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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VIII)-'내 이름은 바흐' (My Name Is Bach)(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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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거장 음악가의 만남, '음악적 헌정'을 통해 교감

 

 

 

 

(지난 호에 이어)
 장면은 바뀌어 바흐와 아들들이 모였다. 바흐는 곧 눈이 멀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아들들은 그럼에도 왜 왕을 위해 작곡을 하시느냐고 묻는다. 바흐는 음악이 좋아서이고 오르간은 안 보고도 연주할 수 있다며 갑자기 힘차게 노래를 부르자 모두 얼싸 안고 합창한다. 


 교황, 국왕을 비롯한 귀족들을 비꼬는 내용인데 마치 우리나라의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어사출두 전에 변사또의 잔치에서 읊은 시 "금항아리의 맛있는 술은 많은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일세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를 연상시킨다.


 프리드리히 2세는 밤잠을 설치며 새벽 3시경 골츠에게 오늘부로 포고, 발효될 칙령을 받아 적도록 한다. "고문은 재판관이 출석하여야 집행될 수 있으며 다음날까지 반복해서는 안 된다. 모두 해서 고문은 30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 모래시계를 설치하되 희생자는 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지시한다.

 

 

 


 프리드리히 2세는 밤마다 폰 카테 대위의 고문과 참수에 대한 악몽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다.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카테는 그의 애인이었기에 더더욱 잊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플루트를 연주하며 그 슬픔을 달랜다. 


 프리데만 바흐가 아말리에 공주의 방 침대에서 자다가 아침이 밝아오자 도망치듯 나간다. 그녀의 함께 살자는 간청을 뿌리치고…. 


 이 사실을 안 왕이 동생을 불러 왕족답지 않은 그녀의 처신에 대해 질타하고, 상수시 궁은 여자는 거처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 포츠담 궁에 남으라고 명령한다. 

 

 

 

 


 이에 아말리에 공주는 "상수시 궁에 대해서는 지겹도록 들어왔지만 왕은 왕후 가랑이 사이에서 후계자를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며 자기는 합법적 프로이센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왕의 노리개가 아니라고 담대하게 말한다. 또 프리데만 바흐의 음악적 자질 운운은 왕의 통제 밖에 있는 사항이라고 쏘아 부친다. 그리고 나가면서 스커트를 들어올려 엉덩이를 내보이고 사라진다. [註: 프리드리히 2세는 1733년 21세 때 오스트리아 원수인 영국 왕실 하노버 가문의 페르디난트 알베르트 2세의 딸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1715~1797)와 결혼하였으나, 자신의 뜻과는 무관한 부왕의 뜻에 따른 결혼인 데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아예 관심이 없어 별거했고 공식 행사 때만 방문헀다. 둘 사이에 자녀가 없어 결국 그의 조카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내일 상수시 궁으로 이사하기 위해 분주한 틈에 바흐가 하직 인사를 하기 위해 프리드리히 대왕을 찾아온다. 왕은 그를 궁정작곡가로 머물게 하려 하자 바흐는 말한다. "전 평생 남의 요청에 의해 작곡을 해 왔어요. 그러나 이젠 작곡을 하지 않을 겁니다. 전 '레몬처럼 쥐어짜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기쁨'입니다. 무로부터 어떤 것을 창조하는 기쁨 말입니다. 이것은 결국 '자유'를 통해 얻어집니다."

 

 

 

 


 이 말에 고무된 왕의 안내로 악기보관실로 간 둘은 별의별 악기를 어린애마냥 정신없이 두드리고 불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린다. 이제 두 사람은 군신(君臣)의 관계가 아닌 마치 부자(父子)가 된 듯 가슴 깊이 묻어둔 얘기를 나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클라이맥스다. 바흐가 왕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는 와인상이 되고싶어 했는데 작곡가가 되어 자식들은 자기의 그늘에 갇히는 꼴이 되었다며 하지만 '인생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한탄한다. 


 한편 왕은 나의 아버지는 명령만 내렸고 고함치고 때리고 스프에 침을 뱉고 그걸 먹게 했으며 그의 발에 키스를 하게 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플루트를 배웠다. 누나 빌헬미네(Princess Friederike Wilhelmine, 1709~1758)를 사랑했는데 떼놓기 위해 그녀를 강제 결혼시켜 버렸다. 그때부터 난 혼자였다.… 


 적대적인 아버지의 기억에 치를 떠는 프리드리히 왕을 아들처럼 포옹하는 바흐! 이제 영화는 마무리에 바쁘다. 바흐는 라이프치히로 떠나며 요한나에게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라"며 "가족은 영원할 수 없지만 음악은 영원하다"고 말한다. 

 


 궁에 남은 아말리에 공주는 에마누엘이 연주하는 피아노곡(플루트 협주곡 A단조, WQ168)을 들으며 독백을 한다. "왕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뺏어갔다. 나의 행복과 나의 삶 모두를!" 


 상수시 궁으로 옮긴 프리드리히 2세는 비서관 골츠로부터 오스트리아군 암호문을 입수하여 해독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다가 갑자기 '바흐로부터 악보가 도착했느냐?'고 다그치는데…. [註: 그러나 몇 주 뒤 라이프치히에서 보낸 바흐의 '음악적 헌정(The Musiical Offering)' 악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정작 왕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라이프치히로 돌아가는 바흐가 탄 마차가 프로이센령을 벗어날 즈음 첫 장면에 나왔던 세관원이 한 마차에 탄 사람의 이름을 묻지만 불어 외엔 한마디도 알아 듣질 못하는데, 그가 바로 상수시 궁으로 가는 볼테르였다. 바흐가 탄 마차가 지나쳐 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볼거리를 위해 프리데만 바흐와 아말리에 공주와의 로맨스를 억지춘향 격으로 짜깁기 한 것이 흠이지만, 모든 배우들의 연기 및 대사가 훌륭하고 여감독답게 세트, 의상, 분장 등이 섬세하고, 꼼꼼하게 잘 만든 수작이다. [註: 바흐가 다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1802년 프리데만 바흐의 제자이며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Johann N. Forkel, 1749~1818)이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바흐 사후 약 80년이 흐른 1829년, 열렬한 바흐 팬이자 바흐 음악의 복원자였던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이 '마태 수난곡, BWV244 (1727)'을 복원하면서 다시 한번 바흐 열풍을 일으켰다. BWV 번호는 독일어 'Bach-Werke-Verzeichnis'의 약자로 작품 목록은 1천 곡이 넘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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