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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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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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산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설교가 끝나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명한 부흥강사가 인도하는 집회가 끝나면 “은혜로운 말씀의 잔치였다.”, “심오한 성경진리를 쉽게 풀이해준 효과적인 성경강해였다.”, “성경의 가르침을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등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놀란 까닭은 그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의 것”이었기 때문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천하고 가난한 나사렛 목수 출신 예수님이 보여주신 권위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을 놀라게 한 예수님의 첫 번째 권위는 가르치는 분의 자질과 가르침의 내용과 방법이었다. 그 당시 유대사회에는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많은 랍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과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자신이 유대인이면서도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가르침의 대상은 유대인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큰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눈에 비친 축복된 자는 누구인가?, 누가 땅을 상속받을 것이며 누가 천국시민이 되기에 합당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자비로운 품안에 거하는 그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등을 거침없이 가르치셨다. 


 나아가서 예수님은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일러주셨다. 이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산상수훈을 직접 들은 무리들을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수많은 성도들과 스펄존 목사나 종교 개혁자 칼빈 같은 성경의 대가들을 감동시켰다.


 예수께서 설교하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라 한 까닭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율법학자들이었던 서기관들은 그네들 자신만의 권위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들에게 권위가 있었다면 그것은 모세오경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인용하는 권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식으로 율법교육 조차 받은 바 없는 예수께서 아무런 인용도 없이 듣는 이들을 매혹시키거나 그들을 당황하게 하는 말씀을 거침없이 하신 것이다. A. B. Bruce는 이같은 사실을 지적하여 “서기관들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에 의지하여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오로지 자신의 ‘권위’로 가르치셨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도 달랐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담당한 선지자들은 언제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전제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하나님을 동일시하시며(요 143:8-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로 시작하여 말씀하신다. 그가 하는 말은 곧 하나님 뜻이기에 하나님의 권위로 말씀을 하신다는 뜻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마 5:17)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는 하나님의 권위로 제자들을 가르치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이밖에도 산상수훈에는 예수님의 권위가 곧 하나님의 권위임을 말해주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로노니”가 다섯 번이나 등장한다.(마 6:2, 5, 16, 25, 29) 그 하나하나가 가르침 속에 내포된 예수님의 권위를 말해주는 것이다.


 산 위의 설교를 통해 예수께서는 “그리스도로서의 권위”도 보여주신다. 예수님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하신 것은 그가 선지자 중의 하나 혹은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아닌 구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예언의 성취자로서 오신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라.”(막 1:15)하신 것은 그가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시라고 자신의 신분을 공포한 것이고, 산 위에 올랐던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느끼며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구주”(Lord)로서의 예수님의 권위를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은 존경받아 마땅한 덕망 높은 지도자나 학자 아닌 “구주”시다. 따라서 하늘나라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전적인 충성을 그에게 바칠 뿐 아니라 그의 가르침대로 살아야만 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가 이를 말해주며,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은 예수님의 “구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산에 오른 사람들이 발견한 예수님의 권위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구세주(Saviour)로서의 권위”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을 걸어야 구원이라는 종착역에 이르며, 그의 가르침대로 행함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만 인생의 풍랑을 이겨내며, 심판날의 폭풍에도 견딜 수 있다는 그의 가르침은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의심의 여지없이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가난한 자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에게서(마 5:3, 10) 구세주의 권위를 볼 수 없다면 영적인 맹인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의 설교를 귀담아 듣는 이들은 그가 최후의 심판관이심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심판날 그를 “주”라 부르며, 그네들이 자신 있게 작성하여 제출한 삶의 기록을 심사하는 최종 검사관이시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마 7: 22-23) 


 천국에 들어갈 모든 여건을 다 갖추었다고 확신하며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선고하는 예수님의 권위야말로 우리들이 가장 존중하고 두려워해야 할 권위가 아닐 수 없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며,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과 식물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고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신다.(마 7:21)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아들인 그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맡겨주셨다.”(마 11:27)고까지 밝혀 주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 같은 권위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산상수훈에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도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던 선지자들이 핍박을 받은 것처럼 “너희들도 나를 인하여 박해를 받으면 복이 있다.”(마 5:11-12)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곧 하나님이심을 뜻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라는 말씀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후의 재판관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최종판결을 예수께서 내리시니 이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말해주는 것이다.


 나사렛의 가난한 목수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크고도 놀라운 것이었다. 그 후 2,00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성도들이 산상수훈을 직접 들은 이들과 같은 충격과 감동을 느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산상수훈은 현대인의 삶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영적인 교훈이거나 실천 불가능한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상수훈은 믿는 자들이 준수해야 할 삶의 지침이요 가치관임과 동시에 하늘나라의 기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산상수훈에 명시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게 해 달라고 끊임 없이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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