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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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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얼리스(2)-생각하는 힘
wnna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한다. 인간이 수많은 지구상의 생물 중에서 영장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생각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 말하는 ‘생각’이란 단순한 ‘지각’이나 ‘기억’을 통한 정보처리와 판단을 포함하는 본능적인 두뇌활동을 넘어선 이성적인 사유(思惟)를 말한다. 사람이 이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면 단순히 본능에 따라 반응하고 행동하는 동물이나 다를 게 없다.


내가 생각다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중학교1학년 때 쯤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 때까지만 해도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다고 하면 으레 동화책이나 소설류의 ‘이야기책’들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무슨 마음에서 그랬던지 이야기책이 아닌 무슨 철학 책 같은 걸 빌려서 읽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칸트의 철학 책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은 책의 제목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 책에서 읽었던 내용은 그 날 이후 지금껏 내 머리에 남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책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속담도 있듯이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고 그대로 믿는다.

말 그대로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것이 그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었다. 


지금 내 앞에 빨간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상자를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추호도 의심할 여지없이 빨간 상자를 보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이 그 상자를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듯이) “아무 생각없이” 그냥 바라 보았을 때 갖게 되는 생각이고 믿음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본건 그 상자의 한 쪽 면에 불과하다. 그 상자를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그 상자가 빨간색이라고 굳게 믿기 쉽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한 쪽은 파란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는 것이다. 즉, 그 책의 저자는 “사람이 어떤 물체의 전체를 한꺼번에 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생각하는 힘’이 없는 사람은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의 겉모습만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어 늘 ‘본질’과 ‘진실’을 놓치기 쉽다는 이 깨우침은 당시 나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 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동물과는 다른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실 갓 태어났을 때는 다른 동물들과 큰 차이가 없이 ‘동물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을 통해 지식을 얻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근래 한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회현상들을 바라보노라면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점점 더 잃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국민들의 거의 80% 가까운 인구가 대학교육을 받을 만큼 교육열이 높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남이 해놓은 생각들을 단순히 암기하는 데만 교육이 집중되어 있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듯하다. 남이 해놓은 생각들을 열심히 암기했다가 그걸 ‘기억해 내는’ 걸 ‘생각하는’ 걸로 착각하는 듯한 행태를 많이 보게 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기가 암기한 내용들을 자기 생각이라고 착각하며 우기는 경우를 많이 본다. 스스로 생각할 줄을 모르니 건전한 토론이나 논쟁이 힘들다. 자기가 기존에 알고 있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주장만 할 뿐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주장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따라 자기주장을 수정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억지 주장과 싸움만 난무할 뿐 건전한 결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일방적인 지식만 머리에 가득하고 이성적인 사고력이 부족하니 사회현상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다각도로 생각할 줄을 모르고 한 쪽 측면만 크게 부각하여 보게 된다. 비록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어느 한 쪽 측면을 강조한 허구의 산물일 뿐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며 그 걸 바탕으로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21세기를 살면서 전근대적인 ‘극장의 우상’에 휘둘리는 미개인의 행태를 보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자기가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니 자기가 보지 못하는 면을 지적하고 주장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적으로 간주하고 분노하며 증오한다. 대화를 해도 늘 일방적인 주장들만 난무하고 타협이나 절충이 이뤄지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 암기한 지식들은 이성적인 사고의 밑거름으로 사용되지 못 하고 화석처럼 굳은 아집이 될 뿐이다. 지성과 이성이 결여된 지식은 잘못된 신념과 독선이 되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반목만 키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지배하지만,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상황에 끌려 다니며 상황의 지배를 받게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폴 부르제)는 말도 같은 맥락의 말이다. 


흔히 한국사람을 가리켜 ‘동양의 유태인’이라고 한다. 머리가 명석하면서 악착같이 돈벌이에 매달리고 교육열이 유난히 높은 점도 그렇고, 미국을 비롯한 이민자 사회에서도 청과물상 등 유태인들이 초기에 많이 했던 사업들을 한국인들이 많이 물려 받는 현상을 봐도 일견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두 민족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유태인들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민족이고, 한국인들은 사는 대로 생각하는 민족이다. 유태인들은 어느 시대 어느 땅에서 살든 변하지 않는 세계관과 인생관을 수천 년 동안 간직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어 왔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실속이 없이 헛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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