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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의 자서전
bh2000

 
밧줄의 자서전
 

 


허공이다
벽과 벽 사이 외줄 하나에 몸을 감은 사내
허리를 감은 밧줄이 휘청거릴 때마다 
아파트 외벽은 비상을 꿈꾼다


 
후둘거리는 삶의 무게가 어질하다고
그럴 때마다 바르르 떨었을 눈썹과 발가락들  
옷소매를 끌어당기는 허공의 자서전은 늘 위태로웠다 

 


젖지 않고 날아가는 새는 없다 했다

 

흰 외벽에 풍상을 견뎌낸 얼룩을 벗겨내고 
초록빛 생의 무늬를 덧칠하는 것
숨을 바닥이 없는 그에게  허공은 비상이었다

 

뙈약볕 아래 쉼없는 붓질의 몰입
사내의 오른팔이 긴 막대기에 달린 롤을 당길 때마다 
밧줄은 사내의 몸을 한번 더 조여 주었다
허공에서도 영역을 양보하지 않은 거미가 있다고 
발 아래 공사장 인부가 근황을 전송한다

 

새처럼 두팔을 벌려보는 사내
추락한 날개를 굳이 기록해본다면 
새의 비행이 자서전에 굵은 획을 긋는 게 아니겠는가
바람이 새의 날개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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