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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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설교-두 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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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그를 따라 산위에 오른 무리를 위한 설교를 마치시면서 예수님은 네 가지를 말씀하시고, 권면하며, 명령하신다. 두 개의 길(13-14), 두 부류의 선지자(15-20), 두 종류의 청원(21-23), 두 건축자(24-27)등 네 상반되는 것들을 대조하여 설명하며, 그의 제자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밝히심으로 말씀을 끝내신다. 


 그것들을 차례로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예수님은 믿는 자가 행하여야 할 “진정한 의와 헌신”, “어디에 보물을 쌓을 것인가?”, “섬겨야 할 주인”,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표”등에 관하여 들려주신 후에 그의 설교의 결론을 말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들이 지켜야 할 삶의 원칙과 지녀야 할 목표를 모두 알려주신 후에 우리들이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단을 촉구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산상수훈의 결론으로 예수께서 들려주시는 간절한 권면이며, 엄숙한 경고이며, 인자하면서도 단호한 명령을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경건하게 들어야 할 것이다.


 설교를 마치시며 예수께서 그를 둘러싼 무리에게 하시는 첫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이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길들이 있다. 하지만 하늘나라를 향해 전진하는 십자군의 정병들이 택할 길은 “넓은 길”과 “좁은 길”둘 중 하나라는 말씀이시다. 많은 것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고르고 싶은 우리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들의 선택의 대상으로 “넓은 길”과 “좁은 길” 두 개만을 제시하고 계시다. 그러면서 “넓은 길”의 종착역은 “멸망”이며, “좁은 길”은 “생명”으로 향하는 길이라 밝혀주신 것이다.


 인간의 운명을 “영원한 파멸”과 “영원한 생명”으로 갈라놓은 두 개의 길은 구약에도 나타나 있다. 시편 1편에 명시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그것이며, 이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의인의 길을 걸으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하는 일마다 형통하는”축복을 누리게 되지만, “악인의 길”에 합류하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신세가 되며, 심판의 날에 멸망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시 1:1-6) 


 예수님께서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처럼 극과 극으로 갈리는 “좁은 길”과 “넓은 길”에 관해 상세히 설명해 주신다.


 우선 “넓은 길”은 편하고 쉬운 길이다. 길 자체가 평편하고 널찍하게 닦여져 있을 뿐 아니라 장애물도 별로 없어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다. 그 길을 가면서는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할 수 있고, 도덕이나 윤리에 억매이지 않고 원하는 일들을 마음대로 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 수 있어 더욱 좋다. 때문에 그 길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인생이란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당당하게 걸어간다. 

뿐만 아니라 넓은 길을 선택하는 이들은 주위에 구애받지 않고 수시로 위선적인 언행을 자행하며, 그릇되고 헛된 야망이나 욕망을 자유로이 추구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좁은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좁고, 험하며, 울퉁불퉁하여 걷기조차 힘든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걸으면서는 자기의 뜻이나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나 희망 같은 것은 포기해야 한다. 이 길로 들어서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의 뜻을 이루어 드리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길을 찾는 적은 무리는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좁고, 위험하고, 힘든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그들과 멍에를 함께 메고 동행하는 분이 계시니 그가 곧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쉽고 평탄한 길로 들어설 수 있는 문은 넓다. 따라서 이 문으로 갖고 들어갈 수 있는 짐에는 제한이 없다. 원하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싸들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무거운 죄 짐과 교만과 오만은 물론 자기만이 옳다는 독선까지 지닌 채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다. 반면에 어렵고 험난한 길로 통하는 문은 좁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대로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이 문은 작고, 낮고, 좁은 것이다. 


 찾은 후에도 많은 것들을 버려야만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이 문이다. 무겁고 추한 죄악과 온갖 이기주의적인 욕망과 탐심을 버려야함은 물론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없으면 이 문을 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눅 19:23) 


 이 문은 유료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입구 같아서 한 사람씩 별도로 들어가야 하는 또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이 바로 이 문이시기에 그를 구세주로 영접해드리는 사람만이 그리로 들어가 영생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요 10:9)


 활짝 열린 큰 문으로 들어가 쉽고 평안한 길을 걸어 도달하는 목적지와 까다롭고 힘든 작은 문을 통과하여 어렵고 힘든 발걸음을 옮겨 도착하는 곳은 남과 북이 멀고 다르듯이 판이하게 다른 세계다. 시편 1편에 명시된 “의인의 길”이 풍성한 결실을 거두며 만사형통으로 연결되고, “악인의 길”은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소멸되며 멸망에 이르는 것처럼 말이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과 생명의 길”과 “저주와 죽음의 길” 두 길 중 생명의 길을 택하라고 권면한 바 있음을(신 30:15, 19)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넓은 길”과 “좁은 길”이 각각 어디서 끝나는 가를 밝혀주신다. 우선 예수님은 가기 쉬운 큰 길의 종점은 “멸망”이라는 이름을 지닌 역이라 말씀하신다. 이 역이 지옥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마 25:46; 요 17:12; 롬 9:22; 빌 1:28, 3: 19) 다시 말해, 쉽고 편한 길을 택한 이들은 영원한 파멸이 기다리는 곳을 목적지로 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 온갖 시련과 역경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그 고난의 행진이 끝나는 순간 그들이 당한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 속에 영생을 누리는 “생명의 나라” 곧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파멸의 종착역으로 가는 평탄하고 쉬운 길을 선택한다. 이에 반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통하는 어려운 길에는 한산할 정도로 사람들이 적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아 찾는 사람이 적다.”고 들려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좁은 길로 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영광 집”은 채워지지 않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국가와 종족과 언어를 초월한 셀 수도 없이 많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을 보았다고 중언하고 있기 때문이다.(계 7:9-10)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을 따라 “넓은 문”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적은 무리가 택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명령하신 까닭은 그 문이 곧 “구원의 문”인 것을 일러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주님, 구원받는 사람이 적습니까?”(눅 13:23)라 묻자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 13:25) 하신 것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야만 한다고 일러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길들 중에서 예수께서 믿는 자들의 선택의 대상으로 제시하는 길은 “넓은 길”과 “좁은 길” 둘 뿐이다. 그 두 개 사이에 있음직한 중간 길은 없다. 그 두 길로 들어가는 문도 “넓은 문”과 “좁은 문”둘 뿐이지 중간 문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중간지대에서 서성대며 기회를 엿보다 유리한 듯싶은 문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넓은 문”과 “좁은 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하신다. 우리들은 그 선택을 “지금” 해야 한다. 내일도 말고, 모래도 말고, 지금 당장 “좁은 문”으로 들어감으로 지금부터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집인 하늘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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