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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incanada
이 사이트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카나다에 유학와 귀와 입이 뚫리지 않은 상태에서 알버타 주립 대학에 들어가 기계공학 학사를 마치고 워터루 공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토론토 인근 원자력 발전소 연방정부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는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소개하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그의 신조를 바탕으로 이룩해 놓은 그의 발자취를 실어본다. 현재까지 그의 삶의 발자취는 에드몬톤->워터루->미시사가->대전->밴쿠버->오타와->리치몬드 힐이다. 현재 그는 다음 삶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궁금해 하면서 다람쥐 체바퀴처럼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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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여름
nhok

아쉬운 여름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참 시간이 화살같이 지나간 것 같다. 주 60시간을 다람쥐 채바퀴 돌 듯 반복적인 일을 했으니까.... 아침에 돈밸리 파크 하이웨이가 막히는 것을 피하기위해, 6시반에 일어나, 회사에서 7시간 반을 보낸 후 돌아와 5시경 저녁먹고, 또, 3시간-4시간을 책상에 앉아 일하고, 끝나면 어두워진 동네를 1시간 집 사람과 걷고, 11시경 잠자리에 들고, 또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고...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이 이번 여름에 가족여행을 비행기타고 다녀와야 한다고, 지난 봄부터 성화였다. 사실 우리가족은 지난 5년간 외국에 다녀온 적이 없다. 기껏해야 미국 버팔로 아웃렛 몰을 다녀온 것 뿐이다. 아이들이 커지니, 이젠 지루한 자동차 여행은 원치않고, fancy 한 비행기 여행을 부르짖어 왔다. 누가 그걸 모르나, 넷이서 가면 돈이 엄청 깨지니 문제지... 사실 내 직장 사람들은 카드를 긁고라도 여름철과 겨울철 여행을 다녀온다. 그리곤 1년간 갚아나간다. 이에 비해 한인들은 한국에 있는 친척방문겸 여행을 자주 한다. 그러나 우리는 1997년 한국을 떠난 지 한번도 가 보지 않았다. 이래서 시작한 여행, 목적지를 놓고 끙끙 앓다가, 결국 처가집 식구와 장모님을 볼 수 있고 전에 살았던 White Rock 도 갈 수 있어 밴쿠버로 낙착이 되었다. 사실 쿠바니 멕시코로 가면 좋은 호텔에 묵고 먹는 것 포함, 비치에서 놀다가 올 텐데, 오랫만에 친척들, 조카를 만나면 이미 소문이 크게 번진 토론토 리치몬드 힐에서 온 엉클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밀린 용돈도 주어야 하므로 이번 여행은 주머니 돈을 비축해야 했다. 사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된다. 아뭏든, 목적지는 밴쿠버로 정하니, 아내 포함 세 여자 모두들 해피한 표정이다. 아, 언제까지 세 여자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물위에 떠있는 백조처럼 물위의 자태는 아름다우나,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는 온갖 신속한 움직임을 통해 발을 움직여야 하나.. 시어머니가 있는 윈저로 간다면, 혼자 갔다 오라고 소리칠 건 뻔하다. 사실 나에겐 숨겨진 계획이 있었다. 이 기회에 아름다운 밴프, 자스퍼 록키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공부를 알버타 주 에드몬톤에서 해서, 공부하다 힘들면, 주말을 이용해 첫딸 리사를 임신한 집 사람과 둘이 새로 산 GM 폰티엑 패리즌 차로 장장 2500 킬로를 뛰며 자주 다녀온 적이 있어서, 록키는 우리 부부에겐 익숙하다. 그때 리사 엄마는 배가 나온 채로 일하면서 어린자식을 키우고, 우린 그 시절에 학생 아파트에서 오직 미래를 위해 살았던 적이 있다. 나역시 한 학기 6과목을 택하며, 아이들 우유값을 벌기 위해 저녁에는 4시간 파트 파임을 일해야 했다. 지금도 내 시민권 사진은 머리도 자를 시간이 없어 형무소에서 갓 나온 죄수모양의 내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 시절에 웅장한 록키산맥은 우리 부부에게 웅장한 자연의 기를 옮겨 주었고 이때문에 우리는 어려운 고비를 쉽게 넘었나 보다. 5년 전에 우린 록키를 다시 찾았고 이때 어려운 학생시절의 아파트를 찾아 아이들에게 그 발자취를 보여 주었다. 모두들 어떻게 그런 작고 초라한 집에서 살았을 까 라고 표현했다. 사실 그때 그애들은 그곳에서 우유 먹고 태엽이 달린 그네에서 씩씩거리며 자고, 새벽에 깨서 젖달라고 울고 밤잠을 설쳤는 데... 제 2편 드디어 아내와 둘이서 여행을 떠날 날이 다가 왔다. 아이들은 여동생네 집에서 3일간 맡겨놓았다. 조카가 잘 데리고 돌아 다닐테니까, live music을 좋아하는 우리 둘째 딸이 밴쿠버 다운타운 술집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이다. 아침 7시, 우린 공항에서 이번 여행을 위해 빌린 링컨 컨티넨탈 트렁크에 비상음식으로, 옥수수 삶은 것, 내가 3일간 먹을 과일, 물병, 라면과 프로팬 버너를 챙겼다. 쌀을 챙기려고 했는 데, 반대해서 이번은 록키산에서 밥은 못해 먹을 것 같아 아쉽다. 20년전에는 산속 계곡물로 쌀을 씻어 밥을 해 먹었는 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냄비안에 파란 비치 색깔의 호수물에 쌀이 담겨져 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약 800킬로 떨어진 자스퍼를 향해 한 시간 달리니, 웅장한 산맥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구비구비 강을따라 돌아가는 게 대전에 살때, 대청댐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단지 다른 점은 횟집음식점이 즐비하게 없다는 점이었다. 오후에 쟈스퍼에 도착하니 비가 오기 시작하고, 록키는 그 웅장한 자취를 본격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자스퍼에서 하루 머물곳을 찾을 때는 좀 신경을 써서 신혼을 맞보기 위해 깔끔한 곳을 찾을려고 했더니 모두 No Vacancy 였다. 나는 집사람에게 돈이 문제가 아니니, 우리가 신혼여행갔던 도고온천 호텔보다 몇배 나은 호텔에서 그때는 돈이 없는 갓 제대한 무직자라서 초라했으니, 이번에 제대로 신혼첫날을 다시 맞이하자고 하였더니 집사람은 무척 기대어린 표정이었다.그러나 워낙 타운이 작아 우리를 맞을 수있는 호텔이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레이크루이스에 있는 세계 최고의 레이크 루이스 호텔에서 한번 묵어보자고 제의했다. 물론 성수기 가격이 하룻밤 300불 이상이 될것을 알면서도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우리가 모처럼 이런 기회를 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우린 자스퍼-밴프를 잇는 최고의 절경이 있는 도로를 달려 약 1시간 반 거리의 레이크 루이즈 호수로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석양아래의 차창 양쪽에 보이는 록키 산맥은 그 웅장함을 더해가고, 아직도 문명이 해치지 않은 태고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 앞을 주시하며 혹시나 사슴이 길을 건너지 않는 지, 긴장을 하며 운전을 했다. 누군가 겪은 동물과의 충돌사고는 차앞이 완전 부서진다는 것을 상기시켰기 때문이었다. 레이크 루이스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어두워져,볼거리가 안보여, 호텔/모텔을 찾으니, 여기도 만원이었다. 한군데에서 이 지역에는 방이 다 차서 어디를 가도 없으니 8명이 잘수 있는 큰 방 하나를 200불에 주겠다고 했다. 집 사람은 이거라도 들어가서, 안에 들어가서 남편과 달리기를 할려는 지 거기서 자자고 했는 데, 왠지 그 남자가 못미더워 호수 근처에 갔더니 통나무 집이 있었고, 자정이 다가와 오는 데 하루 160불-세금을 요구했다. Dollar Store만을 다니며 생필품을 사는 나로서는 하루 그 금액을, 그것도 잠만자는 용도로 몇시간 빌리는 비용으로는 너무해, 아내에게 또 1시간 달리면 밴프는 숙박시설이 많으니 달리자고 제안했다. 피하루 종일 차타고 온 것에 지루한 아내는 돈이 문제가 이니라고 성내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궁지에 몰렸다. 내 억지를 부려 1시간을 달리는 동안 나는 차안에서 아내로부터 각종 야단을 먹었다. 너무 먹어서 운전대를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여기 뭐하러 왔나하는 생각도 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이처럼 막바지에는 내 식으로 하는 무식함이 있기 때문이고 그에 비해 아내의 생각은 조리가 있고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나 생각대로 하자고 하고, 어둠속을 달려 밴프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고, 빈 호텔이 줄지어 있었다. 우린 오늘 거의 15시간을 운전한 셈이었고 다시한번 50살이 안된 내 정력을 점검할 수 있었다. 평상시처럼 나는 내 assistant인 아내를 카운터에 보내니, 아내는 값을 깎아서 만들이 150불 내는 것을 세금 다포함 110불에 결판지었다. 늦게 도착한 것을 핑계로 말이다. 어떻게 협상을 했냐고 물었더니, 까만 아이가 협상의 기미를 보여 그 틈을 파고 들어갔다고 했다. 역시 아내다운 방법인 얼굴두꺼운 동양여자에 그 아이가 OK한 것이었다. 방에 들어가 나는 샤워를 하고, 20년 전 신혼 여행을 간 그 첫날 밤을 생각했다. 제 3 편 그때 신혼여행을 기억해보면 아내나 나나 정말 처녀 총각이었다. 나는 군에서 갓 제대한 건장한 남자, 그녀는 한국을 떠나 카나다로 이민가, 얼마쯤 살다가 결혼하기 위해 잠깐 방문한 카나다 아가씨였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옷차림이나 행동이 조금 달랐다. 우선 신혼여행에 청바지를 입고 돌아다닌 것, 가방을 어께에 길게 맨것, 긴머리를 그대로 하고 돌아가니는 것등, 한국에서 결혼하고 신혼여행가는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우리는 식구들이 있는 신정동 집에서 얼마동안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카나다로 되돌아 갔고 곧바로 나를 배우자로 초청하였다. 약 6개월간의 공백기를 거쳐 우리는 카나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뭏든 이번 여행은 그때보다 25년이 지났지만, 둘이 느끼는 기분은 그때와 같이 홀가분하고 좋았다. 오전에 밴프시내에서 쇼핑 구경을 하고, 큰 처남이 사는 Kellowna로 향했다. 이기는 오끼나겐 지역이라 은퇴하는 사람들이 사는 휴양지이다. 큰 처남은 거기서 몇년을 오아시스 모텔을 운영하고 있고, 지금은 큰 아들에게 운영권을 넘겨주었다. 중간에 배가 고파 Revelstoke 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데 한이 관광버스가 많은 사람을 옆에 있는 모텔에 내리고 있었다. 이쪽 지역은 한인들이 버스로 관광을 할 정도이니, 록키가 큰 구경거리인 셈이다. 밤이 되어 우리는 오끼나겐 호수를 낀 Kellowna에 도착해 최근에 구입하신 물가 근처의 집에 여장을 풀었다. 말 그대로 리빙룸에 앉으면 앞에 호수물이 파랗게 보인다. 집은 방갈로 식이나 지하가 있어 2층집인 셈이다. 손님방은 특히 호텔룸같이 꾸며 놓았다. 우리 자정이 넘게 얘기하다가, 내일 날씨가 좋으면 골프 라운딩을 하기로 하였으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계속 비가와서 골프는 포기하고 그 근처 와인 공장에 가 보았다. 여기는 바다의 습한 공기와 찌는 햇볕이 조화가 디어 포도가 좋고 그래서 이 지역에 와인 공장이 몇개 있단다. 특히 아이스 와인은 유명해 그곳에서 제조한 걸 몇개 샀다. 공장을 관광지로 둔갑시킨 공장 소유자의 사업성에 놀랐고, 건물은 시원하게 술을 저장하기 위해 두꺼운 콘크리트로 지었다. 또한 와인을 사면 시음하도록 잔에 와인을 따라 주었다. 그리곤 근처 과수원에 가서 질이 좋은 복숭아를 직접 따 보았다. 우리가 Food Basic에서 사서 먹는 것보다, 더 싱싱하고 즙이 많이 나왔다. 이 부부는 얼마전 토론토에도 와서 우리 집에 다녀간 바가 있다. 내년에는 장모님 팔순 잔치를 알라스카 크루즈를 기획하고 있어 그때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 밴쿠버로 향했다. 밴프에서 1박을 하고 돌아왔는 데,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우리 부부만의 시간은 아마 1주일을 더 보내고 온 것같이 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냥 차안에서 둘이 먹고 얘기하고 하였으니까.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우리는 이번 가족여행이 재 충전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모두 인식했고, 다음 여행을 만들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일할 각오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집이 빈 1주일동안 우리 고양이 루비는 딸 친구가 와서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 줘 문을 여니 "야옹" 반가히 우리를 맞아 주었다. 비행기를 타고 같이 갈 수 없는 처지에 고민고민하다가 친구에서 부탁했더니 아무 탈 없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날부터 우리는 한국에서 학생들이 되돌아오고, 공항 픽업을 하는 등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아쉬운 여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