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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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설교-기독교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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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마 6:22-23)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믿는 자들이 반드시 해야 할 “종교적인 의”다. 하지만 그 종교적인 의는 올바르게 행할 때 믿음도 성장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누구든 형식적이며 위선적으로 구제하고 기도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을 한다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를 제자들에게 일깨워주신 예수님은 같은 보물이라도 그것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엄청나게 달라진다고 가르쳐 주신다. 땅에 쌓아두는 보물은 좀먹고 녹슬어 못쓰게 되거나, 쉽게 도난당할 수도 있지만 하늘에 축적하는 보물은 영구히 안전하게 보존된다고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들려주신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녀야 할 눈에 관해서다. 눈은 사물의 존재 및 그 형태를 인식함으로 인체의 감각기관이 얻는 정보량의 80% 이상을 수집하는 다양하고 경이로운 기능을 발휘한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눈이 제대로 그 기능을 행하려면 눈을 둘러쌓고 있는 각막이 깨끗하고 투명해야 한다. 각막을 통해 들어온 물체의 상이 뇌에 전달되면, 뇌가 그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막이 맑고 깨끗해야만 외부물체의 상이 선명하게 뇌에 전달되어 뇌가 그 물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눈은 몸의 등불”이라 하신 것은 눈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상황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체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게 되어 우리가 나갈 방향을 결정하게 되니 눈은 우리의 등불 역할을 해준다는 말씀이시다. 


 눈은 우리의 등불임과 동시에 창문이기도 하다.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우리 몸이 밝아지게 되는데, 그 빛을 어둔 인체내부로 통과시켜주는 것이 눈인 까닭이다. 그러기에 눈은 항상 깨끗하고 투명해야만 한다. 그렇게 못하면 먼지 끼고, 서리 내리거나, 검게 물들어진 창문을 통해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못해 집안이 어둠침침한 것과 같이 우리 마음도 어둡고 암울해져서 우울하고 불안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양의 빛이 집안으로 들어오느냐는 그 집 창문의 상태가 어떤가에 달려있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기쁨과 희망 속에 영원한 소망의 나라를 향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절망과 낙망된 가슴을 안고 암담하게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몸의 등불인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다 하겠느냐?”하신 것은 이를 일러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몸의 창문인 눈을 통해 들어오는 광명한 빛으로 몸과 마음이 밝아져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과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롬 8:18)을 바라보며 우리 앞에 놓인 인생길을 달려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찬 빗줄기와 몰아치는 눈보라가 우리 눈을 가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하듯이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아 제대로 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들 때문에 건강한 눈을 가지고도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은 보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걸어 가야할 길에서 이탈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같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거나 흐리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편견“이다. 편견처럼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도 드물다. 편견을 지니고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그에게 관해 들려주는 말만 믿고 선입견을 가진 후에 대하게 되면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하기 힘들다. 사람 아닌 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속에 편견이 형성된 후에 바라보는 그 어떤 것에서도 그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올바로 평가해야 하거나 공사 간에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우리 마음에 조금이라도 편견이 자리 잡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확인해야 할 것이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성한 눈”을 가지고도 “건전한 시야”를 상실한 사람처럼 바로 보고, 옳게 판단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니 말이다. 


 “질투” 또한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의 눈이 어떻게 멀며,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잘 나타나 있다. 베니스의 장군 무어인 오셀로는 원로원 의원의 딸 데스데모나를 아내로 맞이한 후 캐시오를 그의 부관으로 발탁한다. 그러자 그 자리를 노리고 있던 이야고는 오셀로에게 원한을 품고, 캐시오를 몰아낸다. 그리고는 복직을 꾀하는 캐시오를 데스데모나에게 접근시켜 마치 그들이 불륜관계를 맺는 듯이 흉계를 꾸민다. 


 문학의 세계에서 악인의 상징으로 알려진 이야고에게 속은 오셀로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게 되고, 불타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여 그녀를 침실에서 살해한다. 그러나 이야고의 간계가 들어나자 수치심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오셀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오셀로의 가슴에 침투한 질투심은 그로 하여금 아내를 죽이는 살인자로 만들었고, 그를 자살하게 하는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질투란 감정은 행복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할 수많은 가정을 파탄시키며, 참되고 아름다운 우정에 금이 가게 하는 무서운 독소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질투로 인해 우리 마음의 창문이 눈이 멀어 어둠속에서 헤매는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기도해야 할 것이다. 


 편견과 질투 외에도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흐리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고 믿는 “교만한 마음”이다. 그런 오만의 지배를 받게 되면 자신의 약점이나 어리석음을 보지 못하는 반면 남들의 과오나 단점은 몇 배로 늘려서 보며, 그들의 장점까지도 단점으로 강등시키게 된다. 


 나는 절대적으로 옳기에 내가 세상의 기준이라는 착각은 정상적인 눈을 근시나 색맹으로 만들 뿐 아니라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을 가서는 안 될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오만과 편견과 질투로 가려진 눈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 기쁨과 평안과 만족으로 가득해야 할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적대감만을 간직하고, 그것들로 인해 좁아지고 희미해진 시야로 보며 판단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사는 이들이 이웃과 더불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그런 사람들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을 누릴 수도 없다. 이런 모든 것들 보다 더 안타깝고 슬픈 일은 좁아지고 흐려져서 한정된 시야를 지니게 되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주어진 인생의 본분을 감당하며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의 품안에 거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의 손길을 떠나 험하고 거친 세상을 홀로 방황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 삶의 과정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그 종착역은 파멸인 것이다.


 사물을 바로 볼 수 없는 희미한 눈동자와 세상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이 흐려진 시야와 마음은 인생을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만든다. 그런 눈과 마음이 가치를 부여하는 재물을 축적하고, 명예와 권력을 얻어 보아도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의 눈을 밝혀야 한다. 바르게 멀리 보며, 옳게 판단하고 행동함으로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동시에 우리들이 영의 눈을 밝혀서 크게 떠야 한다. 세상의 헛된 물질과 명예와 권력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저 멀리 있는 하늘나라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며 나갈 수 있는 그런 영안을 우리 모두 갖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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