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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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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Amadeus)'(6)
youngho2017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지난 호에 이어)
 한편 모차르트는 갑작스러운 아버지 레오폴트의 사망 소식에 생기를 잃고, 거기에다 폐렴과 각종 합병증 등, 알려진 바에 의하면 '118가지의 증상'으로 병자의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살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을 즈음, 살리에리는 예전 가면파티에서 레오폴트가 했던 것과 똑같은 분장으로 나타나 돈을 주며 장례식에 쓰일 미사곡 하나를 지어달라고 의뢰한다. [註: 실제 레퀴엠 작곡을 의뢰한 이는 프란츠 폰 발제그 백작(Count Franz von Walsegg, 1763~1827)으로 알려졌다. 그는 많은 음악가들에게 작곡 의뢰를 한 후 그 곡을 자기가 작곡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별난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1791년 당시 20세로 죽은 그의 아내 안나를 추도하기 위한 진혼미사곡을 모차르트에게 익명으로 요청하고 계약금의 절반을 선수금으로 주었는데 모차르트가 죽는다. 영리한 콘스탄체는 남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Franz Xaver Sussmayr, 1766~1803)를 통해 미완성 레퀴엠을 완성시켜 다음 해인 1792년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제출함으로써 돈을 다 받아냈다. 발제그 백작은 1793년 12월14일, 그리고 다음 해 아내의 기일인 2월14일에 제메링 근교에 있는 순례자 교회에서 자작곡으로 두 번 공연하였지만, 이보다 앞선 1793년 1월2일 콘스탄체의 '레퀴엠' 자선공연을 통해 비엔나 사람들은 이미 이 곡이 모차르트 작곡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때 "돈 조반니"의 서곡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이 곡은 좀 뒤에 다가올 모차르트의 불행과 비극적인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이 어둡고 비장하다.


 광기에 사로잡힌 살리에리는 이 일로 모차르트를 닦달하고 학대하고, 그 누구보다도 모차르트를 사랑했던 아버지의 망령이 병약해진 모차르트의 주변을 떠돌아다니게 하면서 그를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결국 그것이 모차르트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되어 스스로 자신의 진혼곡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되는데…. 


 병약한 모차르트가 아내와 아들 카를(밀란 뎀야넨코)과 함께 "돈 조반니" 패러디 공연을 보러간다. 제1막에 나오는 "자 우리 서로 손을 맞잡고(La Ci Darem La Mano)"라는 돈 조반니(바리톤)와 체를리나(소프라노)의 2중창인 노래를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말굽을 준다면 내 마음을 당신에게 주겠어요."라고 패러디한 코믹한 장면이 폭소를 자아낸다. [註: 콘스탄체는 6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4명은 1년을 못 넘기고 죽고 아들 2명만 살아남았다. 영화에 나오는 카를 토마스(Karl Thomas Mozart, 1784~1858)는 6명 중 둘째로, 프란츠 듀셰크와 철학가이며 모차르트 자서전을 최초로 쓴 니메첵(Franz Xaver Niemetschek, 1766~1849)의 지도를 받았으나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사업가 및 오스트리아 재무성 관리로 일하다 거기서 사망했다. 
 6명 중 막내인 프란츠 크사베르 볼프강(Franz Xaver Wolfgang Mozart, 1791~1844)은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서 개인지도를 받고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1844년 7월29일 위암으로 사망하여 칼스바트(현 카를로비 바리)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그의 삶의 전부였기에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묘비명이 되게 하소서." 둘 다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모차르트 가문은 이것으로 대가 끊겼다.]


 공연 중에 무대에서 잠깐 내려와 모차르트를 찾아온 쉬카네더(사이몬 캘로)가 자기 극장에서 공연할 새 오페라 작곡을 그에게 의뢰한다. 수익금의 절반을 주겠다고 제의하지만 궁핍한 콘스탄체는 당장 선수금을 달라고 요청하는데…. [註: 에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 1751~1812)는 모차르트의 절친한 친구로 '마술피리'의 대본을 만들어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1791년 9월30일, 그가 운영하는 비엔나의 비에덴(Wieden) 극장에서 초연을 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모차르트가 죽기 2개월 전이었다. 쉬카네더가 주인공 파파게노 역을 맡았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수였던 요제파 호페르(Josepha Hofer, 1758~1819)가 유명 아리아 '밤의 여왕'을 불렀다. 요제파는 바로 콘스탄체의 맏언니인 요제파 베버로 궁정악단 바이올린 주자였던 호페르(Franz de Paula Hofer, 1755~1796)와 첫 결혼했고,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의 첫 공연에서 교도소장 돈 피차로 역을 맡았던 바리톤-베이스 가수 제바스티안 마이어(1773~1835)와 두 번째 결혼했다.]

 

 

 


 차츰 비엔나 시민들의 냉대를 받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던 모차르트는 이리저리 손을 내밀지만 퇴짜를 맞는다. 돈 때문에 진혼 미사곡 작곡과 마술피리 오페라 작곡을 동시에 진행하며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간다. 


 진혼 미사곡 "레퀴엠 D단조" 3악장 '부속가(Sequentia)' 중 첫 단인 '진노의 날(Dies Irae)'과 3번째 단인 '지엄하신 왕(Rex Tremendae)'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스탄지(콘스탄체의 애칭)가 잠든 사이에 작곡을 멈추고 술집으로 가서 왕창 스트레스를 풀고 놀다가 다음 날이 밝아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모차르트. 

 

 

 

 


 스탄지와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 장모인 베버 부인을 찾아갔으나 딸을 요양차 온천에 보냈다며 '자신과 음악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고 호된 질타를 하는데, 그 앙칼진 목소리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밤의 여왕'(밀라다 체칼로바) 장면으로 절묘하게 전환된다. 

 

 

 

 


 '밤의 여왕(The Queen of the Night, youtube.com/watch?v=YuBeBjqKSGQ)'은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마술피리(Die Zauberflote, K.620)"의 제2막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다. 이 노래는 'High F6'의 높은 음역을 요구하여 소프라노에게 꿈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곡으로 알려졌다. 영화 속 노래는 미국 보스톤 출신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준 앤더슨의 목소리다. 


 결국 모차르트는 아내와도 떨어져 혼자 남게 되고, 급기야 1791년 공연된 오페라 "마술 피리(The Magic Flute)" 지휘 도중 몸이 좋지 않아 내려오고, 대신 제2막에 파파게노(사이몬 캘로)가 부르는 아리아 '소녀 혹은 귀여운 아내를(Ein Madchen oder Weibchen, youtube.com/watch?v=QrVHYVLtQkk)' 부분에서 마법의 벨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다 끝내 쓰러지고 만다.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살리에리가 무대 뒤로 와서 쓰러진 모차르트를 자기 마차에 태워 (병원이 아닌) 아마데우스의 집으로 데려간다. 


 '마술피리'의 공연은 계속된다. 유명한 이중창 '파-파-게나! 파-파-게노!'가 브라이언 케이와 길리안 피셔의 목소리로 나온다. 파파게나의 연기는 리스베스 바틀렛이 맡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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