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정유년 송년 휘호-이동렬
budongsancanada

 

 

 

달에서 내려다보면 공만 한 게 지구인데
뭣하러 그 공 위에 만리성을 쌓았던가
인간사 부질없다고 풀벌레가 웁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조 시인 백수(白水) 정완영의 탄식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져주는 시조를 찾는 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우리 마음을 보듬어 준다고 생각되는 시조 한 토막과 만났다 싶을 때는 오랜 기다림 끝에 큰 물고기를 낚아 올린 젊은 낚시꾼처럼 신명이 나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말은 곧 치료적인 효과가 있다는 말. 우리가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고,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얼룩져 있을 때는 그 빡빡하고 강파른 감정을 순하고 부드럽게 해준다. 
 사업을 하든, 연인을 만나든(혹은 헤어지든), 시험을 치르든 목적한 것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때는 낙심이 뒤따르고 심한 경우에는 내 존재에 대해서도 부정적 감정이 뒤따를 때가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럴 때 기분을 송두리째 바꿔서 우리 가슴에 보름달 돋아오르듯 벅차오는 새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시조가 곧 우리 마음을 보듬어 주는 시조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시조에 마음이 잡혀 있던 어느 날, <정완영 시조 전집>을 뒤적이다 문득 <만리장성에 올라>가 눈에 띄어 붓을 잡았다. 나는 항해가 아니라 평생 표류만 해온 인생을 살아온 사람. 운명에 떠밀려 낯설고 물설은 여기까지 와서 보따리를 풀고, 잠 잘 곳을 구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이 땅에 뿌리를 내린 것도 내 인생의 비극도 되지마는 희극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애면글면 오늘까지 버티어 온 것이 아닌가.

 

 위 시조가 부드러운 말로 던져주는 깊은 뜻을 진작 깨달았더라면 그 아둔한 박근혜도, 간 큰 최순실도 그들에게 폭포같이 내리쏟은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과 저주를 받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 아닌가. 분탕질해도 너무 지나치게 하다 불길 앞에서 제 흥에 겨워 그 불 속에 뛰어들어 타 죽고 마는 불나비 꼴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공명심 없고 권세와 재물에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것에 대한 향념이 너무 지나칠 때는 되레 독(毒)이 되는 것이다. "녹은 쇠에서 나와 쇠를 먹고 욕심은 사람으로부터 나와 사람을 먹는다."는 법구경의 말같이 세상 명리를 위해 쫓아다니는 열성이 너무 지나칠 때는 그것이 희망이나 욕망이 아니라 야망이나 독이 되는 것이다.

 

 닭띠 정유년이 가고 개띠 무술년이 온다. 해가 바뀐다고 달라질 것이 뭐 있겠는가. 그러나 "새해에는 뭐 좀 더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는 막연한 바램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해 보자. 좋은 일이 생기면 천만다행, 안 생기면 우리는 봄비 속에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황소처럼 피곤한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겨 놓을 것이다.

 

 

 


근하신년
靑峴山房主人 陶泉(청현산방주인 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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