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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1)
Imsoonsook

 

 칠흑의 어둠을 가르며 두 대의 밴이 조심스럽게 그랜드캐년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새벽 세 시, 깨어있는 것이라곤 차량의 전조등이 긋는 불빛과 그 안에서 흔들리며 밖을 주시하는 열두 명의 대원들뿐이었다. 무성한 잡초가 밤바람에 출렁이는 도로를 속도는 느리지만 제법 방향을 잡아 나아감은 다소 과하게 현장 답사를 한 덕이리라. 

 

 

 


 완전무장한 일행은 차를 파킹하고 트레일 헤드까지 우리를 인도할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기온 차가 심한 사막의 새벽공기는 두어 시간 설 잠에 혼미해진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인적이라곤 없는 깜깜한 정류장에서 추위에 떨며 오전 4시 첫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 인생에서 큰 획을 긋게 될 그랜드캐년 트레킹,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작은 사건은 결코 쉽지 않을 이번 트레킹의 전초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를 렌트한 우리는 오후 4시경 그랜드캐년 공원 인근의 모텔에 도착했다. 방 배정과 짐 정리를 대충 마친 후, 다음날 신 새벽에 시작할 트레킹의 출발지점 사전 답사 겸 해넘이 그랜드캐년 산책길에 나섰다. 협곡의 무채색 바위가 서서히 변화를 일으키는 늦은 오후, 수년 전 다녀갔음에도 그 감흥이 새로워 관전 포인트를 열심히 쫒아 다녔다. 


 불과 몇 시간 후면 협곡 사이사이를 걸어 콜로라도 강에 닿으리란 꿈을 꾸면서 황혼에 물드는 캐년을 돌다가 일행들과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다른 멤버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뭔가 잘못 됐음을 인식하고 넓은 공원 안을 셔틀 버스 혹은 뜀박질을 하며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한 부부의 실수로 두어 시간 만에 재회한 일행은 체력이 이미 고갈 상태에 있었다. 한인 외에는 감히 꿈도 못 꾼다는, 당일에 협곡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대장정을 위해 체력 관리며 먹을거리들을 여유 있게 준비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예정된 시간이 훨씬 지나도 셔틀버스는 물론 다른 하이커들도 나타날 기미가 없어 그제야 버스운행 시간표를 비쳐보았다. 비수기인 6월 말까지 오전 다섯 시부터 첫 버스가 운행된단다. 6월 29일, 그러니까 마지막 늦잠에 빠진 셔틀버스를 애면글면 기다린 셈이었다. 입수한 정보만 믿고 현지 실정을 등한시한 게 착오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춥고 지루했지만 사위는 금방 훤해져서 수면 부족으로 부석해진 일행들의 얼굴이 하나씩 육안으로 들어왔다. 벤치에 따닥따닥 붙어 앉은 일행은 가운데 펼쳐진 지도를 보며 서로 머리를 맞대었다. 


 장거리 원정에선 늘 리더의 손에 이끌려 다녔던 멤버들이 의기투합하여 미 서부 협곡 트레킹에 도전장을 낸지 6개월 만에 첫 관문에 들어서니 감개무량함과 함께 약간의 걱정도 스멀거렸다. K 대장이 꼼꼼하게 짜준 일정표에다 선 경험한 사람들의 실패담을 보완하면 크게 문제될 게 없을 터이지만 변화무쌍한 자연과 그 보다 더 심오한 인간관계에서 어떤 돌발 변수가 생길지 조심스러웠다. 


 남편이 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그날의 일정을 표기해 나갔다. South Kaibab Trail부터 콜로라도 강까지 당일 트레킹 할 구간과 완주에 자신 없는 멤버들을 위한 지름길을 따로 명시하고 선두와 후미를 책임질 회원도 정했다. 


 그리고 공원 측이 강조하는 페이스 조절, 수시 수분 보충, 12~15시 휴식 필수, 계곡물 만나면 무조건 들어가 열을 식히라는 점 등 사막지대 트레킹 안전수칙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시작은 모두 함께, 중간엔 따로 따로 그리고 오후 4시 ‘인디언 가든’에서 합류하기로 하며 각자 성공 의지를 불태웠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방에서 산악인들이 모여들었다. 썰렁했던 정류장이 이들의 출현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젊은 층인 이들은 벤치에 앉은 우리를 가운데 두고 팀끼리 모여서서 리드의 훈시에 귀를 기울였다. 신 새벽 젊은이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루 동안 같은 코스에서 비지땀 흘려야 할 동지들,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젊은이들이 전문 산악인의 인솔 하에 있다는 점이 은근히 부러웠다. 하이킹 경력으로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우리들이지만 초행길이라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트레일 헤드에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아직 늦잠에 빠져있는 회색빛 장엄한 계곡은 한발 두발 내딛을 때마다 수십억 년 시간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게 하는 느낌을 주었다. 한 구비 돌아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면 방금 떠나온 그곳이 딴 세상처럼 아득해 보였다.


 흰 꽃송이를 긴 꽃대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단 용설란, 진분홍 꽃을 피운 늙은 선인장 군락, 꼬불꼬불 소로 따라 이어지는 노새들의 행렬은 협곡에 신선함을 불어 넣는 주인공들이었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트레일을 서서히 내려오다 보니 멀리 첫 번째 휴식 장소가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일행은 잰걸음으로 그곳을 향했다. 하지만 우리를 유혹하던 아름다운 그곳이 트레킹을 힘들게 할 시발점임을 그 누가 알았을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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