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rokim
노스욕 거주,본보 주최 제1회 정원&텃밭 컨테스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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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6.25 회상(11.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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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대전에 와 여인숙 방에 들어가니 피난민 15명이 자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끼어 새우잠을 달게 자고 일어났더니 1951년 1월 1일.


 그로부터 3일 후인 1월 4일에 서울은 다시 인민군 치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번 후퇴를 1.4 후퇴라 불렀다.

 

 1950년 10월 말경 함경북도 북단을 제외한 북한 대부분을 유엔군이 장악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리기 시작하면서 12월 6일엔 인민군에 의해 평양이 함락되고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서울까지 함락되면서 공산 북한의 학정에 시달리던 북한 국민들은 육로와 해로를 통해 대규모로 월남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군 수송선으로 피난하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을 이루었던 흥남부두는 서로 먼저 타려는 사람들의 아우성 터로 변해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이산가족이 되었다고 했다.


 총 1천만의 북한 국민들이 이산가족이 되었다는 통계도 있다. 반세기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이산가족의 상봉문제는 풀리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유행가가 있다. 가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가 그것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메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옥천과 추풍령을 넘어 차를 점검하고 점심도 먹고 가자고 했다. 우울한 겨울 낮, 역의 현판을 보니 직지사 역이란다. 추측건대 직지사가 가까우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소백산 허리로는 추풍령, 조금 남쪽으로 보이는 황학산 그리고 연이어 있는 높은 산들.. 이곳은 사방이 소나무 숲으로 뒤덮인 깊은 산중이었다. 지난여름 피난길에 지나갔던 장성의 강재를 넘기 전의 신흥마을 같았다. 

 

 직지사!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선생이 소백산맥 기슭에 있는– 면이 고향인데 여기는 금강 상류에 해당한다고 했다. 자기 고향이 직지사에서 가까워 종종 소풍을 갔고 또 스님들한테서 들었다는 고사를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신라 눌지왕(418년) 때 아도화상이 황학산 기슭을 손가락(指)으로 가리키며 ‘저기에 큰절이 들어설 만하다고 한 후 절을 창건하고(直指寺)라 했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 사명대사가 이 절에 입산 출가하여 승려가 됐고 젊은 나이에 주지 스님이 되었으며 왜란 때 유명한 승장으로 커다란 공을 세워 이 절 사명각엔 대사의 진영이 안치되어 있다고도 들었다.

 

 김천, 대구, 경산을 지나 밀양에 도착하자 잘 가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자기들은 새로운 집결지로 간다며 우리를 걱정했다. 언뜻 보면 우리 형제가 목자를 잃은 어린 양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난여름의 혹독했던 피난의 경험과 고물여객선, 기차 지붕 위에서 목숨을 건 상경들의 어려운 일들과 이번 1.4 후퇴의 피난을 겪으면서 값진 경험과 함께 두둑한 담력과 배짱이 생겼고 나이도 한 살을 더 먹어 할 수 있다는 오기와 자신감이 생겨났다.

 

 기차로 삼랑진을 지나 부산, 제2 부두로 왔다. 선창가 식당 겸 공동 합숙소에 들어와 여수로 가는 정기여객선이 이틀 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부두 주변을 배회하며 단팥죽도 사먹고 큰 배가 지날 때면 영도다리 한쪽이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을 신기해하며 구경하기도 했다. 여객선을 2달 전의 코스를 그대로 거쳐 여수에서 손님들을  내려놓았다. 그 후 기차로 벌교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이로써 지난해 8월에 시작되어 장장 6개월에 걸친 피난, 피난, 피난의 대장정을 마쳤다.

 

 남하하는 피난 행렬로 떨어지는 미군 폭격기의 수 많은 무차별 폭격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피난민들이 희생되었지만 우리는 용케 피할 수 있었다. 인민군과 지방 빨치산들의 보복적 학살도 직접 보았다. 강제 동원이나 그럴 듯한 속임수로 북으로 끌려갈 뻔했던 것은 몇 번이었던가…

 

 연속되는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우리 3형제가 멀쩡하게 고향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간절한 기도의 힘이 아니었는가 생각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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