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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생긴 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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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실례합니다.” 흘낏 돌아보는 역무원, 업무에 지친 듯 불쾌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바삐 서둘다 미쳐 승차권 챙기지 못해서 머리를 극적이자 위아래를 훑어보던 그는 “어르신, 아직 노인 승차권을 받으실 연세가 아니신 것 같은데…” 약간 의구심을 갖고 쳐다 본다. 

 

 

 


 “나 외모는 이래도 육학년 칠 반이오. 젊은 영력(營力)을 벗어 난지 오래 됐소.” 거기에 덧거리 오년을 더 붙이며 예기하자 나의 익살스런 농담에 희죽 웃으며, ”따라 오세요” 하며, 자판기 머신 앞으로 끌고 간다. “어르신, 일일 승차권(하루만 사용)을 만들어 드릴 테니 신분증 주세요” 캐나다 시민이 신분증이 있겠는가? 또 망설이자 대책이 서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자기 주머니에서 500원을 꺼내 승차권을 꺼내준다.


 일일 승차권은 머신에 500원을 투입하면 나오는데 그 승차권을 가지고 목적지 역에서 내려 탈 때와 같이 머신에다 투입하면 500원을 도로 반환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절차가 까다로워 직접 차비를 내고 싶어도 온통 기계화가 된 세상에 현찰 박치기가 안 돼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자니 자존심이 말이 아니다. 


 승차권을 빼어든 그는 “망신 안 당하려면 앞으로는 꼭 승차권을 챙기셔야 해요.” 마치 초등학교 교장이 어린 제자에 훈시하듯 주의를 주며, 무슨 큰 횡재나 준 듯 선심을 쓰며 휭 하니 나간다. 내내 잘해주다 이게 무슨 변심이람? 뒤통수가 따가워지며 갑자기 고마운 마음이 미움으로 변해 그의 등에다 대고 소리를 쳤다. 


 “나 한국에 있을 때 세금 많이 냈어. 그것 하나도 못 찾아먹고 고국을 떠났거든. 양심 꺼리거나 창피할 거 하나도 없어. 무임승차할 자격 충분히 있단 말이야.” 내딴엔 버럭 소리를 친 거 같지만 입 안에서만 옹알거린 신음이었다. 


 일요일 명동성당을 가느라 부신을 떨다 승차권을 챙기지 못해 천호동 5호선 역에서 생긴 일이다. 그동안 누차 승차권을 사용했는데 깜박 잊고 집에 두고 온 것이 자칫 지능범으로 오인을 받은 것이다. 물론 정당한 방법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이민 오기 전 세금 낸 것이 떠올라 역무원의 무례에 이해득실을 상쇄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수모를 당하며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에 오르면 해괴한 일은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잔돈을 지참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캐나다 모양의 트랜스퍼(transfer)가 없고 별도로 차비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잊던 일이 재현된다. “기사양반, 나 캐나다에서 왔는데 잔돈을 준비 못하고 차를 탔소. 내릴까, 그냥 갈까?” 조심스럽게 말을 하자, 아무 대꾸도 없던 기사는 다음 정거장 오기가 바쁘게 ”내리세요“ 


 순간 아찔한 현기증과 동시에 귀를 의심하였다. 세상에 모처럼 고국이라고 찾아왔는데 노인에게 이런 푸대접을 주다니…


 연로한 노인이 차비가 없어 사정을 하면 “그냥 타고 가세요.” 당연히 한국의 정서로 그리 나올 줄 알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어찌하다 내 조국이 이렇게 형편없는 이기심으로 몰락했단 말인가? 옛날 따뜻한 인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살겠다는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괘씸하고 황당한 생각이 들다가도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모양이 지금 한국의 현실인 것을, 그래도 좋은 기사가 더 많겠지 하며 스스로 안위를 한다.


 지하철 노선도 너무 복잡하다. 9호선 까지 거미줄 치듯 연결이 되어 호선과 호선을 갈아타려면 10~20분은 좋이 걸리고 연로하신 분들은 높고 낮은 곳을 옮겨 타려면 그야말로 고행길이 아닐 수 없다. 


 화장실 문화도 향기롭지 않다. 빨리 빨리 정서에 길이 들어서 그런지 소변을 보고 손을 씻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 볼 수가 없다. 휴지도 제멋대로 걸려있고 유명하다는 명동 지하철 화장실도 수세식도 옛날 그대로다. 이것이 한국에서 본 모습인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성당 입구로 들어오면 이곳 역시 구걸님이 포복을 하고 있었다. 얼른 오천 원을 꺼내주었다. 지하철 공짜로 타고 온 대가에 더블 이자까지 붙여 주니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봄눈처럼 녹아내린다. 이런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 에덴동산에 선녀가 되어 하늘로 오르는 기분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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