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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1)
Imsoonsook

 

 꿈을 향한 발돋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하나?' 


은퇴 후의 달콤한 시기가 채 가시기 전 마음 한편에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거렸다. 삶이 힘에 부칠 때마다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해 청사진을 겹겹이 그렸건만 막상 때가 되니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은 안개 속 미궁이었다. 삶의 지표가 사라졌다는 것은 새로운 대체가 절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지체 없이 새로운 도전에 불씨를 지폈다. 은퇴 후 꼭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 1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 km 완주가 그것이었다. 이미 60대 중 후반에 들어선 우리에게 가능한 도전인지 모르지만 뜻하는 일엔 무조건 밀어 붙이는 우리 부부의 근성이 한몫 하여 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짜기에 앞서 다양한 정보 수집과 선 경험자들의 후일담이나 그에 관한 책을 탐독하며 막연한 동경에서 현실적인 접근으로 눈높이를 맞추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가톨릭 3대 성지 중 한 곳임은 물론 캐나다의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est coast trail), 미국의 존 무어 트레일(John Muir trail)과 더불어 세계 3대 하이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오랜 기간 주말 하이킹을 하며 가슴속에 간직해온 큰 꿈 하나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정보들을 스캔 해 나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래는, 9세기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며, 유럽 각지의 순례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이후 성 야고보를 스페인 수호 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순례길 전 구간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됨은 물론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순례자'의 영향으로 세계에서 각광 받는 힐링 코스로 부각되어 해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찾는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대표적인 루트는, 가장 접근성이 좋은 프랑스 길, 대서양 해안선을 끼고 형성된 아름다운 북쪽 길, 포르투갈 남부에서 시작되는 은의 길 등 다양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목적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즈음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출발 시기와 동선 짜기 그리고 비행기표 예매와 필요한 숙소 예약 등 외형적인 부문을 하나씩 해결 해 가면서 효율적인 배낭 꾸리기와 체력 단련도 꾸준히 해 나갔다. 


우리의 여정은 토론토에서 아이슬란드를 경유하여 파리까지, 파리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바욘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1박 한 다음 기차로 '프랑스 길'의 출발지인 '생장 피드 포르( St. Jean Pied de Port)'로 입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2018년 4월 9일
쉽지 않았던 초행길

 


 아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토론토 피어선 국제공항 청사에 들어섰다. 언뜻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에서 묵직한 배낭에 두툼한 등산화를 착용한 여전사의 포스가 물씬 풍겼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위축된 내면과 달리 과대 포장된 외형이 멋쩍어 얼른 시선을 옮기며 걸음을 재촉했다.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대장정의 시발점에서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할 수 있다'는 체면을 걸어가며 경유지인 아이슬랜드 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첫 관문에 안착하고 나니 그 동안 준비하느라 지친 심신과는 달리 머릿속은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짚어보느라 분주했다. 하룻밤 사이 캐나다, 아이슬란드, 프랑스 세 나라를 거치며 시차와 일정을 소화하려면 충분히 자두어야 할 야간 비행이건만 생각의 실타래는 끝없이 풀려 나왔다. 


'여보, 오로라가 떴어!' 


비행기 탑승 후부터 내내 쪽 창에 붙어있던 남편이 설핏 선잠에 든 나를 흔들었다. 나는 꿈결인 듯 혼돈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다가 '오로라'라는 강한 여운에 눈을 비볐다. 이미 소등된 지 오래인 기내 안은 정적에 싸였는데 깜깜한 밤하늘을 혼자 유영하던 남편이 행운을 잡은 것이었다. 


그이의 훈수 따라 암흑의 밤하늘을 종횡무진 헤매던 나의 시선에 환상적인 오로라가 너울너울 춤추는 광경이 저 아래 어디쯤에서 포착되었다. '춤추는 여신의 드레스 자락' 이라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을 만큼 고고하면서도 황홀한 춤사위를 펼치는 광경은 선경(仙境)의 어디쯤이 아닐까 착각하게 했다. 


연 초록 빛으로 때론 핑크 빛으로 쉼 없이 춤을 추는 오로라를 비행 중에 만난다는 것은 꿈에서도 상상 못한 일이었다. 나는 한동안 이를 음미하며 이번 여정에도 뜻하지 않은 행운이 함께하기를 염원했다. 


 예정대로 프랑스 남부 도시 바욘에서 첫 밤을 맞았다.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예약한 숙소는 하룻밤 지내기에 큰 불편이 없었으나 도착 과정이 만만하지 않았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는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옆 청사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행히 삼엄한 경비와 긴장된 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지만 연이은 국내선 연착으로 예정보다 늦은 시간 바욘에 도착했다. 


비 내리는 깜깜한 시골 광장에서의 고립감, 가까스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숙소를 찾았으나 기다리다 지친 집주인은 대문을 걸어 잠근 후였다. 하나가 어긋나자 연쇄적으로 경로를 이탈하여 낭패를 보았다. 앞으로의 여정에 순항을 위한 액땜이라 여기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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