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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양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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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 마음에 양심을 넣었다고 하셨다. 양심이란 사람이 가져야 할 근본 진리 아닐까? 자기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알고 바른 말과 행동을 하려는 마음, 그것이 양심이다.  어디서든 항상 옳은 것에, 스스로를 올곧은 곳에 서있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을 비추는 유일한 등불은 이성이며, 삶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는 양심”이라고 독일의시인 하이네가 말했다. 


 천지(天知), 지지(地知), 여지(汝知), 아지(我知). 한마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말로서 세상에는 비밀이란 없다는 말이다. 양진전의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일화다. 꼭 누가 알아서가 아니라도 내 양심이 미리 경종을 울려 나를 불안하게 하고 물러서게 한다. 양심은 나를 재판하는 재판관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첫 번째 양심을 팔아버리는 장면이 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는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양심을 팔아버리고) 죄를 범하게 된다. 언제나 죄는 또 하나 더 자기를 변명하게 하고 빛에서 멀어지려 한다. 죄는 어둡기 때문이다. 죄가 있는 곳은 어둠이므로 스스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려 애를 쓰게 된다. 그것은 양심의 소리로부터 멀어지려 애를 쓰는 악의 모습이다. 그 모습 자체가 양심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인 것이다. 온갖 변명과 남에게 덮어씌우려는 처절한 자기 싸움을 하게 된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현실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보게 된다.


 왜 인간은 양심을 팔아가며 살아가는 것일까? 요즘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도저히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일들이 펄럭이지만 또한 수수방관의 자세로 지나치는 것은 웬일인가? 이 시대의 양심의 잣대는 도대체 무엇일까? 요즘은 TV를 켜는 일도 무서워진다. 위정자들의 스스럼없는 거짓 언행이나 청소년들의 무감각한 말투들이 나를 괴롭힌다. 아무 힘없는 초로의 나를 괴롭게 하는 일도 분명 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죄들은 우리에게 수없는 변명으로 자기를 분장하고 공격한다. 우리가 혼돈에 빠지길 악(惡)은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선(善)과 악(惡)을 구별하여야 할까? 


“선을 보기를 목마른 듯하고 악을 보기를 눈먼 사람 같이 하라.” 주나라 초기 정치가 강태공은 지금도 우리의 귀에 대고 열심히 말하고 있다.


 지구를 뒤덮은 대홍수 때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로 나아왔다. 선도 뛰어왔다. 그러나 쌍쌍만이 타게 될 방주엔 짝이 없는 선은 탈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숲속으로 들어가 헤매다 혼자 뛰어다니는 악을 만나게 되어 둘이는 짝을 이루어 방주에 오르게 되었다. 그 이후 선이 있는 곳엔 항상 악도 있게 되었단다. 어쨌든 선이 있는 곳엔 늘 악이 동행하고 있음을 알아 우리는 주의하고 돌아보아 악에 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하겠다. 그러나 희망의 뉴스도 있다. 악이 그릇에 가득 차면 하늘은 반드시 이것을 깨트린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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