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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어쩌면 어머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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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이수익

 

 

 

 

<누더기>라는 말이
좋다, 얼마쯤 눈물겹게 포근하고
얼마쯤 편안한 여유가 있다. <누더기>라면
오래되어 닳고, 허물어졌지만
나를 밖에 서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질
않는다. 따뜻히 자기 안으로 오라, 끌어들이면서
나를 감싸 안는다. <누더기>는
그런 모성이다, 연상이다. 지순의
사랑, 헌신이다.

<누더기>,
오오, 어쩌면 <어머니>같은

 

 


 새하얀 세상위로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세상의 빛을 보게해 주신 고맙고 위대한 존재, 어머니가 있습니다. 올해 신년은 어머니에 관한 시로 시작합니다.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꺄우뚱 하는 독자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누더기> = <어머니>라는 이미지 이외에 이 시는 현란한 언어의 기교를 부리는 어떠한 수사법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의도적으로 이런 서술방법을 택했는지도 모릅니다. <누더기> 나 <어머니>는 화려한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더기>!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낯설지 않은 말입니다. 요즘같이 물질이 풍요한 시대에는 찾아 볼래야 찾을 수도 없는, 어려웠던 시절의 유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누더기를 제재로 삼아 시를 지었을까요? “연민”일 것입니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연민, 남이 버리고 천대하는 것들을 보듬어 안고 애처로워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시심입니다.


 시인은 <누더기>에 자신이 허물어집니다. 그 <누더기>에 안깁니다. 여기에 감동이 있습니다. 그의 “연민”은 동정을 베풀어 자기의 우월감을 충족시키는 그런 허영심이 아닙니다. 그는 <누더기>에서 “어머니”를 느꼈고, 그 “사랑”을 깨달았고, 그 “헌신”을 보았습니다. 


사랑은 베푸는 자의 그 어떤 우월감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헌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성”입니다. <어머니>는 누더기 같이 오래되어 닳고, 허물어졌지만, 나를 밖에 서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질 않고, 따듯히 나를 감싸 안습니다.


 이 <어머니>라는 말에 더 이상 무슨 이미지의 형상화가 필요하겠습니까. 시인은 마지막 결구에서 ‘<누더기>, 오오, 어쩌면 <어머니>같은’ 이라는 말밖에는, 어떤 화려한 미사려구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라는 말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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