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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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닷, 르손, 여로보암의 반란 -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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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은 이스라엘의 기틀을 다지고 국력을 신장시켰고, 솔로몬은 다윗이 이루어 놓은 터전 위에 더욱 강력한 이스라엘을 건설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통치하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며 팔레스타인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솔로몬이 이같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가 기브온 산당에서 범국민적인 일천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선과 악을 구별할 지혜를 달라”고 간구한데서 시작된다.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을 구한 솔로몬에게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지혜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의 뜻대로 다스릴 메시아의 지혜와 지능이었던 것이다(사11:2). 

 역사가 시작된 이래 아무도 소유하지 못했던 솔로몬의 지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옹호하고 세상의 악인들을 쳐서 죽이며, 정의와 성실로 백성들을 다스리는”여호와의 지혜였다(시 11:3-5).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축복까지 주어졌다. 그러나 인생의 말년에 그가 걸어온 삶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며 한 고백은 “모든 것이 헛되고 무가치하며 의미가 없으니 아무 것도 소중한 것이 없다.”(전 1:2)는 허무주의자의 서글픈 탄식이었다.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을 성취했고, 모든 것을 누렸던 그가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비통하게 외친 것은 그가 기쁨과 평안 속에 생을 마감하지 못하고, 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비운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솔로몬을 지혜와 존귀의 왕으로 만든 원동력이 그가 여호와로부터 받은 지혜에 있다면 그의 생을 흩어져 갈라않은 뗏목처럼 비참하게 만든 것도 그에게 주어진 지혜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신본주의의 정책을 수립하여 실천했으며, 무역을 진흥시켜 국력을 비축했고, 국방력을 증진시켜 인접국가들 위에 군림한 솔로몬이었다. 솔로몬은 그에게 주어진 모든 지혜를 총동원하여 7년간에 걸쳐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한 성전은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솔로몬의 최대의 업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솔로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기보다 그의 지혜와 능력을 더 신뢰하게 되는 비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솔로몬이 이같이 그릇된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은 그가 애급 왕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 그 시발점이다. 그 당시 국가 간의 결혼동맹은 민족 간의 우호중진과 정책적 협력을 보증하기 위한 일반적인 관례였다. 솔로몬도 다윗이 확보한 영토를 유지하며 국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주변국들과 우호적인 유대관계를 지속해야 했기에 불가피하게 취한 결혼정책이 바로의 딸과의 혼인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이 바로의 딸 외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사돈과 헷 등 수많은 이방여인들을 사랑하게 되어 그가 거느린 여인들이 1,000명에 달하게 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에서 징계의 대상으로 변해간다. 솔로몬의 마음이 여호와를 떠나 이방여인들과 그들의 우상종교에 쏠리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두 번이나 솔로몬에게 이방신들을 버리고 그에게 돌아오라고 명하신다. 그래도 솔로몬이 듣지 않자 “내가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겠다.”(왕상 11:11)고 선언하신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다윗을 생각해서 솔로몬 생전에는 그 일을 행치 않겠다고 하신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로 솔로몬을 살아있을 동안 그의 왕국을 유지하지만 그의 생이 끝날 때까지 평화와 화평을 누린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를 떠난 솔로몬을 징계하기 위해 세 사람을 택하시어 그를 대적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첫 번째 도구로 등장한 인물은 하닷이었다. 원래 에돔의 왕손이었던 하닷은 오래 전에 다윗이 에돔을 공격했을 때 애급으로 망명했었다. 그때 이스라엘 군을 이끌었던 아비새가 소금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18,000명을 죽였고,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에돔 인들을 진멸시키려하자 하닷은 애급으로 도망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애급 주변의 많은 나라들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애급으로 피신한 경우가 적지 않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이 그러했고, 예수 그리스도도 헤롯 왕을 피해 애급으로 도피했었다(마 2:13-15). 


 하닷이 애급에 들어서자 바로는 그에게 집과 양식과 토지를 주어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해주었고, 그의 처제를 아내로 주는 특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닷은 바로에게 에돔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조국에 가서 자기 민족을 규합하여 주권을 회복해야겠다는 민족적 사명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애급을 떠나려 하냐는 바로에게 그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속내를 감추고 에돔에 돌아왔지만 하닷은 솔로몬이 젊고 슬기로웠을 때는 감히 그에게 도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그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하닷은 솔로몬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하닷이 어떻게 솔로몬을 대적했는 지는 기록에 없지만 아마도 그가 이스라엘의 해상무역을 교란시켜 솔로몬의 무역정책에 어려움을 주었으리라 추정하는 이들이 많다. 


 어째든 하닷은 이스라엘에 대한 개인적인 적개심으로 솔로몬을 대적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하닷을 사용하셔서 솔로몬을 징계하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닷에 이어 일어난 인물이 르손이다. 르손은 소바왕국의 대신이었는데 자기 주인인 소바의 하닷에셀 왕에게서 도망한 자였다. 그때 다윗은 유프라데스강 상류지역을 장악하려는 하닷에셀을 공격하며 마병 1,700명과 보병 20,000명을 생포하고 많은 전마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린다. 그러자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하닷에셀을 도우려 오지만 그들도 22,000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배한다. 


 이런 와중에서 르손은 사람들을 모아 무법자의 두목이 되었으며, 후에 다마스커스로 가서 시라아의 왕이 된 기회주의자였다. 


 이같이 별볼일 없는 르손이 어떻게 솔로몬을 위협했는 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 북부의 시리아 지방인 유프라테스 강변으로부터 바벨론에 이르는 교역로를 차단하고 솔로몬을 괴롭혔으리란 추측이 유력하다. 

 

 하닷과 르손이 솔로몬을 대적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힘이 이스라엘을 위협할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반란을 통해 솔로몬이 그에게 돌아올 기회를 주시기 윈 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로문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자 하나님은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준 또 한 인물을 내세우셨으니 그가 여로보암이다. 


 여로보암은 뛰어난 재능과 지도력을 지닌 솔로몬의 신하였다. 솔로몬은 그의 재주를 사랑하여 그가 밀로 요새를 건축하고 다윗 성의 성을 수리할 때 요셉지파의 사역군들을 감독하는 중책을 맡겼다. 


 에브라임 출신의 여로보암에게는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다. 에브라임 지파와 요셉 지파의 라이벌 의식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에 그들을 융화시킨다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 힘든 일을 잘 감당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로 출신의 예언자 아히야가 입고 있던 새 옷을 열 두 조각으로 찢고 그 중 열 조각을 여로보암에게 가지라고 한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라를 빼앗아 열 지파를 그에게 주겠다는 예언이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타락한 솔로몬과는 달리 다윗과 같은 왕으로 세우시어 이스라엘을 마끼려 하신 것이다. 완악해진 솔로몬 대신 여로보암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향한 그의 뜻을 이루려 하신 것이다. 


 이때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의 죄과를 뉘우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으로 돌아왔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불행히도 솔로몬의 마음을 더욱 강퍅 하게 하여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던 것처럼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애급으로 망명하여 솔로몬이 죽기까지 거기 머문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다윗으로 인하여 솔로몬이 살아있을 동안은 그를 벌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은 후 애급에서 돌아온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북 왕국의 초대 임금이 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남 왕국의 왕이 되어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만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닷, 로슨, 여로보암으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켜 솔로몬으로 하여금 여호와께 순종하는 왕으로 돌아오게 하려 하신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일의 결국은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니라.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는 깨달음을 끝내 실천에 옮기지 못하여 모든 것을 가지고도, 실패한 인생을 산 주인공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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