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한 할머니의 마지막 편지-“무궁화양로원에 들어가는 소망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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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무궁화양로원 입주를 신청해놓은 150명 중의 한 할머니가 멀리 살고 있는 아들에게 쓴 편지로, 한인사회 원로 강신봉(전 토론토한인회장, 역사문화원장) 선생이 본보에 보내온 것입니다. 강 선생은 할머니와 상담하는 도중 너무도 가슴이 절절해져 그 편지 내용을 소개하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고독하게 살아온 이 할머니는 편지를 써 놓고, 아들에게는 부치지도 못하고, 얼마 후에 갑자기 그 독방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편집자 주 

 

 

 

 

 

 사랑하는 아들아! 읽어 보아라.


 엊그제 전화통화를 하였다만 나는 내 가슴속에 숨어 있는 이 소원을, 아이들하고 먹고 살기에 힘이 겨운 너에게 차마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오늘 이렇게 편지를 써서 내 마음을 풀어 보고자 한다. 아마도 이 편지는 내 일생 동안 너에게 쓰는 첫 편지요, 마지막 편지일 것이다. 


 너도 잘 알고 있다시피, 내가 무궁화양로원에 들어가고 싶어서 오래 전에 신청서를 제출해 놓았지. 헌데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 그 한국인 양로원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용을 읽어 보니 재무 관계가 잘 처리되지 못하여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돈이 모자라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지경에 다다른 모양이다. 지난 6년간 정부의 법정관리로 넘어 갔었는데 재무처리가 해결되지 못하여 다른 민족에게 팔려갈 것이라고 한다. 


 그 기사를 읽은 이후 나는 왠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정신이 말똥말똥해 밤을 지새웠다. 그 이후 고독병이 들었는지 밤마다 잠을 설치곤 하였다. 고독병은 곧 죽음을 재촉하는 길이라 하던데 내가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너에게는 이 늙은 어미가 무슨 푸념이냐고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는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니 그저 한 번쯤 들어주기 바란다. 너희들이 토론토에 있을 때에는 너의 식구들, 손자 손녀들 보는 재미에 나는 참으로 행복했었다. 그런 줄을 몰랐는데 막상 너희들이 이곳을 떠나 그 먼 곳으로 이사를 한 후에 나는 너무도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너도 알다시피 내 무릎이 시원치 못해 교회생활도 잘 못하고, 그저 겨우 아파트의 앞뒤 뜰 출입이나 하다 보니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도 없고, 오가는 사람도 없다.


 내 희망은 그 무궁화양로원에 가서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 하고, 선생님들이 와서 여러 가지 가르쳐준다는 것 배우고, 공부도 하고…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이 큰 꿈이요 소망이었는데 이제 그 꿈마저 깨져가는구나! 


 오늘 한국TV 뉴스에, 독일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 한 가지를 방송했다. 멀리서 외롭게 혼자서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가 오래도록 찾아오지 않는 자기 자녀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자기가 죽었다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는 것이다. 각처에 떨어져 있던 자식들이 일시에 몰려 와서 집으로 들어오는데 죽어 있어야 할 할아버지가 엄연히 살아서 그들을 맞이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실소를 하는 장면이었다. 오죽이나 보고 싶었으면 그렇게 했을까!


 늙은이의 고독은 참으로 무서운 병이다. 자기의 붙이들을 곁에 두고 바라보는 것은 그렇게 큰 기쁨이요, 희망이요, 삶의 연장인 것이다. 그런데 이 어미는 지금 그 희망도 멀어졌고, 무궁화양로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꿈마저 깨져 버렸다. 그 양로원에 있는 할머니들도 어쩌면 그 곳을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왜냐하면 이후 양로원이 다른 민족에게 넘어간다면 한국음식도 없어질 것이고, 한국말보다는 영어나 다른 말을 하는 노인들이 입주케 될 것이니, 우리 한인 1세의 노인들이 설자리가 없게 되니, 그렇게 자동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겠지!


 지금 한국계 1.5세 젊은이들이 그 양로원을 건지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350만불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큰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그래서 내게 밤잠이 안 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양로원이라는 것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 한, 수없이 많이 필요한 시설이다. 너도 늙으면 가야할지 모른다. 캐나다 정부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첫 양로원이 저렇게 쓰러진다면 어찌 다음 일을 기약할 수가 있겠는가?


 어찌 보면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부끄럽고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이 어미에게는 밤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몇 주를 두고 생각한 나의 제안이니 네가 받아 준다면 나는 큰 희망을 얻은 마음으로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


 이 아파트 콘도 말이다. 너와 나의 이름으로 되어있지? 이젠 모기지도 다 끝이 났고 해서 너의 짐이 많이 가벼워진 것인데… 나는 내가 죽으면 나의 몫을 무궁화양로원에 기증하고 싶다. 내 평생에 우리 민족에게 보람되게 한 것이 한 가지도 없이 살아왔다. 참으로 부끄럽게 살았다. 


 이제 인생을 다 살고 떠나야 하는 몸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가 아니냐? 나는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이 글을 너에게 쓰는 이 시간,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이 엄마의 소원을 네가 허물없이 받아 준다면 내 인생에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너와 나의 결심이 무궁화양로원을 건질 수 있는 길이라면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고맙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내 건강하고 네 가족들과 행복하여라! (2017년 7월 25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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