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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섭의 현대시 산책(1)-이성과 감성, 그 조화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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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영

 

 

    순결한 자만이
    자신을 낮출 수 있다.
    자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남을 받아들인다는 것,  
    인간은 누구나 가장 낮은 곳에 설 때
    사랑을 안다.


    살얼음 에는 겨울,
    추위에 지친 인간은 제각기 자신만의 
    귀가 길을 서두르는데
    왜 눈은 하얗게 하얗게
    내려야만 하는가,
    하얗게 하얗게 혼신의 힘을 기울여
    바닥을 향해 투신하는
    눈,


    눈은 낮은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녹을 줄을 안다.
    나와 남이 한데 어울려
    졸졸졸 흐르는 겨울물 소리,
    언 마음이 녹은 자만이
  사랑을 안다. 

 

 

 한 해가 저무는 시점에 성자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소멸과 생성>. 하나의 시간이 사라지며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새 싹을 틔운다.”는 성서의 말씀이나,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라는 만해 한용운의 싯귀처럼, 소멸하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성자의 탄생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해 스스로 녹을 줄 아는’ 사랑으로, ‘이 세상 가장 여린 것. 가장 작은 것들을 보듬어 안는’ 사랑으로, 그리하여 인류 뿐만 아니라 온 자연 만물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그런 우주 공통체적 사랑의 탼생을 상징할 것입니다.


 시인으로 뿐만 아니라 평론가로, 또한 시학교수로, 시류나 유행을 타지 않고 시의 본령을 건강하게 지켜온 오세영 교수는 한국시단의 유니크한 시인입니다. 그는 불교와 노장의 무공사상과 역설의 논리에 기초한 동양적 사유를 통해 사물의 본질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에 천착해 왔으며 인간내면의 서정과 고뇌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평자들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눈으로, 문명이 아니라 자연의 눈으로 , 그리고 이 양자를 통합하는 둥글고 부드러운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오세영 시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힘겨웠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겨울숲 너머로 어득한 저녁이 몰려오면 창문마다 불이 켜지고, 모두들 고향집으로 돌아와 고단한 몸을 눕힙니다. 


 지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하얗게 하얗게 온 마을을 덮고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에도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하얗게 하얗게 내리고 있습니다. 묵은 마음은 녹아 내리고, “사랑의 탄생”은 기쁨이 되어 밝은 새 해로 떠오를 것입니다. *


*현대시 산책을 시작하며


 시 읽기에는 정답이 없다고 합니다. 좋은 시는 두 겹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여기에 시의 묘미가 있는 지 모릅니다. 


 따라서 시 감상에서 답을 얻으려는 노력은 무모한 일이며 작품을 곡해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대시의 맛과 그 의미를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고 감상하는 가벼운 시의 산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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