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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의 칼럼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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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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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며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하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쌓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 11:33-44)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 중 마지막 것으로 요한이 들려주는 다른 여섯 개의 기적은 물론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들보다 더 중대한 것이다. 이 기적으로 인해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이 널리 드러났으며, 이 전무후무한 표적을 목격한 이들에게 믿음이 생기고 성장했음은 물론 부활신앙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자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의의 실행으로 예수님은 체포되어 불법재판을 통해 십자가형을 선고 받아 처형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중대한 표적을 예루살렘에서 불과 3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촌락 베다니에서 행하셨다. 이 곳에 마르다와 마리아와 그들의 오빠 나사로가 살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무척 사랑하셨으며, 예루살렘에 오시면 그들 집에서 유하시곤 하셨다. 정든 고향 나사렛을 떠난 이래 줄곧 객지 생활만을 하시는 예수께서 자기 집처럼 편히 머무르시던 곳이 그들의 집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하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눕게 된다. 베다니에서 하루 정도 걸리는 곳에 계시던 예수께서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제자들에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신다.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본인의 죄로 인함인지 그의 부모가 죄를 범한 까닭인가를 물었을 때 예수께서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라 하신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소경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영광’만이 언급되었지만 나사로가 병든 까닭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함이라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랑과 공의의 속성을 지니셨으며,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자태지만 그의 아들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요 7:39,12:23).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예수께서 받으실 영광의 정점이기에 예수님의 십자가행은 그 영광을 위한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처럼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도 십자가의 길을 가야만 그 영광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명백하다.


여기서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병든 사실을 알리면서 어째서 예수님께 속히 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는가와 예수님은 나사로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왜 즉시 베다니로 가지 않으셨을까 하는 점이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습니다.”라고 간단한 소식만 전한 첫째 이유는 그렇게만 해도 예수께서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불과 몇 달 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로부터 돌에 맞을 위기에 처했던 사실을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예수님을 또다시 위험한 지역에 오시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인편으로 나사로의 소식을 듣는 순간 예수님은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셨다.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처럼 그의 ‘시간표와 방법’에 따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려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였던 것이다.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시던 예수님이 유대로 가자고 하시자 제자들이 만류한다. 얼마 전에도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을 뻔했던 위험한 곳(요 10:31)에 왜 또 가시느냐며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밤이 오기 전에 속히 가야 한다며 앞장서신다. 영혼이 어둠에 잠기지 않은 사람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다. 이때 예수님이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내가 가서 깨우겠다.”고 하신 것은 베다니에 가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것을 알려준 것이다.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존재다(히 9:27). 하지만 믿는 자의 죽음은 ‘잠 자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신약의 가르침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서 ‘사망의 승리와 쏘는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고전 15:16).


제자들이 “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가겠다.”는 말씀을 못 알아듣자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분명하게 일러주신다. 이 말씀을 들으며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시라는 점이다. 처음 만나는 사마리아 여인이 다섯 번이나 결혼했던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처럼(요 4:18) 병든 나사로가 죽은 것을 멀리서도 알고 계셨으니 말이다. 


이 말씀 후에 나사로가 죽을 때 거기 계시지 않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하신 것은 그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며, 그 자신이 영광 받을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임을 예고하신 것이다. 


예수님 일행이 유대로 떠나려 할 때 갑자기 도마가 모두를 향해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외친다. 그가 별다른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꺼낸 말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마가 한 말은 그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한 것 아닌 “주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라 보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서 요한은 도마의 발언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려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될 결단을 지니고 주를 섬겨야 한다(요 12:24-26)는 진리를 말해준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였을 때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후였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기별을 받은 마르다는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맞이한다. 매사에 신중하면서도 소극적인 마리아는 집안에서 문상객들과 함께 있었고,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마르다가 집밖으로 나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다. 


예수님을 뵙는 순간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라 말씀 드린다. 서둘러 오시지 않은데 대한 원망은 아니었지만 예수께서 더디 오신 것에 대한 섭섭함이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원망 비슷한 말은 “그러나 저는 지금이라도 주님이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주실 것으로 압니다.”란 믿음의 표현으로 바뀐다. 


예수께서 “네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을 저도 압니다.”라 답한다. 예수님 당시에 사두개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부활을 믿었다. 마르다도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신앙이라 볼 수 있는 부활신앙을 지니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그 자리에서 나사로를 살리시리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말씀하신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생의 경계선을 넘어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 사람이 다시 돌아온 기록은 없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었으며, 죽음은 인간 최대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가 부활이요 생명이며, 그를 믿으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 말씀하시며 “네가 이 사실을 믿느냐?”고 마르다에게 물으신 것이다.


믿음의 여인 마르다는 “저는 주님이 그리스도시며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 대답한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마리아를 예수님에게 보낸다.


예수님 앞에 엎드린 마리아는 언니와 같이 예수께서 일찍 오셨으면 오빠는 죽지 않았을 거라며 슬피 운다. 그녀를 따라온 유대인들까지 슬프게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어디 두었느냐 물으신다. 그들이 “주여, 여기 와서 보십시오.”라 말하자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신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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