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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사관학교졸(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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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11)-일본의 행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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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대부분의 번주들은 매해 거두어 들이는 세금은 일정한데, 동경을 오가는 연례행사와 동경과 고향의 2중 생활 등으로 지출이 늘어나자, 이를 줄이고자 무사의 봉급을 삭감하거나, 새로이 부자가 된 상공인에게 무사의 특권인 칼을 차는 권리를 판다거나 돈을 빌리는 일이 빈번해졌다.


 생활이 안 되는 하급무사들은 자신의 재주를 살려 서예나 무술 교습소를 운영하거나, 우산, 부채를 만드는 등, 종전에 가장 천시됐던 상인의 일을 했고, 따라서 주위의 존경이 차츰 줄어드는 참기 힘든 상황에 처한다.


그들의 불만은 자연히 위로 향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막부의 지도력 부족을 탓하게 된다. 특히 멀리 변두리 번은 현실 정치에 참여치 못하는 불만도 겹쳐 규수, 사스마, 도사번에서 불만이 심했다.


3) 유신 전야


페리가 다녀가고 다음해, 군함 7척을 거느리고 다시 오자, 조약이 체결된다(1854 미일 친화 조약). 하지만 치외법권 등 불평등 조약 내용이 문제가 되어, 개국파와 쇄국파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던 중 청이 다시 2차 아편전쟁으로 수모를 당하자, 미는 이 틈에 추가적인 항구개방을 요구한다(1858 미일 수호 통상 조약). 불평등한 조약이 또 조인되자, 일은 발칵 뒤집혔다. 쇄국파는 무능한 막부 때문에 일이 짓밟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만의 소리는 사스마, 조슈번에서 특히 심했다. 이들은 막부와 왕으로 나누어진 통치권을 왕에 통합하고, 외세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존왕양이). 이 주장은 막부를 추방하자는 의견이어서, 막부와 번의 대결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러던 중 사스마 무사가, 일본식 예의를 모르고 무사 앞을 지나가는 영국인을 '무례하다’고 살해한 일이 발생(1862), 영은 7척의 군함을 끌고 와 사스마를 응징한다. 


또 같은 시기에 시모노세기를 지나는 미 상선을 조슈번이 공격, 미-영-불-네덜란드 연합함대 17척이 시모노세기를 응징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서구의 힘을 새로이 깨닫고, 쇄국에 앞장섰던 번들이 개국으로 급선회한다. 이로서 막부와 번은 화해에 이르고, 이어 막부는 통치권을 왕에 반납한다(대정봉환, 1867).
이로서 700년간 일을 지배하던 무사의 막부정권은 막을 내리고, 새로운 메이지정부는 개혁을 시행할 여건이 됐다.


4) 근대화


새로이 정부는 들어 섰으나 서양 같은 선진국을 건설하는 데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또 다른 고민거리였다. 그간 들은 바는 있으나 직접 가서 봐야 한다는 생각에 정부는 젊은 무사와 고위관료 100명을 선발, 미국, 유럽 등 12개국을 순방토록 한다(22개월).


우리가 잘 아는 개국공신 오쿠보, 이등박문도 젊은 무사로 합류했다. 그들은 “서양을 보고 놀라고, 기필코 그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다짐을 품고 돌아온다. 사절단은 서구 중 독일을 성장모델로 한다. 이미 선진국에 들어선 영, 불보다 한발 늦었지만 독일의 압축성장 모습이 일의 모델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일은 오랜 세월 스승이었던 중을 떠나, 유럽에서 새로운 스승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조선은 척화비를 세우며 다른 길을 간다.


결론


옆 나라 일본은 어찌하여 성공할 수 있었는가? 무엇이 가능케 했을까? 


덕천 막부 시작부터 250년, 참근교대는 일의 초보적 산업혁명을 촉발시켰고, 이로 인해 부농, 호상이 출현하면서 지배계급, 무사들의 위상이 취약해졌다.


이는 막부 통치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어서,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체제를 찾는 시점에 페리함대가 등장, 하급무사가 중심이 되어 막부를 몰아내고 신제도,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며 일본은 변혁의 길을 간다.


이러한 신속한 개혁은 일본 무사들의 추진력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무사(인구의 6%)는, 무기라고는 만져본 일이 없는 양반이나 선비에게서는 찾기 힘든 일의 큰 자산이었다. 바로 그때, 그 시절 일본에 큰 행운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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