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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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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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마 8:14-15)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데,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막 1:29-31)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눅 4:38-39)

 

 

 예수께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낳게 하신 기적은 그가 가버나움 회당에서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을 고쳐주신 안식일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 날도 예수님에게는 바쁜 하루였다. 그 아침에 예수께서 하신 첫 번째 일은 회당에서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에게서 악령을 쫒아낸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더러운 귀신까지 그에게 복종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놀라며 예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제 하인이 중풍에 걸려 심히 고통 받고 있습니다.”라 하소연하자, 예수님은 즉시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 말씀하신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까지 오시게 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나으라는 말씀만 해주시면 제 하인은 낳을 것입니다.”라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온 땅에서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하신 후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말씀하신다. 바로 그 시각에 백부장의 하인은 깨끗이 나았다.


 이처럼 놀라운 사랑과 자비와 권능을 보여주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베드로의 집으로 향하셨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으로 가신 것은 심방을 위해서도 아니고, 열병으로 누워있는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치시기 위함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가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곳으로 향하신 까닭은 그 날 아침부터 바쁘게 지내시노라 누적된 심신의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셨다. 여기서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베드로의 집은 가버나움 아닌 벳새다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빌립과 한 동네인 뱃새다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요 1:42)


 그렇다면 베드로는 가버나움에 집을 한 채 더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가난한 어부 베드로가 집을 두 채나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선 듯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이 의문에 대해 스펄존 목사는 베드로가 벳새다에 있는 집울 처분하고 가버나움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더 충실하게 섬기고 모시며 예수께서 언제라도 그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실 수 있도록 주님이 제일 많이 활동하시는 가버나움으로 이사했을 것이란 것이 스펠존 목사의 견해인 것이다.


 예수님에 의해 고기 잡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선택된 베드로는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 제자가 되었다. 언제나 열두 제자들 앞장에서 예수님의 대변인 역할을 했으며, 예수께서 가시는 곳 마다 그림자처럼 따르며 주님을 보좌한 제자가 베드로였다. 물론 그에게도 실수는 있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 “나는 그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곧 통곡하며 회개한 베드로는 죽기까지 복음의 깃발을 들고 선두에서 달렸다. 베드로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알렉산드리아(Clement of Alexandria)에 의하면 베드로의 아내 페테투아(Pertetua)도 남편과 함께 충성된 주님의 종이 되어 부활의 중인으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그의 아내는 함께 체포되어 처형되었는데 그녀가 순교하기 직전 베드로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님을 기억하시오.”라며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그녀를 격려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자신도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의하면 주후 67년 6월 29일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 베드로는 감히 예수님과 같은 자세로 십자가에 오를 수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달렸다고 한다. 이같이 베드로가 육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예수님의 충성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자세로 주님을 따르며 섬겼기 때문이다. 


 피곤한 몸으로 베드로의 집에 들어서신 예수님의 눈에 어두운 방에 누워 신음하는 여인의 모습이 들어온다. 의아해 하시는 예수님에게 함께 온 요한과 야고보가 베드로 아내의 어머니가 열병에 걸렸다고 말씀드린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녀의 손을 만지시어 열병을 고쳐주신다. 예수께서 행하신 다른 기적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치유해주신 행위는 다른 모든 기적을 베푸실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한없는 인자하심과 그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 성행했던 열병에는 세 종류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말타 열병(Malta Fever)이였다. 몸이 허약해지고, 자주 빈혈증세를 일으키다 몇 달 만에 죽게 되는 병이었다. 또 다른 것은 장티브스 비슷한 열병으로 간헐적으로 고열에 시달려야 했으며, 마지막 열병은 말라리아였는데 황달과 오한증세를 동반했으며 그 당시에는 치유될 확률이 극히 적은 무서운 병이었다. 그 시기에 가버나움은 이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서식하는 지역이었기에 베드로 장모가 앓았던 열병은 말라리아였다고 여겨진다. 


 예수님의 귀한 사도 베드로의 집에 죽음의 병마가 침투했다면 아무도 세상의 역경과 환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아울러 우리가 깨달아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시련과 고통의 세찬 물결이 몰려올 때 우리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을 부르는 것이다. 베드로 장모의 경우에는 제자들이 그녀가 열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을 예수께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의 전능하신 손을 그녀에게 내밀었으며, 그 순간 그녀의 생명을 위협하던 말라리아가 떠나간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열병에 걸린 사람의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 열병을 앓는 사람 곁에는 접근조차 하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열병으로 신음하는 여인의 손을 주저하지 않고 잡으셨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버려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심과 동시에 한 순간에 병마를 몰아내는 그의 권능을 보여주신 것이다.


 혼수상태로 누워있던 베드로 장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즉시로 예수님의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열병으로부터 완전히 치유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손길이 그녀의 몸에 닿자 열이 내리기 시작하고 원기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사경을 헤매던 그녀가 곧바로 원기왕성한 정상인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역사는 조금씩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완벽하게 일어나는 법이다.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 같이 말이다.


 병마를 떨쳐버리고 일어선 베드로 장모가 한 첫 번째 일은 부엌으로 들어가 피곤하고 시장하신 예수님이 잡수실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 안에서 새 생명 얻는 즉시로 해야 할 일이 그녀처럼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죄의 길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품에 안긴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우리들이 간과해서는 안 뒬 또 하나의 사실은 베드로 장모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 예수님을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도 앞에 나서는 일, 언론에 두각 되어 세상의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삼만 명 목회를 평생의 꿈으로 간직한 목사가 있었다. “삼만 명의 성도가 몰려들게 하옵소서.”라 쓴 종이를 아파트 거실과 방은 말할 것도 없고, 차에까지 붙여 놓고 염불 외우듯 기도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산과 골짜기를 헤매시는 예수님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그의 목회였다. 교인은 열 명도 안 되는데 “내 설교는 십만 명이 모인 앞에서 해야 빛이 난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던 목회자도 있었다.


 예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이든 그것을 최대로 발휘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많든 적든 그것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길임을 열병에서 해방된 베드로 장모가 예수님의 그의 제자들을 위한 식탁을 차리는 광경을 보며 깨달아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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