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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뿌리
leesangmook

 


 
 

▲동네 어느 집에 쓰러진 나무가 차 트렁크를 덮쳤다.

 

 

다행히 전화는 연결됐다. 하지만 엉뚱한 대답이 흘러 나왔다. “바빠. 바빠. 주소. 텍스트로 보내” 루핑(Roofing)회사 사장의 토막영어였다. 8년 전 우리 집 지붕을 새로 했던 중국계 사장은 자초지종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폭풍에 지붕널(Shingles)이 날아간 집들이 한 둘이 아닌 모양이다. 
전화를 급히 하게 된 건 산책을 하고 돌아온 후다. 창 밖을 내다보니 수선화 꽃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다 못해 땅에 머리들을 부딪는다. 하지만 산책의 일과를 감행하기로 했다. 아직 앙상한 가지들의 낙엽수는 온 몸을 떨고 있고 높은 키의 침엽수들도 미친 듯 춤동작을 멈추지 않는다.


서북풍은 저공 비행하는 폭격기 소리를 멈추지 않고 하늘의 구름들은 과속으로 도주하고 있다. 어렵사리 공원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보행속도는 달팽이 수준. 가까스로 집에 돌아오는데 지붕이 시선을 포박한다. 일부 지붕널 들이 벗겨져 날아가고 일부는 아직 찢기지 않은 채 펄럭이고 있지 않은가.


40여 년 이 집에서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비가 자주 오는 요즘 천장으로 물이 새들어 오기라도 한다면 이 무슨 재앙인가. 이건 911을 호출하는 거나 마찬가지 비상사태다. 급히 전화를 했더니 루핑회사 젊은 사장은 바쁘니까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지난 금요일 오후에 분 바람은 시속 110Km. 초속으로 환산하면 약 30m. 초속 25m면 지붕이나 기왓장이 날아가고 30m면 허술한 집은 붕괴하기도 한단다. 금요일의 강풍은 다섯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밀턴에서는 전깃줄에 걸린 나무를 치우다가 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해밀턴에서 한 남자는 거리에 떨어진 전선줄을 치우다가 변을 당했다. 어떤 자원소방관은 신호등이 꺼진 거리를 건너다 차에 치여 사망했다. 우리 집도 오후 4시경 전기가 나가 12시간 정전이 되는 바람에 찬밥으로 저녁을 때워야 했다.


재앙의 흔적은 우리 집 지붕만이 아니었다. 동네 어느 집은 약 10m의 전나무가 쓰러져 드라이브 웨이에 있는 차 트렁크를 덮쳤다. 쓰러진 전나무를 보니까 뿌리가 문제다. 땅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린 게 아니라 사방으로 잔뿌리들만 무성하다. 온타리오 주는 비교적 지표면에 수분이 많다 보니 뿌리를 깊이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인생도 뿌리가 문제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나 같은 이민자가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지금까지 견딘 것은 보이지 않은 은총이 강풍으로부터 보호해 줬기 때문일 게다. 


공포의 바람이 지나간 다음 날 잔잔한 햇볕 속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연약하기 짝이 없는 수선화들이 고개를 곧추 세운다. 긴 겨울 땅속에서 얼지 않고 매년 착실하게 비축한 양분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구근(球根)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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