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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극장(劇場)(3부)-희년(禧年)의 축제(祝祭) (오십 년만의 음악회)
yoobyungyong

 

 

생전 처음 겪는 격정의 시간이었다. 오십여 년의 세월을 용해하고 사십여만의 시간들을 그 자리에 차려진 훌륭한 정찬요리와 함께 우리의 추억으로, 우리의 가슴으로, 우리의 목구멍으로, 까마득히 사라진 과거와 그날 그 자리에 세 사람이 함께한 현재를, 동시에 음미하며, 느끼며, 마시고 삼키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 말씀이 11월 00일00시 명동성당 미사시간에 본인이 지휘하는 000성가대가 병용이 보내준 곡을 발표할 것이니, 그날은 꼭 와달라는 부탁이셨다. (병용이 한국 방문 전 그가 이십여 년전 가사를 붙이고, 그의 친구가 곡을 만든 악보 한 편을 메신저를 통해 선생님께 송부해드렸음)


하지만 그날은 병용이 이미 한국을 떠난 뒤의 일자(日字)가 될 것이라 말씀 드리니, 그럼 그전에 또 다른 큰 행사가 있으니 00일 몇 시까지 00장소로 꼭 와달라는 재청을 하셨다. 


그날 역시 병용의 일정에 맞지 않아 고사의 뜻을 드리니, 그렇다면 마지막 으로 성가대 연습이 00일 00시에 강남구 00처에서 있으니 그때 와서 우리대원들과 함께 병용의 노래를 부르고 연습에 동참 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다시 하시었다.


그것마저 거절한다면 큰 결례가 될듯하여 빡빡한 일정을 조율한 뒤, 그 자리에 나아가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동석했던 친구도 그 자리에 초대되었으나, 그 친구는 이미 같은 날 00대학에 변경 불가능한 일정이 잡혀있어 함께 동행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그날 저녁 만찬의 장소는 선생님이 주선하셨고, 황공하게도 모든 비용을 당신께서 친히 감당하신 극진한 제자 사랑의 본을 보여주신 귀한 자리였다.) 


몇 번의 낯과 밤이 지난 후, 약속 시간에 맞춰 그 장소로 간 뒤, 성가대원들 앞에서 간략한 자기소개와 선생님과의 마치 영화와도 같은 극적 해후에 대한 사연을 말씀 드린 후, 그 분들 앞에서 병용은 자신의 곡 한절을 독창하고, 다시 그분들과 함께 합창을 한 뒤 그분들의 앵콜 요청에, 준비해간 가곡 두 곡, 또한 선생님이 병용에게 선물하신 CD에 실린 곡 중 1곡을 독창하기도 하였다.


병용은 그날, 그분들로부터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환대와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으며, 대원들이 정성으로 준비한 케익과 떡을 들며 약간은 민망할 정도의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케익은 선생님이 병용을 위해 준비하신 듯)


대원들 중엔 명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쟁쟁한 분들이 계시다고 하였는데, 그런 자리에 웬 무지렁이 같은 자(者), 병용이 설쳐 대었으니.


그날, 병용은 생애 중 아주 특별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한 시점으로 기억될 대사(大事)를 마치고, 대원 여러분께 정중히 감사와 헤어짐의 인사를 드리고, 선생님께도 각별한 고마움과 반가움, 또한 섭섭함의 언제 다시 재회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석별의 정(哀情)을 나눈 후, 그의 임시 체류지인 아들네 집을 향하여 발을 떼었다.


두 주간의 모든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병용은 귀국길(Canada )에 올랐다. 인천을 떠나 서해를 가로질러 중국, 러시아 북동부, 앨러스카 북미대륙의 만 미터 고도를 장시간 날며 병용은 금번 한국방문의 전 과정을 리뷰 하였다.


처음엔 한국방문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무겁고 부담이 되는 여행이었으나, 하지만 그가 아니면 누구도 대신 감당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담대히 나서기로 하였던 터였다. 


그러했던 고국방문이, 하루 평균 두세 시간의 수면과 빠듯한 일정으로 느긋하게 즐기지도, 식도락의 일탈마저 누려보지 못한 채 매일 바쁘게 일을 보고, 짬짬이 지인들을 만나고 하였음에도 전혀 지치지 않고 오히려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으니.


병용은 곰곰이 묵상을 이어갔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웠으며 한동안 소원했던 옛 친구, 또한 서먹했던 형제와의 만남을 통해 껄끄러웠던 관계를 회복하고, 늘 다정했던 몇몇 지인들과는 더 깊은 정을 주고받는 보람되고 값진 열매가 맺어진 그런 복된 여정이었다.


그에 더해 평생 잊을 수 없는 귀한 만남을 가졌으니, 그것이 바로 오십여 년 만에 상봉을 하게 된 중등시절 음악을 담당하셨던 N선생님과의 만남이라 하겠다. 세상 그 누구라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병용에게는 그의 옛 시절 삶의 궤적에, 제일 아쉽고 그리운, 어쩌면 한스럽기까지도 하였던 그 장면이 N선생님과의 인연이었다.


오랜 인생의 숙원이었던 그 ~ 큰 ~ 소원이 금번 고국방문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진정 병용의 생애에 언제까지라도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희년(禧年)의 축제(祝祭) (오십 년 만에 치러진 음악회) ~ 로 병용의 가슴에, 고이고이, 새기어 지리.  


 출연: J H, Nam / E S , Kyung / 유병용 / 명동성당 000 성가대원 일동


 (희년의 유래(year of Jubilee): 기독교(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전통 중 하나로 옛 시절 유대민족이 칠 년마다 안식년을 지키고, 일곱 번의 안식년이 끝나고 오십 년째 한 해를 희년으로 정하여, 자유를 선포하고, 종 되었던 자는 풀어주고, 매였던 자들은 놓임을 받고, 빚을 졌던 자들은 탕감 받고, 땅을 빼앗긴 자들은 그것을 돌려 받는 등 민족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체의 축제이며, 자유를 선포하는 은혜의 해를 일컬음.
 제목을 ‘희년의 축제’로 한 것은 병용이 오십여 년 만에 옛 스승을 뵙고, 그간 병용의 가슴에 맺힌 오랜 소원, 슬프고 아렸던 그 숙원이 모두 완전히, 후련하고 말끔하게, 씻어진 그 기쁨을 나타내려 한 것임을 밝힙니다.)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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