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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추억
leesangmook

 

 

 
 
추억엔 줄거리가 없다. 장면만이 있을 뿐이다. 추억의 마모 현상이 심한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영화 타이타닉. 언제 봤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주제가 여객선의 침몰이었는지 그 와중에 발생한 연애였는지 아니면 그 둘의 짬뽕이었는지도 오리무중이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바로 잊혔지만 남자 주인공 디카프리오는 퇴출을 거부한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마침내 받았다는 기사 때문일 게다.


배가 침몰할 때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시작한다. 우왕좌왕하던 다른 연주자들도 악기를 들고 합류한다. 곡목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이다. 허구의 설정인지 알 수 없지만 내겐 그게 명장면이다. 죽음의 선고가 내려진 마당에 그것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한 자세를 보여준다. 신앙이 약하다 보니 그 장면은 더 강렬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오래 전 일이다. 피크닉 테이블에 초면의 여인과 합석한 일이 있다. 비슷한 연배였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서울의 OO여고 출신이 아닌가. 내가 다니던 고교 역시 근처에 있었다. 

“OO여고 노천극장이 생각나는군요. 연극구경을 간 적이 있지요. 그리스 비극이라고 했는데 줄거리는 전혀 생각나지 않네요. 다만 횃불을 치켜든 배우가 캄캄한 밤하늘에 유령처럼 나타나던 장면만이 남아 있지요.” 

순간 여인의 안색이 달라지는 게 아닌가. “어머나. 그 배역을 한 사람이 바로 저에요.”

그때 그 순간 더 놀란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을 게다. 반세기 전의 연기를 기억해 주는 관객을 만났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었겠나. 


금년 여름 손녀가 연극에 출연했다. 그것도 주인공인 ‘라푼젤’을 연기했다. 연극 제목은 ‘Tangled’라고 전혀 생소했다. ‘라푼젤’이라는 독일 동화를 애니메이션 한 버전이란다.

대사나 노래 가사가 다 영어여서 스토리를 따라갈 수 없었다. 풀밭에서 2시간 이상 앉아 있자니 힘이 들었다. 절로 연극은 딴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명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극이 끝난 다음이었다. 그건 손녀의 입술이었다. 아직 틴에이저도 아닌 초등학생이 난데없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타난 것이다. 극 중에 나오는 주인공이 성숙한 처녀니까 그렇게 분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무릎 아래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금빛 가발을 쓰고 있었다. 
립스틱은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었다. 그건 성숙한 여자가 됐다는 대담한 선언이 아닌가. ‘라푼젤’은 독일의 동화작가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들어 있다.

마녀도 나오고 왕자도 나온다. 왕자는 라푼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이끌려 그녀가 갇혀 있는 탑을 찾아온다. 마녀가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을 타고 탑을 오르는 것을 보고 같은 방법으로 몰래 탑에 올라간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화가 난 마녀는 라푼젤의 머리를 잘라 내쫓는다.
왕자는 그녀를 찾아왔다가 마녀에 의해 가시덤불 위로 떨어져 실명한다. 몇 년 후 왕자는 라푼젤과 재회하고 그녀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그의 눈을 뜨게 해 행복을 되찾는다는 스토리다.


창문을 열면 지붕마다 서리가 하얗게 덮이는 계절. 여름의 행방은 아득하고 여름밤의 풀밭이 그리워진다. 노천극장은 여름밤이 아니면 연극을 올릴 수 없다. 손녀가 이담에 결혼을 하게 될 때가 언제쯤일까.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여름밤의 노천극장과 손녀가 처음 바른 립스틱의 명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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