) 물으셨을 때 그들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잠잠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보며 예수님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왔노라.”하시고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명하신다.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전신이 마비되어 들것에 실려 온 병자가 그가 누운 상을 들고 집으로 갈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명하신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주기 위함이었다.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는데 내가 이 중풍병자에게 죄를 한다고 하니 너희들이 내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임도 나는 알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중풍병자가 죄 사함을 받고 벌떡 일어남으로 몸과 마음이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보여주겠다.”


예수님의 명령을 듣는 순간 중풍병자는 즉시 일어나 그가 누었던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할 줄 안다. 첫째는 들것에 실려 온 중풍병자는 예수께서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말씀하신 순간 영육 간에 새롭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유대 전역을 다니시며 각종 병자들을 고쳐주신 까닭은 유대 지방에 병자들이 하나도 없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예수님이 유대 땅 구석구석을 몸소 찾아다니시며 불치의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은 그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심과 동시에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고통이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들며, 낭패와 실망과 좌절이 소망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느끼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그런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그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이 확실히 믿게 하기 위함이셨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불철주야로 상한 심령들을 온전케 하시며 온갖 문제로 인해 진통하는 육신들이 새로워지는 권능을 행사하신 것이다.


침상에 누워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왔던 중풍병자가 그의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크게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우리들의 매말아 가는 영혼이 새로워지고 연약해 지는 육신에 힘찬 활력이 솟아나는 것은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이런 기적의 역사는 언제든지 일어나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운데 그의 영광이 높이 들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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