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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3)
Imsoonsook

 

 

 만남의 장소 ‘인디언 가든’을 향해 일명 실버 브릿지(Bright Angel Suspension Bridge)에 올랐다. 북쪽 캐년에서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는 다리, 힘든 고비마다 머릿속으로 청사진을 그리며 마음을 다독였던 것들을 하나도 이행하지 못한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험한 하이킹 끝에 약간의 여유를 부리며 강바닥에서 누리고 싶었던 것들은 시간이 조금만 허락되면 가능한 일들이었다. 숙박 예약조차 어렵다는 ‘팬텀 렌치’에서의 차 한 잔 그리고 ‘브라이트 엔젤 캠핑장’을 돌아보고 싶은 소박한 바람을 뒤로 하고 다시 강행군에 나서니 발걸음이 쉽게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 나의 마음 이해한다는 듯 강물은 잔잔히 다음을 기약하라 소곤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콜로라도 강변의 유월은 여름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모래 벌을 달구는 강한 햇살이며 메마른 대지에서 뿜어내는 상상을 초월한 더운 열기는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는 듯 했다. 몇 발자국만 옮겨도 온몸에서 땀 비가 내리고 입술은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생물, 무생물 가릴 것 없이 습기란 습기는 무조건 거둬가는 열기 앞에 인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원측이 제시하는 하이킹 금기 시간의 필요성이 피부로 느껴졌다. 수시 물과 소금 알갱이로 탈진을 방비하며 무겁게 한걸음 또 한걸음 옮겨 놓았다.

 

 

 


 푹푹 빠져드는 부드러운 모랫길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지형 또한 만만하지 않아 2 km 남짓한 거리를 두 시간 넘게 걸려 강변 휴게소(River Resthouse) 언저리에 접어들었다. 계곡물이 흐르고 조그만 간이 휴게실이 있다는 정보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걸음을 재촉했다. ‘계곡물을 만나면 무조건 뛰어들라.’는 앞선 경험자의 조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온몸의 열기를 빨리 식히려면 그 방법이 최고일 텐데 선뜻 따를 수 있을지 자신감이 오락가락 했다. 


 강변 트레일을 벗어나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로 들어섰다. 일정의 딱 절반 정도인 15 km 를 계속 오르기만 해야 하는 구간이었다. 부드러운 모랫길에서 딱딱한 지면으로 바뀌니 걸음은 한결 편안해졌지만 갈증과 피곤함에 쉬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전방은 햇볕을 가릴만한 나무 그늘은 보이지 않았고 멀찍이 조그만 움막과 실개울이 눈에 들어왔다. 

 

 

 


 천신만고 끝에 간이 휴게소에 들어섰다. 통나무를 잘라 얼기설기 붙여놓은 시설이었지만 여느 일류 호텔 부럽지 않을 휴식처로 보였다. 최적의 장소에 최소의 공간으로 만들어진 휴식처가 얼마나 많은 하이커들을 구제해 주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휴게소엔 전혀 예상 못한 ‘지름길 팀’이 먼저 와서 선점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섰으려니 여겼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니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사람씩 눈빛을 교환하며 기쁘게 조우했다. 서로 떨어져서 염려하는 것보다 격려하며 함께 걷게 될 순탄한 남은 길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분위기는 석연치 않았다. 일행 중 두 사람이 컨디션 난조로 고생 중이라고 했다. 걱정했던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와 적잖이 당황했으나 우리 모두 근소한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처지에 놓였기에 매사 주의가 요망되었다. 


 조그만 계곡물에 겨우 등산화만 벗고 뛰어 들었다. 누구의 조언을 따른다기보다 우선 그렇게 해야 살 것 같았다. 체면 불구하고 물속에서 한바탕 뒹굴고 나니 그제야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보였다.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고생의 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얼마 안 가서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다시 트레일에 올랐다. 인적이라곤 우리 일행뿐인 텅빈 계곡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물속에서 나온 지 십여 분만에 옷은 다시 뽀송뽀송 해졌고 이내 땀범벅이 되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열기를 식히느라 고이 모셔온 생수병을 정수리에 부어가며 ‘인디언 가든’으로 진군했다.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지, 경험도 거리 표시도 전무한 상태에서 떠오르는 것이라곤 단지 수치로 나타난 3km 정도가 고작이었다.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은 절벽의 능선을 깎아 만든 ‘카이밥 트레일과 달리 계곡의 허리를 잘라서 조성된 길이라 굴곡이 완만하여 걷기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경치도 웅장한 계곡에 간간이 작은 숲과 물이 흘러서 내려올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원만하게 오르는 일행들을 보며 어둡기 전에 출발지점인 사우스 림(South Rim) 도착이 무난할 것 같다고 낙관할 즈음, 두 커플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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