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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2)
Imsoonsook

 

2018년 4월10일(1일차)

 

안개 속에 갇힌 피레네산맥


 이른 아침, '프랑스 길'의 출발지인 '생장 피드 포르' 행 첫 기차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고적한 중세도시 바욘에서 한나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을 고르지 못한 일기로 인해 앞당기게 되었다. 


잔뜩 흐린 날씨지만 밤사이 내리던 비가 소강 상태를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니브( Nive)강을 따라 유려하게 펼쳐진 시가지 전경을 아쉬운 대로 마음에 담으며 발길을 재촉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가까스로 들어선 역사 안은 정적만 감돌 뿐 첫 기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음 열차 시간을 헤아리고 있으니 한 역무원이 바로 옆 버스터미널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순례길을 위한 베이스 캠프답게 기차와 버스가 연계되어 운행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그만 시골역에서 한 량짜리 기차를 타고 낭만적인 여행을 하려던 꿈을 접은 채 대기 중인 시외버스에 올랐다. 순례객으로 보이는 칠팔 명의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서로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 다가오는 어떤 연대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봄빛이 만연한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시골풍경을 감상하며 두 시간여 달린 끝에 오전 열 시경 '생장 피드 포르' 역 광장에 도착했다. 준비기간 내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복잡한 마음이 서서히 안도감으로 바뀌어 갔다. 


서둘러 행장을 꾸려서 앞선 무리를 쫓아가며 방향을 잡아나갔다. 지도 찾기보다 더 신속한 길잡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여기며 돌아보니 띄엄띄엄 몇 사람이 우리의 꽁무니를 잇고 있었다. 


 순례자 사무실에는 여러 명의 봉사자들이 신입 순례자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우리도 인상 좋은 할머니 봉사자에게서 일일 고도표와 숙소(알베르게) 리스트 그리고 순례자 여권을 받아 첫 도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초행길의 가장 난감했던 부분을 일시에 해결하고 나니 열 일 한 것처럼 홀가분했다. 


순례자 상징 가리비 조개 껍데기를 배낭에 매달고 마을을 돌며 약간의 여유를 부렸다. 매년 수만 명의 순례객이 찾아 드는 고장답지 않게 차분하면서도 예스러움이 그대로 남아있어 정감이 갔다. 니베강이 도심을 흐르는 수려한 자연환경과 고풍스런 건축물 그리고 좋은 취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느낌 또한 따스하리라.


동네 마켓에서 물과 과일, 스낵 류를, 빵집에서는 방금 나온 바게트를 사서 배낭에 장착했다. 앞으로 어떤 여건이 주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필요한 먹거리는 챙기는 게 우선인 듯 했다. 우리와 비슷한 행보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대부분 청 장년들이었지만 우리와 엇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여 위안이 되었다.


 정오 경 드디어 순례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하루 정도 머물며 심기일전 한다지만 우리의 앞선 마음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두 길 중 험난하기로 정평 난 '나폴레옹 루트'를 선택했다. 안개가 심하니 쉬운 길을 택하라는 봉사자의 권유가 머릿속으로 맴돌았으나 어차피 내친 걸음 한 번 세차게 부딪혀 보고 싶었다. 오늘의 숙소 예정지인 오리손(Orisson)을 목표로 8 km 정도 걸을 예정이다.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때론 조가비 문양을 따르며 상쾌하고 홀가분하게 마을 입구를 돌아 나왔다. 천 년 역사의 중후한 길은 금방 가파른 아스팔트 길로 바뀌어 초보 순례자의 숨을 헐떡이게 했다. 출발선에 함께 섰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습한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 우리 부부만 호젓이 올랐다. 


산비탈을 깎아 목초지를 형성한 거대한 구릉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자리한 아늑한 농가들과 양떼들이 전부인 목가적인 풍경에서 긴장감이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했다. 


 산 아래, 위에서 스멀거리던 안개가 순식간에 우리를 에워싼다. 안개 때문에 하산한다던 어느 부부처럼 발길을 돌려야 하나 하는 순간 바위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가 눈에 띄었다. 아무리 안개가 짙은들 길잡이 화살표만 따르면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 미궁 속에서 허우적거릴 일은 없을 테니까. 


가까운 비탈길에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희미한 안개 속을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누군가 우리와 같은 길 위에 있다는 것 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얼마 후, 그 길 위에서 안개비를 맞으며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비로소 순례라는 의미가 서서히 폐부로 스며드는 듯 했다. 


 4시간 소요 끝에 오리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날씨 때문인지 반나절 거리의 숙소건만 본채는 이미 만원이고, 벼랑 아래의 별채 합숙소에 잠자리를 얻었다. 샤워를 마친 후 젖은 옷과 판초를 히트 가까운 곳에 널고 이층 침대에 누워 한시름 돌리려는데 갑자기 생소한 언어가 난무했다. 


하룻밤 방을 같이 쓸 러시아계 독일인들이었다. 겨우 영어로 통성명하고 빗물이 방바닥으로 흐르는 난국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결국 야밤에, 여섯 룸메이트들은 이웃의 새 숙소로 전출되어 지옥에서 천국으로 입성한 파티를 조촐하게 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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