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3 전체: 39,250 )
콜로라도에서의 그날들
Imsoonsook

 

 글을 쓰기 위해 자료 정리를 하던 중 아이패드에 메모해둔 글이 눈에 띄었다. 콜로라도의 대자연을 찾아가던 중간 숙소에서 메모한 몇 문장을 필두로 대 장정의 하루하루가 그대로 읽혀졌다. 

 

 

 


 ‘새소리 자글거리는 아침공원에서 커피 한 잔의 멋스러움. 새파란 하늘과 맞닿은 옥수수 밭 능선을 바라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음‘ 등등.


 짧은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는지, 퍼즐을 맞추어 나가듯 그 속을 파고들며 한동안 여행의 뒷맛을 음미했다.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은 잔잔한 여운으로, 거칠고 험난했던 순간은 짜릿한 전율로 전해오는 생생한 기억들은 과제를 앞둔 조급한 마음에 약간의 여유를 갖게 했다. 


 캠핑 예찬


 가랑비가 흩날리는 해질녘, 로키마운틴 국립공원의 동쪽 관문인 에스테스 팍(Estes Park) 타운에 들어섰다. 멀리 로키의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크고 작은 돌산이 자그마한 도시를 감싸고 있는 사이사이로 리조트가 형성되어 있어 쾌적하고 여유로운 전경이었다. 많은 여행가들이 언젠가 꼭 살아보고 싶다는 곳, 단 3일이지만 아름다운 마을에서 유숙할 수 있음에 행운이라 여기며 미리 예약해둔 KOA 캠핑장을 찾아들었다. 

 

 

 


 캠핑장은 다행히 타운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이동이 편리하고 경치도 좋아 흡족해 하며 지정해 준 사이트로 갔다. 하지만 우리의 캠핑 장소는, 아늑하게 자리한 캐빈(Cabin)촌을 지나 럭셔리한 R&V 사이트들을 꺾어 돌아 가장 구석진 장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자연 속에 들어오면 가장 자연을 잘 느낄 수 있는 캠핑을 선호하지만 그날은 ‘말 목장’과 담을 함께하는, 부잣집 곁방살이 같은 분위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휴가철 절정기에 탐탁지 않은 공간이나마 확보했음에 안도하며 텐트를 쳤다. 

 

 

 


 울퉁불퉁한 돌밭을 정리하고 지형을 살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궁궐을 부부가 함께 세웠다. 그리곤 엄선해서 공수한 일용품들을 비치하고 촛불도 밝혔다. 작지만 필요한 건 다 있는 최적의 공간을 둘러보며 그동안 너무 많이 가져서 미안한 마음, 불필요한 잡동사니에 휘둘려 살아온 안타까움, 들고나며 좁은 공간에서 부딪히며 나누는 부부애 등 다른 숙소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갖가지 상념들이 하나씩 피어올랐다.


 우리는 이내 이웃의 부자들이 부럽지 않은 마음으로 모닥불을 피우며 로키의 산자락에 내리는 어둠을 음미했다. 선착순으로 주어지는 사이트 배정을 받기 위해 새벽 다섯 시 롱스픽 3000 m 험산을 운전해 간 열성이나 늙은 선인장 숲 캐논의 거친 야영장의 그 밤도 그래서 우린 행복했었다. 

 

 도전, 블랙캐년에서 거니슨 강으로 


 산행 열흘 째 날, 블랙캐년 국립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드라이브의 스릴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는 ‘밀리언 달러 하이웨이’를 지나 아름다운 ‘아메리카 속의 스위스’ 구간을 거쳐 아찔한 절벽위에 섰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조망 포인트에 닿으니 딱딱한 회색빛 암벽에서 내뿜는 열기에 현기증이 났다.


 페인티드 월(painted wall), 드레곤 월(dragon wall) 등 세월과 자연이 빚어낸 거대 추상화들을 주마간산으로 훑다보니 멀리 협곡 사이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실오라기처럼 흐르고 있었다. 콜로라도 강으로 흘러가는 지류 중의 하나인 거니슨 강(Gunnison River)이었다. 그곳은 우리가 감히 갈 수 있으리란 꿈조차 꾸지 못할 요원한 거리와 깊이였다. 


 공원 주변 하이킹 코스를 탐색하다가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운명이었다. 매혹적인 도전 기회를 놓칠리 없는 우리는 곧 코스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도 받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우리는 블랙 캐년을 하강하는 첫 하이커가 되어 Oat trail head에 들어섰다. 두려움과 설렘으로 출발한 하이킹은 시작부터 고난도의 스킬을 요구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두 배 높이에 해당되는 수직절벽 사이에 난 소로를 내려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주변 경치 감상은 상상도 못한 채 촉각을 곤두세워 한 발 한 발 전진해 나갔다. 미끄러지거나 구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오금이 저려서 머뭇거리기를 수차례, 하강 두 시간여 만에 강바닥을 밟았다.


 긴 한숨과 함께 내려온 절벽을 되짚어 보니 겁없는 도전이었음이 확연이 읽혀졌다. 정오의 햇빛만 살짝 스쳐가는 좁디좁은 협곡에 태초의 고요함이 켜켜이 내려앉은 그곳에서 우리는 고행 뒤의 기쁨을 잠깐 만끽하고 다시 절벽 길에 올랐다. 


 그곳은 하루 하이킹 인원을 15명으로 제한하고 사전 특별 허가는 물론 출발 전과 도착 후에 꼭 사인으로 무사귀한을 공원 측에 알려야 하는 난코스였다. 겁없이 덤벼든 무지한 하이커 4인, 가슴에 큼직한 훈장 하나씩 안고 돌아왔다. 


 자연 속에 들 때엔


 산행 마지막 날엔 이런 메모가 적혀 있다. MT. 앨버타, 14000 f. 자유산행 그리고 최종 목표는 수목 한계선까지. 갑작스런 일기 변화로 우박 쏟아짐. 2/3 지점에서 하산 결정. 판초의 고마움. 팔월에 쏟아지는 우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유비무환을 읊조리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