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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담쟁이 담을 넘는 저녁
bh2000

 
붉은 담쟁이 담을 넘는 저녁

 

 

 

야가 왜 이리 늦다냐 
채근하시는 아버지 안달에 발 벗은 어머니
담장 너머로 깨금발하는 어스름 저녁
밭일 마친 저녁상 위로 뭇국 식어가고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 눈 달고 계시는데 
열살 계집  주전자에 목 축이며 재 넘어 오는 길 
걸음이 비틀거릴 때마다 사발 목 길어진다

 

붉은 담쟁이 넝쿨  담을 넘는 가을날
주막집은 5리쯤 떨어진 사거리 골목길에 있다
누구 아부지는 단골잉께 한 사발 더 간다 
주모의 싸구려 립스틱이 주전자의 몸을 핥았다
계집의 벌건 이마를 바람이 스쳐 지나고
굴뚝에는 저녁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주전자의 홀쭉한 뱃살을 눈치 챈 당신이 웃는다  
그런 당신은 말없이 막걸리잔을 채운다
주름진 손이 염소의 젖처럼 처진  
아버지의 세월을  기억 저편    
불혹을 넘긴 계집은 훌쩍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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